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어, 모든 걸 망쳐 버렸어.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마치 동화를 읽듯 재밌게 읽혔지만, 그저 ‘재밌게’ 읽고 끝나는 작품은 아니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제목에 충실하게 각각의 단편들은 저마다의 가르침으로 깊은 울림을 안겨주었고, 10편의 스토리를 읽은 내내 나는 어떤 인물인지 성찰하게 했다. 마치 고백성사를 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옮긴 이 홍대화에 따르면, 톨스토이에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모든 허식을 벗어버린 합리적이고 실천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네 개의 <복음서>를 하나로 묶어 새로운 복음서로 편집을 했고, 자신의 <복음서>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 중 다섯 계명을 뽑아 넣었다.
첫째, 화내지 말며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라.
둘째, 음욕으로 담하지 말라.
셋째, 어떤 약속으로도 맹세하지 말라.
넷째, 악으로 갚지 말로 심판하지 말며 재판관에게 달려가지 말라.
다섯째, 민족을 구분하지 말고 이방인도 네 이웃처럼 사랑하라
재밌는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지는 단편들 속에는 톨스토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다섯 계명을 중심으로 삶의 지혜와 교훈들이 가득 녹아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있다>의 제화공 마르띤 아브제이치 이야기와 황제의 <세 가지 질문>, 그리고 <바보 이반> 이야기는 미사 때, 신부님의 강론으로 접한 스토리들이라 반가웠다.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들로 신자들에게 딱딱한 교리를 벗어나 감동과 함께 전할 수 있는 메시지들이 가득하니, 신부님들의 애정 에피소드가 된 것은 당연했으리라 쉬이 그려진다.
에피소드 하나하나 공감되는 주제들로 내 삶 속에 녹여내고 싶은 이야기들로 가득하지만, 이 10편의 단편들 중 단 한 편을 뽑으라 하면 <사람에게는 얼마만 한 땅이 필요한가>의 농부 빠홈 이야기일 것이다. 결말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날 선 긴장감 속에 읽었던 에피소드다.
하루동안 다닌 땅이
모두 너의 땅이 될 것
이야기는 도시에 사는 언니가 시골에 사는 여동생의 집에 놀러 오면서 시작된다. 농촌 살이를 무시하며 도시가 얼마나 좋은지 자랑하는 언니. 그에 질세라 농촌의 삶이 얼마나 좋은지 자랑을 하며 서로 네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하다가 여동생이 도시에 사는 여인네들의 남편들은 유혹이 많지만, 농촌에서는 땅만 있다면 악마도 남편을 유혹하지 못할 거라며 자랑하기에 이른다.
여동생의 남편 빠홈이 아내의 이야기를 듣다가 아내의 말이 맞다며 “땅만 충분하다면 악마도 두렵지 않아!” 생각하는데, 마침 벽난로 뒤에서 엿듣고 있던 악마의 심술이 발동한다.
"좋았어, 한번 겨뤄보자, 네게 땅을 많이 주마. 내가 땅으로 너를 취하겠어."
빠홈의 스토리는 그렇게 시작된다.
부인의 말에 빠홈의 마음 안에 땅에 대한 욕심의 씨앗이 뿌려졌고, 그때부터 충실하고 성실한 농부 빠홈은 땅을 조금씩 넓혀가며 부유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말 모이를 주기 위해 우연히 빠홈의 집에 들른 상인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안 그래도 좀 더 좋고, 좀 더 넓은 땅에 대한 갈증이 목까지 차올랐던 빠홈은 상인으로부터 유목민인 바시끼르인들로부터 5000 데샤티나(약 1650만 평)를 1000 루블에 샀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솔깃해진 그에게 상인은 정성스레 정보를 알려준다. 상인이 일러준 대로 그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들을 준비해 유목민들을 만나러 떠나는데, 과연 상인이 전해준 그대로였다. 그들은 문명을 모르고 러시아어도 몰랐지만 친절했다.
땅을 사고 싶다는 빠홈에게 유목민 바시끼르인들의 제안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눈에 보이는 아무 땅이나 원하는 대로 골라도 되며, 빠홈이 막대로 표시한 모든 영역이 그의 땅이 될 것이라는 게였다. 단, 한 가지 조건이 따라붙는데, 그것은 해가 저물 때까지 출발한 장소로 돌아오지 못하면 땅 값으로 내놓은 금액은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그쯤이야! 가슴 부푼 빠홈은 이상한 꿈으로 잠은 설쳤지만 들뜬 마음으로 일어나 좀 더 ‘좋은’ 땅, 좀 더 ‘많은’ 땅을 내 것으로 점찍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하루가 지나기 전에 좀 더 많은 땅을 차지하고 돌아가기 위해서는 조금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이 땅도 좋아 보이고 저 땅도 좋아 보이고, 습기가 많은 협곡도 버리기가 아깝고, 그렇게 많은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좀 더 좀 더’하며 넓혀 나간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덧 해는 저물어 가고 있었고, 정신을 차리자 자신이 너무 멀리까지 나와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어떤 땅도 다 가질 수 있지만, 시간 안에 돌아오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빠홈은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어, 모든 걸 망쳐 버렸어,
해가 질 때까지 못 갈 것 같아
후회를 해 보지만 이미 너무 멀리 나와버렸다. 그렇다고 이제와 멈출 수는 없었다. 빠홈은 마지막 힘까지 다해 달리고 또 달렸다. 셔츠와 바지는 땀에 젖어 달라붙었고, 가슴은 대장장이 풀무처럼 부풀어 올랐다. 심장은 망치로 내리치듯 고동쳤으며 다리는 힘이 빠질 대로 빠져 자꾸만 꺾여버렸다. 죽을 것 같았지만 힘들게 점찍어 놓은 자신의 땅을 포기할 수 없었다.
저 멀리 바씨끼르인들의 응원 소리를 들으며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려 빠홈은 마침내 도착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모든 땅을 드디어 손에 쥔 바로 그 순간, 빠홈은 숨을 거둔다.
일꾼은 삽을 들고 빠홈의 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빠홈은 정확하게 머리에서 다리까지 들어갈 수 있는 2미터가량의 무덤에 묻혔다. (P213)
스토리는 이렇게 끝난다.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 징이 울리는 것 같았다. 마치 파리 한 마리가 벽에 부딪혀 죽은 것 같은 건조하고 아무런 감정도 묻어 있지 않은 마지막 문장이 안겨준 공허함과 허무함이란.
빠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빠홈을 바보 멍청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으면 어땠을까. 해가 지기 전에 흐뭇하게 돌아올 수 있는 그 지점에서 멋지게 돌아설 수 있었을까. 비옥한 이땅도 저땅도 모른척하고 습기 많은 계곡도 저버리고 그렇게 시크한 척 돌아설 수 있었을까.
나는 내 삶 속에서 그렇게 more and more 욕심을 낸 적은 없는지. 아니 지금 그러고 있는 건 아닌지. 이미 충분히 갖고 있으면서도 좀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지금 내게 주어진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삶이 부른 이 웃지 못할 비극적인 에피소드가 “나는 아니야” 하며 자신 있게 고개를 돌릴 수 있는지. 내 모습을 그려보는 동안 느껴지는 이 씁쓸함은 무슨 의미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의문도 들었다. 빠홈의 삶을 보면서 열심과 욕심의 차이를 어떻게 결정지을 수 있는 걸까. 열정과 욕심의 차이는 또 어떻게 가를 수 있는 걸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 아닌가.
언젠가 심리학 수업 중에 교수님께서 ‘적당히’가 가장 어렵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그러시면서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적당히’ 하라고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최선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심리 장애의 가장 근원적인 이유가 된다는 것.
‘얼마큼’이 ‘적당히’고
‘얼마큼’이 ‘할 수 있는 만큼’일까.
어느 한 사람에게 잘 맞아떨어진 방법이 보편적으로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부유함도 가난함도 그 삶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많아도 불행하고, 없어도 행복하게 느끼는 아이러니한 양면 투성이의 우리네 삶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나에게 있어 ‘할 수 있는 만큼’의 기준은 ‘즐겁게 할 수 있는 만큼’이다. 일이나 공부가 힘들어도 즐겁게 느껴지는 것은 그 일에 소중한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의미 있는 일을 할때 그런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또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게 된다. 선의 사이클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이다. 내겐 '즐거움'과 ‘감사’가 삶의 근본적인 기준이 된다는 주관적인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물론, 이건은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관점이다
지금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욕심부리지 말고 하나하나 즐겁게 해 나가다 보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설사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내게 주어진 한정적인 삶을 결코 짜증과 한탄으로 채우고 싶지 않다. 내게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며 웃으며 즐겁게 보낸 것만으로도 잘했다고 환하게 웃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 번역된 10편의 단편은 자살 직전까지 갔던 정신적인 위기를 맞으며 사상적인 전환을 겪는 과정에서 나온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신약성경 복음서에서 건져낸 삶의 원리와 깨달음을 평범한 민중도 이해하는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그는 이전까지 사용했던 작품의 색깔을 완전히 바꾸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톨스토이가 주창한 기독교적인 윤리관과 무저항주의가 오롯이 담긴 ‘인생 단편’이 탄생했다.
모든 이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동화처럼 재밌는 이 단편집은 톨스토이의 지독한 고통을 제물로 삼아 태어난 작품들이었다. 한 편 한 편마다 따스한 삶의 교훈들로 가득한 소중한 가르침들, 조심스레 가슴에 담았다.
나도 노력해야지, 지금 나와 함께 곁에 있는 이들이 가장 소중한 이들임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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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gram의 배경 음악으로 올려진 이 곡을 듣다가 심장이 멎을 뻔 했다.
인터넷을 찾아 헤매다 유튜브에서 발견했다. OMG~!!
톨스토이의 책과 잘 어울리는 듯하여 함께 올린다.
Tony Ann - Untitled in G# min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