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일상적인 삶의 연속이다.
에릭 부스, 그는 너무나도 많은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다. 연극배우였고, 극작가였고, 감독이었고, 사업가였고, 시민단체 리더이자 작가며, 지금은 쥴리어드 음대 예술 교육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의 경력은 나열하기조차도 숨차다.
그에 대해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티칭 아티스트로서 한국에 여러 번 초청되어 강연을 했다는 기사를 발견하고는 반가움이 일었다.
'티칭 아티스트의 아버지'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게 책에서 잠깐씩 언급되는 그의 삶을 보아도 삶 자체가 예술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의 우리에게는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일상 속의 많은 일들이 그의 시야에 들어가면 마치 하나하나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마치 그의 눈에 띄게 되면 삶에 생명력이 불어넣어 진다. 예술가의 눈이란 그런 것일까?
그의 말대로 우리는 예술을 너무 멀리 높은 곳에 올려놓고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도 그 부류 중의 한명일 것이다. 에릭 부스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 예술을 우리 일상으로 끌고 내려와 우리와 함께 숨 쉬게 하며, 익숙하게 하고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오게 해 주었다. 실제로 그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섬세하면서도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며 예술이 우리 일상 속에 함께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그의 손을 잡고 따라가는 동안 우리 삶 속에 함께하지만 알지 못했던 일상 속의 예술을 만날 수 있었다.
의아스러웠던 것은 에릭 부스는 열정적으로 표현하는데 내게는 그것이 강렬한 빨강이 아니라 짙은 빨강이 빠진 옅은 붉은색 정도로 느껴지며 덜 버겁게 다가왔다. 그가 말하듯 ‘신중하게’라는 표현이 바로 이쯤에 해당될 것이다. 호들갑 떨며 갑자기 전쟁터로 싸우러 나가려는 전사의 모습 아닌 차분히 내가 가진 무기가 무엇인지를 체크하게 하는 신중함이랄까.
아주 쉬운 것부터, 아주 작은 것부터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의 소중함을 느끼며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네 안에 심어 주었다. 부담 없이 무언가 하나라도 다시 재정비하여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의 움직임이 일게 했다.
에릭 부스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는 작가지만 왠지 그의 다른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를 좀 더 잘 알고 싶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너무나도 많은 경험을 하며 지내온 그의 삶이 책 보다 더 재밌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삶을 예술처럼! 내 마음에 조심스레 새겨본다.
읽으면서 ‘일상, 그 매혹적인 예술’이라는 제목이 참으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일상을 예술 작업으로 연결하니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왔다.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고 글을 써야만 예술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상을 예술 작업으로 끌어내는 우리 모두가 예술가란 에릭 부스의 말이 가슴을 콕 치고 들어와 마치 내가 멋을 아는 예술가처럼 느껴져 혼자 분위기에 젖어 자뻑 모드에 취해 읽었던 시간이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 때때로(또는 자주) 무료하고 지겹고 또는 지치게 느껴지는 일상을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고 무채색이 이거나 회색인 일상을 컬러풀한 색을 입힐 수 있는지 자신의 경험과 사례와 함께 보여주었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여러 부분 중 가장 나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바로 자신이 설명하고자 하는 뜻을 어원 풀이로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어원을 알게 되니 그 단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 수 있어서 그 뜻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어느 나라에서 특정 의미로 쓰이던 것이 시대가 바뀌며 전혀 다른 의미로 변형된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전혀 반대의 뜻으로 변형된 것도 있었다. 정말 깨소금 같은 고소한 재미였다.
‘art’는 동사다. 예술의 어원을 살펴보면, 본래 이 말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 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예술이란 박물관이나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값비싼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예술은 ‘짜 맞추다’를 뜻하는 동사로서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예술이란 일 년의 경험이나 실험처럼 무엇인가를 관찰해서 얻어내는 행위로 보아야 한다. 즉 예술이란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보다 확실하고 실질적인 방법인 셈이다. (P17)
예술과 마찬가지로 ‘세상 world’이란 단어도 처음에는 한층 더 폭넓고 복잡한 의미를 지닌 말이었다. 고대 게르만어 중에 인간을 뜻하는 ‘weraz’와 시대를 뜻하는 ‘ald’를 결합하여 ‘인간의 시대’의 신비한 면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단어의 뜻이 원래의 영적인 의미에서 멀어져 점차 세속적인 의미로 변질되었다. 시간이 ‘세상’의 의미를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린 셈이다. (P35)
여기서 Greek Wedding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든 단어를 그리스 어원으로 풀이하시던 아버지. 그럴듯한 풀이에 ‘정말 그런가?’싶은 착각까지 일으키게 하던 어원 풀이 장면들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에릭 부스와 함께하는 어원 풀이는 내게 많은 흥미를 불러일으켜주었고 더 많은 단어에 대해 알고 싶은 호기심의 씨앗을 내 안에 심어 주었다.
두 번째로 나의 흥미를 끌며 실천하고 싶게 하고 실험하고 싶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관찰’이었다. 관찰은 에릭 부스를 통해 알기 이전에 내가 심심할 때 하던 것이라 짜릿한 흥분마저 일었다. 그의 체계적인 설명 속에 이런 ‘깊은 관찰’이 얼마나 삶을 재밌게 이끌어주는지 알 수 있었다.
이쯤에서 막내 딸아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지나갈 수가 없다. 7살이나 8살 때쯤이었을 것이다. 하루는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딸아이가 눈을 감고서는 더듬거리며 있는 것이었다. 왜 그러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만약 자기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샤워할 때 어떤 기분일까? 장님들은 어떻게 샤워를 하는 걸까 느껴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힘든데 장님들이 불쌍하다며 계속 눈을 감고 더듬거리며 샴푸를 찾기도 하고 비누를 찾기도 했다. 미끄러지면 위험하니까 조심하라고 나왔다.
딸아이의 그런 모습이 참 재밌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직접 경험해 보며 이해해 보려는 모습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 후에도 거실에서 눈을 감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몇 번을 더 보았다. 에릭의 이야기를 들으며 막내가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그냥 겉만 보는 스쳐지나가는 시선 던짐이 아닌, 예술가의 눈으로 감성가의 눈으로 관찰하고 탐험하고 세상을 읽으며 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작업. 늘 그렇고 그런 일상을 어떻게 재밌게 즐겁게 보내며 그 안에 묻혀버린 열망을 이끌어 낼 수 있고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한 그의 설명은 거창하지 않으면서도 실제적이고 구체적이었다. 그중의 하나만이라도, 아주 사소한 무엇이라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책을 읽어갈수록 점점 짙어졌다.
열망은 우리 마음속에 깃든 욕망이며,
형태를 드러내고 싶은 영혼의 소망이다.
에릭 부스는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니라 정체다.’라고 말한다. 성공은 어떤 결과가 아닌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그의 성공의 정의는 색다르게 느껴졌고 나에게 질문하게 했다.
질문: 그럼, 나는 성공한 사람인가? 아니면 정체 속에 있는 사람인가?
답: 무언가 하려고 발버둥 치면서 제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
나의 주저 없는 혼잣말에 웃음이 쿡 터졌다. 이내 따라온 감정은 씁쓸함이었다. 알면서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 나.
"성공은 탁월하게 그려낸 그림 자체에 있지 않고, 습관을 유지하는 데 있다."에릭 부스가 부드럽게 꾸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송어 이야기는 읽으면서 절로 그려지는 장면들로 킬킬거리며 읽었다. 그 주인이 참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삶을 구속(?)하는 송어를 다른 연못에 갖다 넣을 수도 있었고, 또는 다른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었음에도, 자신을 구속하는 송어를 피해 다니느라 그렇게 웃지 못할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니. 얼마나 웃긴 상황인가. 이쯤에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송어가 주인을 구속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주인이 스스로 송어에게 구속당하고 있는 것인지.
나라면 어땠을까? 그런 상황은 아마 벌어지지 조차도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송어를 갖고 오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송어가 알까 봐 특공 대원처럼 기어나가는 주인을 상상하며 정말 이거 실제 이야기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인간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송어가 인간을 자기 맘대로 부리는 폭군이 되었다는 이 모순적인 이야기. 이 웃픈 이야기를 읽으며 복합적인 감정이 되었다.
에릭이 햄릿과 함께 하는 부분에서는 과연 나는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에 이토록 열광하며 깊이 심취했던 적이 있었나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좋아하는 그것을 내 삶 안에서 배우고 익혔던 적이 있었는지. 그렇게 미친 적이 있었는지. 에릭 부스처럼 두고두고 되새기고 또 읽고 읽으며 내 삶과 일치시키고 생각하고 깨우치려 했던 그런 무언가가 나에게도 있었는지. 읽는 동안 가슴에 일렁임이 일며 울컥했다. 나도 그렇게 미친 듯이 미쳐보고 싶었다.
그는 ‘세상 만들기’, ‘세상 탐구하기’, ‘세상 읽기’를 통해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 예술을 끌어들이고, 삶을 예술처럼 살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며, 책 전체를 통해 이 세 가지를 계속해서 우리에게 느끼게 하고 알려주고자 했다.
나도 그처럼 그냥 무심결에 나와 함께 하는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며 지켜보고 싶다. 그렇게 아무런 느낌 없이 지나가는 일상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얼마나 많은 감동이 숨어있는지. 얼마나 재밌는 놀이들이 묻혀있는지. 나도 그처럼 그렇게 일상을 지켜보며 재미를 느끼며 살고 싶다는 바램이 솔솔바람처럼 그렇게 내 안에 스며들었다.
예술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일상적인 삶의 연속이다. 우리 모두는 예술의 일부분으로서 예술적인 역량을 발휘하며 매일 예술가처럼 살고 있다. (…) 예술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그 결과물이 아름다우면 그것이 곧 예술이다.
정말이지 내 삶을 아름답게 조각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 붓을 놓는 날, 조각을 끝내는 날 내 일상은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가만 상상 속에 잠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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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y Falling - Iyeo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