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생기면 끝이다.’, ‘애는 최대한 늦게 가져라.’, ‘돈 버는 기계가 될 것이다.’ 등등 재밌는 듯 불행한 얘기들은 일상 속에서 자리 잡았고, 어느새 우리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애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는 코스프레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 당연히 내 시간은 없다며 징징대야만 할 것 같은 대화의 흐름.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희생만 강요당하는 불쌍한 아빠들의 삶이 내 앞에 다가왔다.
반항아의 기질을 타고났기 때문일까(부서장은 내 속에 제임스딘이 있다고 했다), 희생만 강요당하는 아빠의 삶은 동의하지 못한다는 소신있는 발언과 함께 아직 시작도 안 한 육아에서의 자유시간을 확보했었다.
“구성원 모두가 적당히 행복한 가정이 진짜로 행복한 가정이라고 생각해. 최대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가끔 내 시간이 필요할 때는 당당히 말할거야. 내 행복도 존중해줘.”
막상 주장하고 나니 아내에게 조금 미안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아내는 웃어넘겼고, 또한 내 주장을 지지해줬다. 어쩌면 아내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말만 저러지 정작 그렇게 하지도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임신기간 막바지에 이르러 우리는 최대한 아내에게 부담이 덜 가는 방향으로 출산 후의 계획을 짰고, 다행히 별 탈 없이 계획한 대로 실행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1주일, 산후조리원에서 2주일, 산후도우미와 2주일, 그리고 나라에서 보장하는 배우자출산휴가로 2주일, 총 7주간 아빠가 된 남편은 아내를 혼자 두지 않기 위해 일정을 배분하고, 회사와 아내 옆을 오갔다. 너무나 당연하겠지만 출산 후 모든 일정은 아내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어디 일정뿐이겠는가? 식사 메뉴, 집안 온도, 심지어 내가 아는 누군가는 디퓨저 향까지도 철저하게 아내에게 맞췄다.
대부분의 아빠가 된 남편들은 너무나 당연히 그래야 하므로, 또한 마음이 스스로 동하는 신비한 경험으로 인해 ‘내가 아빠가 된 남편답게 하고 있구나’라는 사실 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잘해보려 전전긍긍하는 새내기 남편들일뿐이다.
노력했지만 그 노력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당연히 잘해야 하므로 잘못하면 어떡하나 초조했던, 그러나 티는 낼 수 없었던 남편들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몇이나 있을까? 아름다운 아내의 출산과정 뒤에는 백번, 천번 칭찬해줘도 부족하지 않을 남편들의 노력도 함께 했었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한번 짚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글로 남겨본다. 그래야 훗날 내 아이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을테니깐.
아내가 출산했다. 그리고 남편도 함께 했다. 고로 남편도 출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