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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황 Jul 28. 2022

남편은 자는 시간을 줄였다.

그리고 아기에게 위로받았다.

모두가 잠든 깜깜한 밤, 우리 집 부엌과 거실을 오가며 바쁜 사람이 하나 있다. 남편이다. 남편은 조용해진 집에서 나홀로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가끔은 TV를 보기도 한다. 집안일과 휴식시간이 섞여있지만, 아니 사실은 집안일을 하는 시간이지만, 고요함 속에서 나홀로의 시간을 요령껏 즐기는 남편이었다.


벽형 인간인 줄 알았던 아기는 한 달, 두 달을 더해갈수록 눈을 뜨는 시간이 늦어졌다. 새벽에 눈을 뜨기 힘든 아내는 아침잠만 잘 자도 소원이 없겠다는 말을 했었다.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봐야 하나? 분명한 것은 고작 새벽잠을 깨우는 게 걱정이던 아기의 더 어린시절 육아보다 32개월, 곧 3살이 될 아기의 육아가 더욱 고되다는 것이다. 남편은 때론 육아가 시작된 이후 지금이 제일 힘들다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가끔 인생 선배들이 해준 조언을 떠올렸다. '아내랑 애가 다 너를 찾지 않을 때까지 점점 힘들어질 거야. 그 후엔 점점 외로워질 거고.'


남편은 모두가 잠든 시간을 좋아한다. 안방 문을 열어 곤히 자는 아내와 아기를 보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지기 때문이고,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밤 시간이 참된 자유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고, 못다 한 남편 노릇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시간의 시작은 늘 설거지와 쓰레기 정리로 시작되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아쉬워 TV, 유튜브를 켜고, 1시간 남짓의 시간을 허공에 증발시키는 남편이었다.


가장 늦게 잠드는 남편이지만 가장 일찍 일어나는 남편이기도 다. 이른 출근시간으로 인해 머리맡 휴대폰의 진동소리에 일어나면 바로 화장실로 향한다. 졸린 눈을 비비며 씻고 나면 곧장 출근이다. 혹여나 분주한 발걸음이 잘 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릴까 조심하면서도 신속하게 움직인다. 출근 준비시간을 최소화한 남편이지만 눈꺼풀은 무게를 더해가고, 하루하루 부족한 잠이 쌓여간다.


그래서 남편은 주말에 게을러진다. 주말에는 늘 아기와 아내가 먼저 일어나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남편의 깊은 코골이를 차마 멈추지 못한 아내는 같은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홀로 졸린 눈을 비벼가며 아기와 시간을 보내는 상황이 내심 서운했을 것이다. 서투른 볼맨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남편은 생각했다.


그래서 결혼 후 한번도 다툰 적 없었던 남편과 아내는 이따금씩 서운함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대화가 단절되는 순간들이 오기도 했다.


자칫 냉기가 돌 수도 있는 우리집에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는 다름 아닌 우리집 작은인간이었다. 아기의 예상치 못한 돌발행동들은 모두를 웃게 했고, 늘 그랬듯이 우리집 공기는 금세 일상으로 돌아와 가족 구성원 모두를 따뜻한 잠자리에 들 수 있게 했다.


남편은 그런 아기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표현을 참고 이해해주려 노력한 아내에게도 감사했다.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 남편은 평소와 같이 잠을 줄여가며 자신만의 역할을 마무리 짓고, 흘러간 하루를 되뇌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설거 소리가 부엌을 채우는 야심한 밤에, 남편이자 아빠가 이 글을 쓴다.




https://brunch.co.kr/magazine/babysitter

남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육아에 대해 적고 있습니다. 출산과정을 지나 육아에 돌입한 남편의 일상 속 생각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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