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시절, '내 손으로 돈을 버는 날이 온다면 반드시 골프를 치겠다'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12년이 지났고, 따라서 전 구력이 12년이나 된 아재가 되어버렸네요. 오해하지 마세요, 직장인 월급과 시간으로 잘 치기에는 무리랍니다. 구력만 적립 중입니다.못 친다는 의미입니다.
12년 전과 요즘, 골프의 위상이 달라졌음을 실감합니다. 제가 처음 골프를 치겠다 할 때는 어린것이 겉멋이네, 부자냐, 아재냐 등등 주변의 괜한 쓴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요? 테니스와 함께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기는 레저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인턴사원에게 골프를 치는지 물었을 때, 주변 친구들까지 다 친다는 대답을 들었으니, 간간이 보이는 MZ세대의 골프붐에 대해 다룬 기사들이 거짓은 아닌 듯합니다.
자주 즐기지는 못해도 제가 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스포츠인 골프가 아재감성을 버리고 젊은 친구들과 맥락을 함께한다는 점은 쌍수 들어 환영합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도 예쁘게 차려입은 훈남훈녀 골퍼들이 등장해 휴대폰을 보는 제 시간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들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짧은 치마를 입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가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왜 여성 골프복은 유독 짧을까요? 몸매가 늘씬한 모델이 등장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꼭 짧은 치마만 홍보되는 것은 조금 부담스럽습니다.더군다나 가족과 함께, 또는 친한 여성 친구들과 함께 갈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골프도 나름 운동입니다. 모든 운동복이 그렇듯 해당 운동에 최적화된 기능성 의류를 가지고 OO복이라 부르지요. 골프복도 마찬가지입니다. 골프라는 행위를 함에 있어서 최적화된 옷을 골프복이라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짧고 타이트한 치마들은 골프에 최적화되었다기보다는 시선을 집중시키는데 목적이 있어 보입니다. 많이 걸어야 하고, 때로는 언덕도 올라야 하며, 안정적인 자세를 위해 쩍벌자세를 취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미니스커트라뇨? 용도에 맞지 않는 복장 같습니다.
선택의 자유이기에 하등 상관없는 남성인 제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그 선택을 강요당한다는 측면에서 골프복 브랜드들의 횡포가 싫습니다.
젊고 예쁜 모델들이 등장하는 골프복 브랜드의 홍보사진들, 인스타그램에 열거되는 인플루언서들의 사진은 짧아도 이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구매하려는 실 사용자에게 짧고 타이트한 치마만 제시되는 현실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선택할 제품이 짧은 치마 밖에는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긴치마, 긴 반바지는 살래야 살 수가 없습니다. 팔지를 않으니까요.
모 쇼핑몰에서 골프스커트를 검색했을 때의 화면입니다.
긴바지를 입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접근했다가는 언젠가는 여성 골프복은 짧아야 하고, 타이트하게 디자인되어 몸매를 뽐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을까 두렵습니다. 예뻐야 한다는 가치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짧아야 한다는 공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점이이번 불만의 포인트입니다.
골프와 테니스가 대중화를 선언하지만, 아직까지는 몸매 좋고 젊은 여성만 즐기는 것 마냥 마케팅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중성을 홍보하지만 정작 다양성은 사라졌다는 사실이 내심 서운합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즐길 수 있는 대중스포츠로 자리를 잡아가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점점 짧아지는 여성 골프복이 싫습니다. 그리고수많은 골프복 제품들이 하나같이 짧다는 것은 더욱 싫습니다. 제 부모님은 아마도 긴바지만 입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옷을 못 사 골프를 포기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만약 여성이라면 골프복 브랜드들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적당히 하고, 이제 그만 실용적인 운동복을 만들어 봅시다. 몸매 자랑은 알아서 할 테니, 강요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