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간다는 징조

나를 잃지 않는 것

by 서담


어른이 된다는 건, 더 많은 권한을 갖는 일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엔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고, 노력하면 반드시 결과가 따라올 거라 믿었다. 사람도, 상황도, 때로는 세상조차 내 열정 앞에 움직여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갈수록 알게 된다. 사람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세상은 언제나 공정하지 않으며, 타이밍은 내가 정할 수 없다는 것을. 그 깨달음이 처음엔 불편했다. 억울했고, 무력했다. 분명 잘하려 했고, 성실했고, 간절했는데 왜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걸까. 내가 틀린 걸까, 세상이 틀린 걸까.


그러다 문득, 그 모든 과정이 ‘어른이 되어가는 징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 앞에서 억지로 쥐려 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바라볼 수 있는 태도. 그것이 어른스러움의 시작이었다.


어떤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서두르면 무너지고, 무리하면 돌아오지 못할 상처를 남긴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다. 무엇이든 때가 있고, 내가 아무리 준비되어 있어도 세상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일이 있다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름’이라는 단어 앞에서도 예전처럼 거칠게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바꾸려 하기보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더 나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 예전엔, 변화를 이끄는 사람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변화하지 않는 것을 있는 그대로 껴안을 줄 아는 사람이 더 깊고 단단하다는 걸 느낀다.


어른이 된다는 건, 모든 걸 이해하는 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것조차 품고 가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것이다. 억지로 웃지 않아도, 억울함에 휘둘리지 않아도, 조용히 중심을 지키며 하루를 살아가는 것.


요즘 나는 조급함 대신 호흡을 고르고, 비판보다 경청을 택하고, 이해보다는 수용의 방향으로 마음을 기울인다. 누군가 보기엔 덜 뜨겁고, 덜 날카롭고, 덜 용감해졌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모든 변화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다잡는다. 당장 바뀌지 않는 일 앞에서 조용히 나의 할 일을 하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조급함 대신 믿음을 건넨다.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무력해지지 않고 무력함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일. 나 아닌 것들을 바꾸려 애쓰기보다 내 마음을 더 잘 다스리는 연습. 그 속에서 비로소 나도, 타인도, 세상도 조금은 더 너그러이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한 줄 생각 : 어른이 된다는 건, 바꿀 수 없는 것 앞에서 담담히 웃을 수 있는 마음을 갖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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