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이제는 행복할 차례
행복이라는 단어는 개념적으로 모호한 말이다!
1984년 미국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주관적 안녕감이라는 단어로 새롭게 규정지었다고 합니다. 실체가 없는, 때로는 너무나도 큰 단어라면서 말이지요.
질문 던져보면 똑같은 상황에서도 서로가 다른 행복을 느끼니 말이에요. 한 집에서 한 이불 덮고사는 부부라 할지라도 똑같이 등산하고 함께 맛있는 것을 먹어도 남편은 행복하다 느끼지만 아내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거든요.
그만큼 행복이란, 다른 어떤 누구도, 상황도, 환경도 대신 채워줄 수 없는 철저한 나 혼자만의 감정일 거예요. 허나 그런 감정을 느끼는 데에 다른 누군가가, 상황이, 환경이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홀로 스스로를 행복하지 않게 만들 수도 있지만 '~때문에' 행복하지 않을 때가 훨씬 많기 때문이지요.
<나는 돈으로 행복을 삽니다> 책을 출간하고 제목이 상당히 도발적이며 자극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허나 돈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거나 돈이 무조건 많아야 행복하다는 취지는 아니었어요.
할 수 있는 것이 극히 적었던 30대의 나, 마흔을 앞두고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며 저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지나와 보니 평범한 삶을 바꾸기 위한 힘은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이룬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많지요?
마흔이라는 나이는 딱 과도기인 것 같아요. 뭔가 내가 바라는 기준선까지 이뤄냈다는 느낌을 받기도 어렵고, 무언가 바쁘게 움직이며 해내고 있지만 속도가 더디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나이도 적당히 먹을 만큼 먹었다 보니 이 나이 먹도록 지금까지 뭐 한 건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기 일쑤였지요.
고개 숙이고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마흔이 코앞에 와 있다는 느낌에 더욱더 조급해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냥 쌓이는 시간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며 걸어온 그 시간조차 나에게는 '경험'이란 것이 생겼거든요.
아직 나에 대해 제대로 알아가지 못해 내 안에 쌓여있는, 보석처럼 빛나는 경험들은 반드시 있습니다. 이제는 그 보석들을 세상에 꺼내놓고 나 자신의 빛으로 반짝여보세요.
마흔, 이제는 조금 행복해질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