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아침, 저녁으로 산책을 하며 몸을 챙겼던 시간이 있었는데, 올해가 되어 정신을 차려보니 내게 아침 시간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새벽에 잠이 들지 못하면서 점심때가 되어 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 하루를 쓰는 시간은 동일한데 왠지 손해를 보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보려 노력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수십 개의 알람이 7시부터 순차적으로 줄기차게 울렸을 텐데... 어떤 날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고, 어떤 날은 한번 정도 들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있을 뿐. 저녁에 일찍 잠들어보겠노라 호기롭게 새벽을 꼴딱 새며 저녁시간을 기다렸다 잠이 들기도 했지만... 나의 잠은 아침 시간에 더더욱 단단해져 갔다.
그래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알람으로는 택도 없으니 좀 긴 음원을 자동으로 재생시켜보자는 생각으로 설정시간에 맞춰 어플을 실행해주는 프로그램을 찾았다. 몇 개의 어플을 테스트해보고 하나의 프로그램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침에 무슨 소리를 들어야 쉬이 잠에서 깰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월간 김어준>이 선택되었다. 총수의 으캬캬 웃는 소리 정도면 잠에서 깰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말이지. 며칠 전에 들었던 박규희 씨가 나온 방송이 너무 재밌기도 했기에 주저 없이 <월간 김어준>으로 정했고, 재생 파일로는 내가 들은 적 없던 유광수 교수의 ‘8 선녀로 구운몽하다’ 편이 선택되었다.
그저, 총수의 웃음소리에 놀라면 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제도 늦은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아 이불속을 몇 번이고 뒤척였다. 아침 시간을 써야 하는데.. 써야 하는데.. 하고 몇 백번을 중얼거리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
어플이 실행된 모양이었다. 잠결에 총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잠에서 깨어나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아주, 얕게 잠이 깬 모양이었다. 으캬캬 웃는 총수의 목소리 너머로 신이 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그들의 웃음소리에,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잠결에 깔깔거리고 웃었다. 낯익은 여자의 이름이 등장했다.
진채봉
정경패
가춘운
그들의 목소리를 따라 이불속에서 쉬지 않고 깔깔깔 웃었지만 난 결국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11시. 결국 아침시간을 다 날려버리고서야 이불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웃었던 기억 외엔 방송에서 그들이 뭐라고 떠들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구운몽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보았던 김만중의 소설. 소설 지문으로 나왔던 기억 외엔 그다지 임팩트 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일장춘몽을 대표하는 소설이라 그냥 기계적으로 외웠던 기억. 8 선녀와 승려라... 흠... 하고 넘어갔던 정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대학에서 국문을 전공하며 구운몽을 읽어보려 했던 적이 있었지만, 당시 미드에 푹 빠져있던 나는 활자에 시선을 고정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구운몽은 내게 잊혀진 소설이었다.
저녁 9시가 넘은 시각. 답답함에 옷을 입고 공원으로 나섰다. 어떤 노래를 들어볼까... 하고 플레이리스트를 살피다 <월간 김어준> 파일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깔깔거리고 웃었지만,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다시 들을 생각은 없었다. 익숙한 노래 몇 곡을 재생시키며 지루해진 플레이리스트를 뒤적이다 들을 것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구운몽 편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한밤중에 공원을 돌며
나는 아침 이불속에서처럼
깔깔깔 웃었고
또 웃었다.
와 김만중 대단하네!
유광수 교수를 통해 들은 구운몽은 내가 알던 구운몽이 아니었다.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그렇게 앞뒤를 잘라내어 교과서 지문을 만들었다고? 미쳤네 미쳤어.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점점 빨려 들어갔다.
마치 구연동화를 듣는 것처럼... 어른들을 위한 구연을 하신 유광수 교수님의 힘이 너무도 컸고, 적재적소에 추임새를 넣는 김어준도 좋았다. 와 씨. 이거 너무 재밌네. 구운몽 너무 재밌네! 내가 잠결에 왜 그렇게 깔깔거리고 웃었는지 그제사 알 수 있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나의 깔깔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문화 사대주의 틀 안에서 살았던 것 같다. 유교수의 “저는 괴테보다 김만중이 더 대단한 문호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에 한참 생각에 잠겼다. 문화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 하지만 우린 우리의 문화에 대해 생각보다 스스로 낮은 평가를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1시간 30여분이 되는 파일에서 30분이 되었을 때, 파일을 멈췄다. 유교수의 설명도 너무 재밌지만, 좀 더 깔깔거리고 웃고 싶었지만 직접 읽어보고 나서 들으면 좀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말이지.
가뜩이나 무료한 요즘. 읽을 만한, 들을만한 것을 찾았다.
<월간 김어준> 유광수 교수의 구운몽 편 추천하는 바이다. 소설을 읽어보라 말할 필요도 없다. 저 방송을 듣는 순간, 당신도 나처럼 소설을 찾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