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라미 Apr 11. 2022

봄이라는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

0점에서

봄이 왔다. 기어코 왔다.

     

봄.

그다지 반갑지 않은 시간이라고 해두자. 사실, 좀 더 긴 겨울이 이어지길 바랐다.

코로나가 종식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이제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도 있을 거란 소식이 생각보다 반갑지 않은 건... 그래, 지금 나의 모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음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그럴 것이다.      


생각보다 행복한 작년을 보냈고, 생각지 못한 당혹스러운 올해를 맞이했다.

그 무엇도 나의 의도와 계획이 반영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어차피 내 인생이 의도와 계획을 따랐던 적도 없지만 유난히 예상할 수 없었던 시간들이 끝나고 난 뒤. 긴 표류의 시간을 보냈다. 새로이 살아보겠노라 몇 가지 결심을 했지만, 새로 시작한 길은 시작 후 하루정도 설레고 며칠은 불안한 거친 길이었다. 언제쯤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되물었지만, 알고 있다.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마음의 안식.

그건 아마 마지막까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저 아주 소소한 행복들을 일부로 쌓아가며 잠시나마 안식했노라 나를 속이며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좀 더 부지런히 날 속여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봄이다. 오늘 날씨 좋더라


친구의 말에 창밖을 바라보았다. 점심을 먹은 엄마가 같이 산에 가자고 했지만 거절했던 나였는데, 문득 봄이란 문장에 자전거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핸드폰과 블루투스 이어폰을 챙겨 자전거 위에 몸을 실었다.      


낮 시간에 뚝방을 찾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의 자전거 라이딩은 항상 밤 시간이었으니. 몇몇 신호등을 지나 뚝방길로 오르는 비탈에 섰을 때, 나는 육성으로 소리쳤다.     

 

우와

비탈길 아래로 뽀얀 분홍의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꽃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힘차게 밀어 올렸다.

봄이, 왔음을 그렇게 온몸으로 느꼈다.      


3년 만이었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몇 번을 숨을 참고, 몇 번을 빠르게 들숨을 쉬어가며 자전거도로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인파에서 벗어나 자전거 도로로 들어서자 페달을 밟는 발에 조금의 설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예전에 달렸던 길, 밤공기를 맞아가며 수없이 달렸던 길이었는데, 단순히 해가 있다는 것 만으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 싶었다. 이것이 비타민D의 위력인가! 자전거 페달에 속도가 붙고 붙으며 빠르게 몇몇의 교량을 지나쳤다. 이대로라면 한강에 가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한강 라이딩을 기억한다. 몇 번이고 지도를 확인하면서 다시 돌아갈까를 고민했다.

이미 늦은 시간이고, 지금 돌아가도 집엔 늦은 시간에 도착할 것 같은 데... 한강을 찍는 것이 뭐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렇게 밟고 밟아 성수대교에 도착했을 때, 꽤나 뿌듯했던 기억. 물론 집에 도착해보니 새벽을 훌쩍 넘은 시간이었지만 말이다.      


오늘, 한강까지 가봐?

페달을 밟고 밟으며 충동적으로 한강을 떠올렸다. 지도를 확인하니 이미 꽤나 멀리 왔기에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오른쪽으로 윤슬을 끼고 그 너머에 몽글몽글 피어난 벚꽃들의 색을 감상하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한강에 도착해 있었다.      


지난번 라이딩 시간에 반도 안 되는 시간.

놀라운 속도였다.      


한강엔 수많은 사람들이 봄을 즐기기 위해 나와 있었고, 그들 사이에 내가 있었다.      


불안한 봄의 한가운데 내가 있었다.




난 항상 봄이 불안했다. 새 생명이 ‘시작’을 알리는 이 계절은 나에게 항상 불안의 계절이었다. 프리랜서로서의 삶에서 봄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 아닌 새로운 불안을 맞이해야 하는 시기였다. 항상 무언가를 새로 시작해야 하고, 다시 0점이 되어야 하는 순간. 지금쯤이면 그 불안을 충분히 극복하게 될 것이라 여겼지만,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이번 봄에도

난 또다시 0점에 서있었다.     


불안과 슬픔이 뒤엉켜 숨이 막히는 순간이 왔고, 이럴 거면 그냥 다 그만두자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그만두기로 했던 나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딱, 100일. 100일만 더 일을 해보고, 그때도 아니다 싶으면 깔끔하게 그만두는 걸로. 그렇게 또  한 번 불안한 0점에서의 시작이 시작되었다.      


이제 겨우 7일 차에 접어들었다. 앞서 보내온 시간과 비슷했다. 결심을 시작한 하루 정도 설레었다가 그 이후 꾸준히 불안한 시간이 이어지는... 어쩌면 이 불안은 100일이 끝날 때까지 꾸준히 지속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웃기는 건, 그깟 꽃비가 뭐라고.


비탈길에 자전거를 밀어 올리며 맞았던 꽃비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미친 듯 페달을 밟아 한강에 빠르게 도착했던 순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의 남은 90여 일의 시간 중

한 번쯤은 꽃비를 맞을 시간이 있을 거란 기대감.

한 번쯤은 빠르게 목표치를 이룰 순간이 있을지도 모를 거란 기대감.     


그 기대감이란 녀석이 둥둥 심장을 간헐적으로 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즘 자전거를 배워 한창 자전거 타는 재미를 알아가는 그녀에게 내가 한강에서 돌아오고 있다는 이야기는 또 하나의 설렘이 되었다.      


다음 주중에
우리 가족 단체로 한강에 갈까?
      

들뜬 그녀의 목소리에서 또 한 번 봄이 읽힌다.


그녀와 한강까지 간다면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함께 달리는 시간도 우리의 봄일 것이다.      


있는 힘껏 봄을 즐겨야겠다.

그것이 봄이란 불안을 이기는 방법이 될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의 질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