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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Nov 01. 2023

여행 후 허무함이 찾아왔을 때


카톡으로 얘기를 해볼까, 하고 채팅장을 빤히 쳐다보다 그 마음을 접었다.

약속을 잡아서 내 이야기 좀 들어달라고 해볼까...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 수다를 떨 체력이 없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최근 며칠, 알 수 없는 무력감에 시달렸다.



예전에는 이런 비슷한 마음이 들 때면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듯 속마음을 쉽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후에 밀려오는 어떤 공허함에, 언젠가부터는 웬만하면 누군가에게 나의 답답함을 잘 털어놓지 않게 되었다.  






한 달 전,  나 홀로 도쿄여행을 다녀온 뒤 이번에는 가족과 함께 또 도쿄를 다녀오게 되었다. 아껴둔 여름휴가 연차를 탈탈 털었다.



엄마와는 자주 여행을 가곤 했지만 아빠랑 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라서 기분 좋게 보내다 오고 싶었다. 마침 바쁜 일도 거의 끝나서 마음이 홀가분했다.


여행의 첫날, 웬만하면 이메일을 체크 안 하려고 했는데 공항에서 나도 모르게 핸드폰에 깔린 이메일앱을 열어보게 되었다.


해외 업체에서 어떤 문제가 생겨서 급하게 콘퍼런스 콜을 하자는 연락이 와 있었다. 아니 하필이면 이럴 때...


가슴이 철렁했다.


출발 전, 부재중 자동회신 메일을 걸어놓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불편을 넘어 불안이 엄습했다.


아, 괜히 이메일을 봤구나.







비행기를 타고 도쿄에 도착한 후, 억지로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려 애썼다.


얼마만의 가족여행인데, 그 메일 한통 때문에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걱정이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더 이상 메일함을 열어보지 말자,라고 속으로 외쳤다.



해외업체도 부재중 자동회신을 걸어놓고 휴가를 알린 경우도 많았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시간이 좀 걸릴 뿐 어떻게든 일은 해결되곤 했었다.


그래, 어떻게 되든 되겠지 싶어 마음을 내려놓았다.






하루종일 밖에서 돌아다니다 숙소로 돌아와서 쉬는데 갑자기 그 메일이 궁금했다. 슬며시 메일함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받는 사람 중 한 명이었던 다른 부서 담당자가 회신을 해준 것이 아닌가.


사실 그 문제는 내가 답을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이렇게 잘 해결될 수 있는 건데 왜 그렇게 불안했지...


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 갈 날짜만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뭔가 채워져서 돌아올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돌아와서 며칠 째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이런 마음상태를 누군가에게 토로하고 싶었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갑자기 바뀐 쌀쌀한 날씨와 길에서 뒹구는 낙엽 때문이라고 애써 이유를 대 보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다시 내일이 걱정되고,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 이렇게 계속 지내도 되나 싶은 현실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마음을 부여잡고 글을 쓰기로 했다.


이러는 와중에 아는 지인이 말을 걸어와 카톡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으며 수다를 한바탕 떨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이 얘기, 저 얘기하다 보니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글을 쓰다 보니 생각이 정리가 되었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수다를 떠니  


허무했던 마음이 활기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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