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혹시 지금 핸드폰 사면 바로 개통되나요..?
집 근처에 있는 통신사 대리점 문을 황급히 열고 들어갔다. 토요일 저녁 6시쯤이었다.
다급하게 물어보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직원이 내일 오전 10시까지 가능하다며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휴, 가슴을 쓸어내렸다.
"제가 내일 오후 12시에 해외로 출국을 하는데요, 지금 가지고 있는 폰이 불통이에요. 그래서 새 핸드폰으로 바꾸려고요"
어떤 기종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자 직원분이 최신폰이라며 한 기종을 추천해 주었다.
매장 영업종료 시간이 몇 분 안 남아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핸드폰을 바로 구입해 버렸다.
다음날, 그날 산 갤럭시노트 9를 들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5년 전, 다니던 회사에서 나오게 되었다. 회사에서 해외 출장을 가며 모은 마일리지로 프랑스 파리행 티켓을 샀다. 2주 동안 나 홀로 파리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출국 하루 전날, 쓰던 핸드폰이 갑자기 멈췄다. 전원을 몇 번이나 꼈다 커보았지만 그대로였다.
이럴 수가...
머릿속이 하얘졌다.
안 되겠다 싶어서 근처에 있는 통신사 대리점으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새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띠리링 전화가 왔다. 대리점 직원이었다.
"고객님, 핸드폰이 개통되었습니다"
휴,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여행계획에 전혀 없던 최신 핸드폰을 들고 그렇게 그날 파리로 떠났다.
새 핸드폰의 속도는 참 빨랐다. 이때 아마 구글지도를 처음 써본 것 같다. 구글에서 알려주는 경로로 파리에서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또 기차를 타고 원하는 곳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었다.
만약 전에 쓰던 핸드폰을 그대로 들고 왔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인터넷 속도가 느려서 지도를 보며 어딜 찾아가는데 꽤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낯선 환경 속에서 새로운 풍경을 만날 때마다, 화질이 좋은 핸드폰 카메라로 마음껏 사진을 찍었다.
지금도 가끔 파리에서 찍은 사진을 볼 때면 새 핸드폰을 들고 신나게 돌아다녔던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어쩌다 힘든 일이 닥칠 때면 파리로 떠나기 전날, 핸드폰이 고장이 났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 핸드폰이 고장 나지 않았더라면, 아니 파리에 도착해서 화면이 멈췄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한국에서 산 핸드폰을 새로 개통해서 떠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지금의 불행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을,
또 다른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역시 인생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