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a day’ 시작합니다.
어릴 적, 억지로 일기를 쓰던 기억을 더듬어본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매일 일기를 써야 했는데, 당연히 내 의지로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선생님이 검사하기 직전, 억지로 적는 게 일상이었다. 가장 최악은 방학 때였다. 개학 직전이 되어서야 매일 비슷했던 일상을 더듬어 한꺼번에 적어내는 일은 즐거움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반복되는 일상을 기록하는 것에 나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그 시절 담임 선생님은 일기를 통해 내 생각을 검열했다. 불평을 담은 일기를 적는 날에는 꼭 한 마디를 하셨고, 내 일기장에는 빨간색 펜으로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문구가 적혔다. 게다가 글씨를 아주 반듯하게 쓰지 않으면 일기를 처음부터 다시 써야 했다. 덕분에 나는 때로 자를 그어가며 글씨를 쓰고, 매일 일기를 ‘즐거웠다’, ‘재밌었다’, ‘본받고 싶다’로 끝을 맺었다. 그러면서 일기야말로 절대 필요치 않은 지루한 반복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학창 시절 내내 단 한 페이지도 자발적으로 일기를 쓰지 않았다.
그런 내가 일기에 약간의 관심을 갖게 된 건 2021년, 그러니까 성인이 되어 취직을 하고 한참이 지난 후였다. 동생에게 ‘Q&A a day’라는 책을 선물 받았는데, 이 작은 책은 ‘내’가 완성해 나가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총 365개의 질문을 날짜별로 던지고, 5년 동안 같은 날짜에는 같은 한 질문에 대한 답을 작성하는 형태였다. 5년간 열심히 질문에 대한 답을 남겨 놓으면 나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쁜 마음으로 2021년 1월 1일, 새해의 시작을 기다렸다가 기록을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히 실패했다. 원래 일기에 대해 흥미가 아예 없는 나였다. Q&A라고 다르지 않았다. 일단 매일매일 무언가를 쓴다는 것에 길들여있지 않았고, 금세 실증을 느꼈다. 1월을 채 마치지 못하고(그나마도 드문드문 적었다) 책장 어딘가에 꽂아놓았다. 그 후는 단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과거의 이야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오늘 서재방을 정리하다가 구석에 놓인 ‘Q&A a day’를 다시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펼친 책 속에서 나는 예상치 못했던 3년 전의 추억과 만났다.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며 행복해했던 일, 남편과 함께 봤던 드라마, 짧게 적힌 하루하루의 소중한 생각까지. 읽을수록 그때의 몽글몽글한 감정들이 빠져나와 나에게 닿는 기분이 들었다. 기록할 당시는 당연하다고 생각한 일상들이 이젠 책 속에서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계속 적었으면 좋았을 텐데.’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생각이 갑자기 찾아왔다. 나에게 일기란 항상 부정적인 것이었기에, 일기를 써두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처음이었다. 동시에 기록하지 않은 나의 지난 세월이 날아올라간 풍선처럼 한꺼번에 묶여 사라져 버린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되짚어봐도 책에 적혀있는 사건 외의 2021년은 잘 떠오르질 않았다.
"1월의 기분이 5일 치나 남아있는 거야."
갑자기 올 1월 동안 5개의 일기만을 작성했다며 뿌듯해하던 동생의 말이 떠올랐다. 절로 따뜻한 미소가 지어져서 핸드폰 메모장에 말투 그대로 기록해 두었던 그 말. 다시 생각해 보니 그토록 싫어했던 매일의 일기장 검사를 내가 스스로 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쓰고 싶을 때 쓰면 되고, 나의 생각을 자유롭게 적어도 되는 게 일기라는 걸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결심했다. 'Q&A a day', 이번에야 말로 작성해 보기로. 작은 책 속에 나의 경험과 생각과 추억을 마구 녹여내기로.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미래의 내가 일상을 간간히 엿볼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 정도는 분명할 수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