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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북 May 04. 2024

여전히 식물을 돌보는 중입니다.

우리는 식물에게 조연임을 깨닫습니다.

우울과 무기력이 이어졌다. 공황으로 가만히 누워 있는 상황에서도 심박수가 날뛰었다. 계속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순간들의 연속에 나는 차라리 이불속을 파고드는 길을 택했다. 오전에 일찍 일어나 글을 쓰던 습관은 새벽녘 간신히 잠들어 일어나지 못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열심히 살기로 결심했던 수많은 일들이 다 오랜 일처럼 느껴졌고, 나는 아주 쉽게 이전으로 돌아갔다.


이 와중에 하루도 쉬지 않고 꾸준히 하는 유일한 게 있었다. 이전에도 언급했던, 식물을 돌보는 일이다. 잠을 채 털지 못하고 비실비실 일어나서 물을 주고, 적절한 시간에 식물등을 쬐어 주고, 서큘레이터를 돌리며, 벌레가 있는지 살피는 등 식물의 컨디션을 돌보는 일. 내가 최후의 방어선으로 두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것만은 하자,라고 다짐했던 그 일만큼은 다행히도 꾸준히 해나가고 있었다. 짬짬이 식멍(식물멍)을 때리는 일도 함께.


최근 식물을 쳐다보던 중 선반에서 기어 다니는 검은색과 은색의 작은 생명체를 발견했다. 벌레공포증에 가까운 나(특이사항 : 초파리도 심각하게 무서워함.)에게는 너무나도 심장이 벌렁거릴 만큼 큰일이었다. 에프킬라를 마구 뿌리고, 이리저리 벌레 사진을 찍고 인터넷에 검색도 돌려본 결과 어떤 분의 도움으로 검은 아이의 정체는 톡토기임을 알아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톡토기는 식물의 아군이라 했다.(이미 약을 친 건 미안하지만 잊기로 했다.) 조금은 늦은 것 같지만 식물에서 발견되는 작은 곤충은 모두 해충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다는 걸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적군과 아군이라는 기준선은 식물을 중심으로 둘 때 만들어진다. 커다란 식물이 주연이라면 작고 귀여운(물론 실제로는 대체로 귀엽지 않은) 조연들이 존재하는 셈이다. 나는 가드너로서 적군을 식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요즘 드라마에 사연 없는 악역이 있던가. 그들은 나름대로의 서사를 가지고 자신이 주인공인 세계를 살아갈 뿐이다. 심지어 영화나 드라마에서 때로는 주인공보다도 많은 동정표를 얻기도 하지 않던가.


사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상대방의 행동이 이해되거나 영원히 납득하지 못할지라도, 정반대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당연한 행동인 것처럼. 같은 이유로 배려해서 한 행동이 화를 부르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상대방이 나를 미워하는 이유를 영원히 알 수 없는 일도 많다. 예전엔 이해해 보려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애써왔지만 지금은 그저 다름을 받아들인다.


응애가 식물의 즙을 빨아먹고 뿌리파리 유충은 식물의 뿌리를 갉아먹는 것처럼 우리들은 살아가는 방식이 너무나도 다르다. 게다가 가드너인 나는 그들을 이해하더라도 정작 함께할 수 없음을 느낀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식물을 먹는 삶을, 나는 톡토기와 함께 식물을 지키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사실보다 큰 지구 화분의 입장에서는 응애도, 톡토기도, 사람도 모두 생태계에 필요한 존재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 각자는  주연이자,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조연일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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