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똥꽃 Nov 26. 2022

가끔 나는 내가 무섭다

다이어트 일지

다시 일을 시작하고 지난 십여 년 간은 정말 빨리 지나갔다. 처음 4년가량은 일에만 매달렸다. 그리고 5년째 접어들면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두 나라에서 대학을 벌써 다섯 곳 이상을 거친 뒤라 공부라면 이골이 날만도 한데 학위 욕심이 났다. 풀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저녁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공부를 한 덕분에 19개월이라는 짧은 에 최상위의 학점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경단녀 생활을 마치고 다시 일 한지 8년째  접어들면서는 부동산에 욕심이 났다. 하지만 대출을 받고 이사를 간 아파트는 소음이 심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지옥 같은 생활을 하던 중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을 때 살고 있는 아파트를 처분하고 이사를 하기로 결심을 했다. 마침 아파트 가격이 한참 오른 시점이라 팔 때에 돈을 조금 더 받긴 했지만, 이사 가는 곳의 아파트 가격 또한 심하게 높았다. 아파트를 팔면서 남아 있던 일 억 이상의 대출금을 모두 갚았지만, 새로 가는 아파트 밑으로 대출을 7천만 원 더 받아야 했다. 그해 12월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는 새 아파트 대출금을 7개월 만에 다 상환했다. 다시 일 시작하고 11년째에는 일 년에 대출금을 두 번이나 갚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일 시작한 지 12년째에 접어들면서 망가진 나 자신이 보였다. 그간 일하느라, 공부하느라, 빚 갚느라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내 몸과 마음은 무력하고 육중하고 느렸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이뤘지만 내 몸과 마음은 늙고 무기력해졌다. 그래서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세 달 전 운동과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처음 두 달간 동안은 12 킬로그램을 뺐다. 그리고 세 달째 접어들면서 살 빠지는 속도가 느려져서 겨우 2 킬로그램을 뺐다. 그렇게 세 달에 걸쳐 14 킬로그램을 감량하고 나는 옷 사이즈를 몇 단계 줄일 수 있었다. 아직은 내가 목표한 몸무게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새 옷을 사는 대신 헌 옷을 사 입는다. 어차피 과도기의 체중이라 오래 머물 생각이 없으므로 불필요한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인터넷 중고 시장에서 허리 26-27 사이즈 청바지를 뭉터기로 파는 사람이 있어서 구매 후  집에 와 입어 보니 잘 맞았다. 간 큰 것도 있었지만, 집에 있는 옷에 비해서는 그다지 큰 치수가 아니라 입는데 큰 불편은 없었다. 나는 앞으로 7 킬로그램을 더 감량할 것이고 허리 23-24 사이즈의 옷을 입을 것이다.


목표를 세우면 하나만 보고 끝까지 달려가는 나 자신에게 감탄할 때도 있지만 가끔씩 나의 집요함에 스스로 무서워질 때도 있다. 전에 일 하면서 19개월만에 석사 학위를 받고, 일 년에 대출금을 두 번이나 갚았던 것처럼 나는 체중 감량에 끝까지 도전할 것이다. 어쩌면 뭔가를 성취하는 것이 내 삶의 유일한 낙인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살 빼느라 바빠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