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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Mar 24. 2024

우울증 일지

제1화: 만성 우울

내 삶은 대부분 우울했다. 불운한 환경에서 자라 일찍 결혼을 하고 가까운 친구, 이웃, 동료 없이 반백 년가량 살아왔다. 드라마에서 볼듯한 알코올 중독, 폭력, 가난, 우울증, 자살, 대화 단절 이런 문제들을 가까이에서 보며 살았다. 삶이 이렇다 보니 나의 기분은 늘 우울하고, 우울의 정도가 수위를 넘어 위험단계에 도달할 때도 잘 자각하지 못한다.


금요일

출근을 하려고 집을 나서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13층에서 문이 열리고 할머니 한 분이 깁스를 한 다리로 천천히 엘리베이터 안으로 다가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할머니께 먼저 인사와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다리를 어쩌다 다치셨어요?" 할머니께서 대답하셨다: "혼자서 침대 옮기다가 이렇게 됐어요." 그리고는 할머니께서 덧붙여 말씀하셨다: "오늘은 혼자 수술받으러 가요." 할머니께서는 아마도 혼자 사시나 보다. 혼자 침대를 옮기다 다치신 몸으로 혼자 수술을 받으러 병원에 가시는 할머니가 안쓰러웠다. 속으로 '저렇게 외로운 분도 계시는구나!' 생각했다. 그날은 특별히 단체 식사가 있는 날이라 평소와 달리 사람들 속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 많이 불편했지만 준비한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어쩔 수 없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 속에 앉아 누군가가 하는 말들을 한 시간 동안 무의미하게 들었다. 생산성에 민감한 나에게는 그저 시간낭비처럼 여겨졌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왔다. 집은 직장에서 자가용으로 십오 분 남짓한 거리에 있다. 퇴근 후 거실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직장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 있긴 한 건가?' 이렇게 지난 13년 동안 집과 직장을 오갔다. 나는 그저 낮에는 직장에 밤에는 집에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그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날 밤 최근 생긴 직장에서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늦게 잠이 들었다.


토요일

늦게 잤지만 일찍 일어나야 했다. 직장에서 일이 생긴 건 화요일이었고 그때부터 몇 날 밤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이웃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라 비행기 시간에 맞춰 가려면 부산하게 욺직여야 했다. 내가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편과 아이가 준비 끝나고 나갈 때 따뜻하게 배웅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소파에 누워서 그냥 잘 다녀오라고 말만 했다.


남편과 아이가 나가고 스마트 폰으로 이것저것 보다가  어느 사이트에 올라온 누군가의 질문을 읽었다. "만약에 친구 집에 갔는데, 친구의 부엌이 지저분한 그릇으로 넘쳐난다면 어떻게 할 거예요?" 질문과 함께 정신산만한 지저분한 부엌 사진이 올라왔는데 우리 집 부엌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대답은 제각각이었다. 그런데 그중의 한 명이 이런 대답을 했다: "친구가 최근 우울해서 그럴 수 있으니,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설거지를 해 주고 같이 시간을 보내주겠다." 그 대답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사실 우리 집이 그렇게 변한 지는 벌써 한 달가량 되었다. 큰 아이가 수술을 받으러 갔을 무렵 나 또한 집안에서 안전사고를 당해서 좋지도 않은 몸이 더 나빠졌다. 퇴근 후 또는 주말 가릴 것 없이 일을 하다 보니 집안일은 자연히 에너지가 남아 돌 때나 하는 그런 사소한 일이 돼 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나에게 남아도는 에너지가 없다는 것이다. 온종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소파에서 누웠다가 앉았다를 반복하면서 열심히 티브이 리모컨을 눌렀다. 그리고 저녁 여덟 시가 넘어 대학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학 동기는 나 보다 연배가 많고 나와 자라온 환경이나 결혼 후의 인생이 비슷한 듯 다른 사람으로 한 곳에서 장기근속 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이직을 자주 한다. 그녀는 지난해 무역회사에 취직해서 최근 직급도 올라 다시 일하는 재미가 붙은 듯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잘 살고 있다니 기쁘다."는 진심 어린 말을 너무도 감동 없이 했고, 그녀는 내가 요새 우울증이 온 건지 물었다. 같은 날 온 두 번째 신호다. 몇 해전 우리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같은 주제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으니 참 아이러니했다. 그녀와 한 시간가량 통화를 하고, 나는 우울증에 먹는 영양제를 먹고 곧 잠을 잤다.


일요일

잠든 지 아홉 시간 만에 일어났다. 꽤 오랜 시간을 잔 것이다. 더 잘 수도 있겠지만 샤워를 하고 산책을 하러 나갔다. 집을 나서면서 재활용 쓰레기도 같이 가지고 나갔다. 한번 나갔다 오면 또 언제 집을 나서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가는 길에 ATM에 입금을 하려고 현금도 같이 챙겨 나갔다. 아무리 우울해도 생산성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강가 산책로에 아침부터 산책하는 사람이 꽤 되었다. 자전거를 탄 사람, 마라톤 연습을 하는 사람, 빨리 걷는 사람 등 제각각의 속도로 제각각의 표정을 한 사람들이 지나쳐 갔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빨리 가지 않아도 돼! 멀리 가지 않아도 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가 갈 수 있는 만큼만 갔다가 되돌아오기로 했다. 가는 길에 여기저기 핀 울긋불긋한 꽃 들 사진도 찍었다. 예전 (사실은 겨우 일 년 전 일이다. 짧은 시간 안에 참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에 한창 매일 산책을 했을 때,  하루 최소 만보를 찍으려면 가야 하는 지점까지 문제없이 지치지 않고 걸었다. 그때 기분으로는 한참 더 걸을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더 간다면 분명 되돌아 걷지는 못할 것 같았다. 오천보 지점에서 돌아서 오는 길에 발가락이 아프다고 아우성을 쳤다. 잠시 벤치에 앉아서 발가락을 달래고 다시 걸어 재래시장과 가까운 다리에 도착하니  다리 밑 강가에 예전 몇 번 본 적  있어 낯익은 새가 보였다.

새의 모양새가 어쩐지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강인한 듯, 고고한 듯, 외로운 듯 리고 슬픈 듯.


시장에 들러서 왕만두 몇 개를 사려고 했다. 찜통에 만두가 있는데 주인은 팔 것이 없다고 했다. 주인이 팔지 않겠다는데 왜 못 파냐고 따질 수 없으니 바로 옆에 있는 떡집에서 쑥인절미 한 팩을 샀다. 일요일 아침이라 시장에 나온 사람이 그다지 없었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 유일하게 문 연 채소가게에서 콩나물과 씁쓸한 맛이 나는 나물을 사서 집에 왔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를 자각해야 한다. 내가 오랜 기간 우울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느 순간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다는 것을 미처 자각하지는 못했다. 우울증은 앞으로도 나의 인생에 수시로 느닷없이 찾아올 것이다. 우울증 영양제 덕에 어젯밤 잠도 잘 잤고, 오늘 산책을 하며 그동안 쌓인 혼란, 분노와 슬픔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지금처럼 우울할 때 나는 함께 걸을 누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혼자 걸어야 한다. 아주 천천히 걸을 수 있는 만큼만. 날이 점점 풀리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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