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기의 늪에 깊이 빠져있던 유학생 시절 어느날이었다. 오피스 책상에 앉아 노래를 틀었는데, 우연히 유학나오기 전에 듣던 노래가 나왔다. ‘아 이 노래!’ 반갑고 기쁜 감정은 찰나로 지나가 버리고, 곧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몰려들면서 눈물이 났다. 햇볕이 쨍쨍 비치는 오피스 창가에서 혼자 누구에게 설명할 수도 없는 눈물을 흘리며 당황해했다. 이 감정은 뭐였을까? ‘회한’이 가장 가까운 감정이었던 것 같다. 그 때가 슬럼프의 한 가운데였었거든.
당시 아내와 사이가 엄청 좋았는데, 내 ‘인생회피’가 어느 정도까지 갔었냐면, 결혼기념일에 맘먹고 휴가를 내고 애도 맡기고 맨하탄을 걸어다녔는데,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왜? 내 스스로 삶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즐거움도 마냥 즐거움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가서 뭐 먹고 웃고 하긴 하는데, 그 안에 나는 없었다. 나에게 펼쳐지고 있는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좋은 일이 벌어져도 하하 하면서 내 앞에 영상처럼 지나가는 것이지, 내가 그것을 ‘살아내고’ 있지는 않은 느낌.
내가 내 삶을 부정하는 것의 가장 큰 비극은,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권리를 스스로 박탈해버리고 쪼그라드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 생각하는 것은, ‘나에게 중요한 일들을 처리해서 -> 인생의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가겠다’ 라는 도식은 틀렸다는 것이다. 오히려, ‘비록 중요한 일들은 처리되지 않았지만 -> 소소한 즐거움은 내 삶의 정당한 기쁨이므로 당당히 즐기겠다’는 것이 맞는 도식 같다. 왜냐면, 첫 번째 도식에 빠지면, 인생이 펴지는 것이 아니라 쪼그라든다. ‘나는 문제해결에 집중하고 있다’는 태도가 일견 건강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내 인생은 의미가 없다’는 태도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기 때문이다. 이건 건강하지 않다. 압박감 때문에 일이 더욱 미뤄진다.
한 가지 (ex. 취업)에 모든 게 걸려있고, 그게 안되면 의미없는 인생이란 없다. 인생은 취업보다 크다. 인생은 승진보다 크다. 인생은 입시보다 크고, 아파트 사는 것보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