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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털게 Mar 08. 2024

사교육과 인질극



1. 

한국의 사교육 시장은 ‘인질극’이랑 비슷하다. 학생들이 입시에 의해서 줄세워지는 상황에서, “남들보다 앞서가려면 우리한테 와라. 당신자식만 안오면 혼자만 뒤떨어질 것이다.” 부모는 안보낼 수가 없게 된다.

근데, 인구의 80% 퍼센트가 사교육을 한다. 그니까 그냥 모두가 다 한다. 이런 상황에서 빠지면 나만 x된다. 울며 겨자먹기로 붙어 있어야 된다. 우리의 가장 큰 공포는 ‘나만 뒤쳐지는 것’ 아니던가. 가만보면, 사교육비가 세금 비슷하게 되어버렸다.    


2.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40%다 (OECD 평균 14%). 노인이 되서도 조그마한 알바자리를 찾으시는 분들이 많다. 이런 뉴스를 보다 사교육 뉴스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부모님들이 초중고 12년 동안 애들 사교육에 들일 돈을 자기 노후자금으로 갖고 있을 수 있다면, 본인들이 목돈을 저축할 수 있어서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자녀들 또한 숨통이 트일 것 같다. 학교 끝나고 학원 안가도 되서 숨통, 노후에 부모님 부양 덜해도 되서 숨통.

한달에 50-100만원이 나간다고 치면 1년이면 600-1200만원, 12년이면 7200만원-1억4천4백만원. 큰 돈이다. 한국은 집값도 비싸고, 자동차, 핸드폰, 결혼비용 모든게 비싸다. 삶이 팍팍하다. 여기에 추가로 학원비로 더 뺏겨야 하는 것이 안좋게 보인다.    


3. 

단지 ‘옆자리 애’보다 시험을 잘 보는 것이 막대한 사교육비의 ‘유일한’ 목적이라면, 돈이 참 아깝다.왜냐면, 내가 7000만원을 써서 선행학습을 했는데, 사실 옆에 애도 똑같이 7000만원을 써서 선행을 하기 때문에. 서로 랭킹 변화는 없이 돈만 낭비한 꼴이다.


미국을 보면, 여기도 사교육이 많고 특히 중산층 이상에서 사교육으로 나가는 돈은 엄청나다. 하지만, 여기서 쓰이는 돈은 입시가 아니고서도 가치가 있는 활동에도 쓰인다. 그니까, ‘옆자리 애보다 시험 잘보는 법’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 가치가 있게 쓰인다. 예를 들어, 어떤 애는 하키를 열심히 해서 전국으로 투어를 다닌다 (스포츠).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몇년씩 파는 애들도 있다 (예술). 아니면 일찍부터 프로페셔널 소사이어티 활동을 한다 (e.g. Society of Women Engineers).


이런 사교육은 입시 외에도 자기가 발전할 여지가 있는 활동들이다. 수능을 못보더라도, ‘그래도 그거 하면서 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는 활동들.


반면, 한국의 사교육은 당연히 입시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시험을 못보면, 그 사교육은 전혀 아이에게 남는 가치가 없다. 즉, 나도 7000들였는데 옆의 애도 7000들였으면 (=현재 한국 상황) 둘 모두에게, 남는 것은 없다. 1억 4천만원만 누군가의 통장에 꽂혔을 뿐.


(입시 기준을 넓히면, 사교육도 넓어지면서 ‘그것 자체로 가치 있는 활동’들이 포함되는 장점이 있겠지만, 교육불평등이 강화될 위험이 있는 복잡한 문제)    


4. 

Bullshit Jobs (헛직업)라는 책이 있다. 헛직업은 ‘그것 자체로 가치있지 않은 활동’이다. ‘남들이 안하면 나도 안해도 되는데, 남들이 하기 때문에 나도 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텔레마케터 (전화 마케팅 김지영팀장). 어떤 회사가 텔레마케팅 부서를 만들면, 경쟁사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만들어야 하고 (안하면 내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니까), 결국 다수가 텔레마케팅 부서를 만들게 된다. 결과적으로 텔레마케팅 부서들이 생기기 이전이나 이후나 각자의 시장점유율은 똑같다. 변한 것은 회사들의 수익이 감소했다는 것 뿐이다 (텔레마케터 비용을 내고 있으니).

만약, “야! 우리 그냥 텔레마케팅 다 하지 말자!”라고 모두가 동의해서 없앤다면, 회사들은 수익이 올라가서 좋다. 뿐만아니라 소비자도 좋다. 스팸전화 안받아서 좋고 가격이 내려가서 좋다 (텔레마케터 비용이 감소하니 가격이 하락).


결국 모두가 더 좋아진다. 그래서 책은 텔레마케터를 헛직업으로 분류한다. 그것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 아닌 것. 모두가 합의해 없어진다면 모두에게 좋은 것. 이것이 헛직업이다 (저자: David Graeber).

한국의 입시위주 사교육이 헛직업인지는 각자 생각이 다를 것 같고 내 안에도 여러가지 생각이 있다. 만약에 교육부의 교육커리큘럼이 가치있는 것이면, 그걸 잘 소화하게 해주는 어떤 활동도 (e.g. 사교육) 가치가 있긴 할 것이다. 근데 현재 국민의 80%가 12년 동안 월 50-100만원을 들여야 할 정도로 가치있는지는 더 생각해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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