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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하는양 Mar 26. 2020

코로나 공포

어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스페인 요양원에서 코로나에 대한 공포로 인해 직원들이 모두 도주하는 바람에 움직이지 못해 생활 보조를 받지 못한 노인들 중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단순히 비윤리적이어서가 아니라, 성인의 행동에 그만큼 간단한 계산조차 선행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해서였다. 나는 가짜 뉴스라고 생각했고 다음날 오보라며 삭제될 기사라고 생각했다. 요즘 가짜 뉴스들이 워낙 그럴싸하지 않은가. 런데 오늘 다시 보니 여전히 그대로 있다. 그 충격적인 내용 그대로 말이다.


어르신들이 가지고 있는 질병은 다양하다. 이곳 요양병원에 계신 어르신들에게는 많은 종류의 암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종류의 크고 작은 감염병들이 있다. 반쯤은 농담처럼, 사실 모든 검사를 다 할 임상적인 타당성과 재정지원이 있다면 온갖 내성균을 다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당연한 얘기다. 우리는 무균실에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고 어르신들도 우리도 먹고 싸며 밖에 외출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다제내성 결핵이니, 슈퍼바이러스니, MRSA(메치실린 내성 포도상구균)니 VRSA(반코마이신 내성 포도상구균)니 하는 것들이 우리로서는 영 남의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병원만의 이야기일까? 나는 전국 문손잡이에서 균을 채취하면 그렇게 매독이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로 손잡이를 손으로 잡지 않는다. 팔꿈치로 대충 밀고 들어가고 옷은 헤질 때까지 자주 빨아 입는다(이 자리를 빌어 남편에게 감사와 미안함을 표합니다 ㅜㅠ). 나는 균이 어디에나 있음을 알고 있고 그 심각함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침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내일도 내년에도 한 날 한 시에 끝날 일은 아니다.


코로나19는 무섭다. 얼마나 무섭냐면 처음에 신종플루(현재는 그저 A형 독감으로만 불린다. 더 이상 신종이 아니니)가 나타났을 때만큼 무섭다. 그런데 잘 알지 못하는 사이니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가 과연 모든 커리어와 윤리와 법을 내팽개칠 만큼 무서운 것일까?


코로나19는 전염력이 강하고 대신 치사율은 메르스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당히 강력한 생존 방식(사실 바이러스에 생존이라는 표현은 이상하지만)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숙주가 사망하면 바이러스는 재생산을 할 수 없게 되고, 전파력을 잃게 된다. 그래서 바이러스는 전염력이 강하며 숙주를 적당히만 아프게 해야 얌체처럼 오랫동안 재생산을 할 수 있다. 너무 가벼우면 전파 매개체(비말 등)가 부족하고, 너무 위중하면 전파의 고리가 끊긴다. 결국 코로나는 감기만큼 전염성 면에서 위험하다.

 기저질환이라든가, 사이토카인 폭풍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오지만 사실 이것은 모든 질병의 속성이다. 기저질환이 있으면 늘 어떤 경우에나 위험하고, 사이토카인 폭풍은 거의 언제나 다른 질병에서도 유효한 낮은 확률의 불운이다. 손만 살짝 베여도 죽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독감은 물론이고 상처 감염, 장염 등 여러 경우에도 똑같이 해당된다. 즉 의학적으로는 사실, 아직까지의 결과만으로는 히나 젊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제까지 겪을 가능성이 있던(다만 전염력이 차원이 다르므로 가능성에 큰 차이가 있다) 수많은 산재한 질병들에 비해 엄청나게 무섭지는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잠재위험까지 무시해서는 안된다. 전 세계적인 방역조치나 감염관리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변종 코로나는 변종이기에 다 밝혀내지 못한 특성이 있을 수 있고 이제까지 면역이 없었던 많은 이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으며 기저질환이 대부분 있는 고령의 노인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나는 코로나의 위험을 경시하라거나, 조심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 이 공포가 모든 다른 중요한 뒤덮어 버리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는 글일 뿐이다.


 다시 돌아가서, 그동안 돌보던 어르신들을 내팽개친 직원들은 마음이 편할까? 세상이 한 자릿수 치사율의 질병에 이토록 혼란한 상황에서, 많은 노인들에게 그 보다 훨씬 높은 확률의 죽음을 선사했는데 편할 리 없을 것이다. 윤리와 커리어를 버리고 심지어 법적 처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편할 수 있을까? 확률상 코로나에 걸려 고생할 가능성이 높을까 법적 처벌을 받고 생활고에 고생할 가능성이 높을까? 이 비이성적인 행동을 촉발한 것은 사실상 공포 외에는 특별히 설명될 것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 공포는 사람의 시야를 아주 좁게 한다. 마스크를 예로 들자면 만원 지하철로 출근해야 하는 사람에게 마스크는 증상이 있건 없건 필수다. 본인이 잠복기인지 어떤 미친 사람이 앞에서 얼굴에 비말을 뿜어댈지 알 수 없으니, 기왕이면 안경도 쓰고 마스크도 하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집에 있다가 사람 없는 시간에 아무도 없는 산책로에 나갔다 오는 게 다인 어르신이 공포에 휩싸여 갑자기 2시간 동안 사람이 가득한 약국 앞에서 마스크 줄을 설 필요는 없다. 후자가 백 배는 위험하며, 오래 걸릴 뿐 주문이 안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확진자의 동선을 보고 방역 전에 겹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칭찬할 일이나, 확진자의 증상 이전 시각 행보를 보고 돌아다녔다고 욕을 하는 것은 비이성적인 행태다. 그에 더해, 단순히 외출을 했다며 비감염자를 욕하는 행태도 마찬가지로 비이성적힌 행동이다. 코로나가 돈다고 모든 세상이 180도로 변한 것은 아니다. 메르스 사스 코로나19가 돌아도 당연히 여전히 자영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사회적 거리를 지키고 개인 방역에 힘쓴다면 아예 이용해서는 안될 이유도 없다. 오죽하면 코로나보다 생활고가 더 무섭다는 기사도 나왔을까. 코로나가 돌아도 교통사고 사망자는 늘 있는데 마스크를 사야 해서 어쩔 수 없다며 갑자기 도로를 무단으로 점거하고 약국에 줄을 서서는 안 된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사람이 멀찍이 서 있는데 굳이 거리를 좁혀서 왜 쓰지 않냐고 침을 튀기며 화를 낼 이유도 없다. 인류는 늘 공격당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 매너가 없는 사람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고 지금 비윤리적인 사람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코로나는 종식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경한 경과 때문에 계절성 유행병이 될 수도 있다는 발표를 보았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러한 공포에 휩싸인 채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를 잃어서는 안 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S 약국 앞 도로 점거하지 마세요. 위험하고 불편하고...ㅜㅜ 최소한 가측에라도 주차해야 덜 위험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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