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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하는양 Dec 18. 2019

어떻게 죽을 것인가

마지막 의사결정에 관하여

 또 한 분이 위태로웠다. 전혀 예상치 못한 할머니였다. 식사도 잘하시고 기어서라도 열심히 돌아다니시고 가끔은 귀엽게(?) 문간에 앉아서 그 큰 눈으로 똘망똘망 쳐다보시기도 하고 손도 잘 잡아 주시는 분이었다. '때가 온 것 같은' 분들이 몇 분 있긴 했으나 이 분은 아니었다. 그래서 출근하자마자 나는 바짝 긴장했다. 머릿속으로 가장 중요한 설명들에 밑줄을 그었다. 쓰면 좋은 단어와 피하면 좋은 단어들을 분류했다. 가급적이면 정확히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그리고 보호자를 만났다.


 요양병원에 부모님을 입원시키는 분들은 모종의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어디 방치한 것도 아닌데, 필요한 의학적 케어를 다 받고 간병받게 하며 꼬박꼬박 경제적지출도 있는데도 직접 부양하지 못한다는 것을 대부분 몹시 슬퍼하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직접 모신다는 것에 대한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르신들은 마치 오래된 백자와도 같아서 앉아만 계셔도 연륜과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반면 30cm 높이에서만 떨어져도 도자기처럼 깨어진다. 매일매일의 변화 역시 놀랄 만큼 크다. 어제는 2~30대 장정 같고 오늘은 저승사자에 안겨 계시는 듯한 위태로움이 느껴지기도 하다. 완전히 보살핀다는 것은 병원에서도 불가능할진대 집에서는 더더욱 어렵다. 그들이 자주 찾고 의사결정을 미루지만 않아도 모든 도리를 다 하고 있다고 나는 늘 생각한다.  


 하지만 그 모든 설명에도 보호자의 죄책감이 그다지 경감되지는 않는다. 이 죄책감은 중요한 몇 가지 의사결정, 그리고 마지막 의사결정을 더욱 어렵게 한다. 의료진 입장에서야 의사결정에 대한 모든 문제들이 실무적으로 명확하지만 보호자들이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는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거기에 감정이 더해지면 더욱 어렵다. 그래서 의료진은 더욱 명료하게 설명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DNR(Do Not Resuscitate), 연명치료 중단에 대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은 오로지 심폐소생술과 기관삽관,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이 의미가 없는 경우에만 국한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회복에 의미가 없는 경우'여야만 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심폐소생술과 기관삽관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인위적인 치료를 중단한다거나, 의미없는 수명 연장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의료진, 실무자, 몇몇 관련 논문을 작성할 법한 전문가들에게나 명확하지 보호자들에게는 전혀 명확하지 않다. 나는 이것을 제일 먼저 말한다. 연명치료를 중단한다고 해서 크리티컬한 상황에서의 다른 '의미있는' 치료를 중단하면 안된다. 극소수의 몰지각한 의료진 역시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연명치료 중단에 동의해도 각종 필수적인 검사나 항생제를 중단하면 안된다. 보호자가 원해도 어쩔 수 없다. 기관삽관 역시 일시적으로 시행해서 회복될 환자라면 해야 한다. 그것은 회복가능한 치료이기 때문이다. 양쪽이 이에 관해 오해를 하면 법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둘째로 중요한 것은 장단점이다. 보호자는 치료를 하는 것에 대한 장점을 생각하기 쉽고, 의료진은 단점을 강조하기 쉽다. 둘 사이의 균형을 지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명문화된, 예쁘게 정리된 배포용 종이라도 있는 것이 좋다.  


 장점은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해본다는 것이다. 전세계 모든 사람들 중 한 명만 살려도 그 한 명에게는 엄청난 일이다. 특히 아주 젊은 사람의 경우에는 특정 기간 동안에는 DNR을 하지 않는 것을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편이다. 정말 틀렸구나, 뇌가 반이 날아갔네....싶었는데도 몇 개월 후 멀쩡히 돌아다니는 젊은이를 본 기억이 있어서이기도 하고, 아직 기적에 희망을 걸어볼 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 물론 그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는 마음이 이기심으로 번질 때가 있기는 하나, 어쨌든 장점인 것은 확실하다. 셋째로는 많이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특정한 상황에서 의료진이 좀더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연명치료와 보존적치료 사이의 애매한 치료들을 좀더 적극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은 장점이고, 또 어떤 경우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단점을 얘기하라고 하면 보통은 갈비뼈가 부러진다거나 삽관이 고통스럽다같은 것을 예시로 많이 들지만, 현실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치료가 못된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즉각 심폐소생술을 하면 기적처럼 모두가 살아돌아오지만,  현실에서는 심폐기능 정지 후 돌아오는 확률이 턱없이 낮다. 3%로 배웠던 기억이 나는데, 슬픈 것은 그 3%도 대부분은 다음 3일 내에 죽는다(수업 시간에 들었는데 출처를 못 찾겠다. 부디 너무 신뢰하지는 말기를! 어쨌든 생각보다 낮다). 이유는 명확하다. 심폐기능이 멈춘 것이 절대 다수의 경우에서는 다른 모든 의학적 컨디션의 결과지 그냥 건강한데 심장만 멈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패혈증인데 심장을 마사지해서 잠깐 뛰게 한다고 균이 사라질까? 내부에 출혈이 있어 혈액이 계속 사라지는 와중에 전기적 충격을 주어 심장을 뛰게 한들 지혈이 될까? 뇌경색이 있어 호흡중추가 멎었는데 잠시 인공호흡을 한다고 호흡이 돌아올까? 이미 망가진 다른 장기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 모든 술기는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해서, 정말로 심장이 잠깐 멈추었으며 그것을 뛰게 만들어서 심장에서 발생한 원인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을 경우와, 잠깐의 시간을 벌어 다른 장기들을 치유할 수 있는 경우에만 심폐소생술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것은, 특히나 제대로 심폐소생술을 했는데도(팔꿈치를 꺾지 않고 올바른 위치에) 이미 상태가 극심하게 안 좋은 환자들일 경우가 많다. 그렇게까지 좋지 않은 경우 뼈가 이리저리 부러지고 폐도 찌르는 경우도 있고 현실적으로는 보호자가 눈에 담는 고인의 마지막 모습이 배가 부풀고 입에 피가 고여있는 모습이 될 가능성이 높아 만류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당사자는 이미 괴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보호자에게 트라우마가 될 뿐.


의학적 희망이 없는 경우에서의 삽관은 일반적으로는 삽관시의 고통을 이야기하지만(실제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의 삽관 고통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사실 삽관을 하는데 고통을 느낄 정도의 상황이라면 삽관하지 않는 것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혹은, 이미 늘어져서 삽관을 하는데 고통을 못 느낄 정도의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런데 경제적인 문제는 좀더 명확하다. DNR을 했다가 철회하는 경우는 있지만 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는 도중에 치료를 중단할 수는 없다고 보면 된다. 보호자들은 대부분 병원이 돈 때문에 그럴 것이라 짐작하지만, 병원에서 주로 적극적인 치료를 밀고 나갈 때에는 사실은 적자가 나는 경우가 많다. 아무도 일하다 감옥에 가고 싶어하진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의료진은 처음부터 DNR을 설명하게 되고, 보호자는 병원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며, 번복되거나 지연되는 의사결정의 현장이 발생한다.   


의사결정은 사소한 것도 어렵다. 중대한 것은 열 배로 어렵다. 마지막에 대해 평소에 생각한다는 것은 사실은 꽤나 우울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니 미리부터 그 걱정만 하면서 살 이유는 없다. 다만 언젠가, 생각해야 할 날이 오거든 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심폐소생술에 대한 사족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않을 까 우려하여 길거리에서의 심폐소생술을 지나치게 권장하는 경우가 있다. 119로 오는 단순 실신환자들에 대해 행해지는 잘못된 심폐소생술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놈의 잘못된 예비군훈련은 얼마나 흔한지. 다행히 너무나 잘못된 나머지(;;;) 득도 실도 없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간단하게 짚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니 얘기해보려 한다.


 1) 심폐소생술에서 인공호흡보다 심장압박이 훨씬 중요하다. 인공호흡은 오히려 몹시 어렵고 감염의 위험도 있고 위생적 거부감도 있느니만큼 그냥 압박만이라도 잘하면 도움이 된다.

 

 2) 심장압박은 정말로 심장을 누르는 것이다. 열나서 기절한 사람, 오래 서 있다가 실신한 학생등한테 하는 것이 아니다. 심장이 멎거나 멎었는지 어쩐지 잘 모르는 사람한테 하는 것이다(애매하면 틀려도 된다 당연히!). 심장이 뛰는 것이 확실한데 누르는 것은 오히려 몹시 위험하다. 연습한다고 장난으로 하지 말 것. 


 3) 심장은 그다지 왼쪽에 있지 않다. 

가운데에 있는 뼈를 눌러 압박하는 것이다(제발 정가운데에 있는 뼈를 누를 것. 성인에서는 젖꼭지를 연결한 가상의 선 중앙점이 맞는 위치지만, 생각보다 모든 사람의 젖꼭지가 같은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늘어져서 배꼽에 닿아있는 어르신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 어쩌다 보니 젖꼭지가 없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위치 조금 틀린다고 큰일 안난다)

 온 힘을 다해 왼쪽 갈비뼈를 부숴놓으면 그 갈비뼈가 그 사람의 폐를 찌를 것이다


 4) 팔꿈치를 절대 구부리지 말라 

 

 5) 생각보다 세게 눌러야 한다. 성인은 4~5cm, 소아는 가슴 1/3이 눌릴 정도로.


간단히, 팔꿈치 펴고 가운데를 세고 빠르게 누르면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할 일이 많이 없는 사람들에게 조언하자면 생각보다 빨라야 하고 생각보다 세게 눌러야 하고 생각보다 정중간을 눌러야 한다.


나머지는 다 틀려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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