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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하는양 Nov 18. 2019

6. 약은 좋지만 별 것 아니에요

 약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 종류는 성분이 실생활에 쓰이는 역할로 나뉘기도 하고, 작용하는 기전에 따라 나뉘기도 하고, 표적에 도달하는 시간이나 지속되는 시간을 조절하기 위한 제재의 형태에 따라 분류되기도 한다. 특히 마지막이 중요하다. 우선 성분은 이름도 길고 복잡하다. 작용 기전은 관련 전공자가 아니면 이해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형태는 다르다.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 때로는 강렬한 보랏빛이나 형광 빛깔로 빛나는 분홍색이기도 하다.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특질이다. 나는 하얀색과 짙은 초록색이 혼재하는 캡슐 형태의 약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초록색은 신뢰가 가지 않는가. 그리고 캡슐은 녹으면서 살짝 단 맛이 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아무 맛도 나지 않을뿐더러 중요한 성분을 감싸고 있으니 표적까지 좀 더 안전하게 도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느낌일 뿐이다. 정으로 되어 있는 것, 액상으로 되어 있는 것, 캡슐로 되어 있는 것 모두 각각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의사인 나조차도 좋아하는 형태와 색깔이 따로 있는데 환자들이 그렇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노인의학이라는 분야는 분명히 실재하지만 아직까지는 여러 과에 걸쳐 있어 하나의 전문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소아청소년과와는 대조적이다. 소아청소년은 성장과 발달이라는 대표적인 특징은 있지만 노인은 신체 기능의 저하와 더불어 그에 따른 환경적인 것들, 즉 많은 약을 같이 복용해야 한다든지, 낙상과 폐렴이 주요 관심사가 된다든지, 매사에 활동의 제약을 고려해야 한다든지 하는 요인들이 특징이 되기 때문에 다소 특이점이 명확하지 않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환경적인 특징은 노인의학에서 중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만성 질환자들의 특징과 교집합이 크다. 이 특징은 하나하나가 매우 흥미로운 여러 문제들을 불러일으키지만, 지금은 약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요양 중인 어르신들은 가장 적게는 5~6가지, 많게는 15가지 내외의 약을 복용한다. 주로 2가지는 소화 지연과 변비와 같은 기능성 소화 장애 때문에, 4~5가지는 당뇨와 혈압 때문에, 2~3가지는 콜레스테롤과 뇌졸중 예방 때문에, 2~3 가지는 치매나 파킨슨 때문에 복용한다. 당뇨나 혈압이 조절되지 않으면 거기서 다시 2~3가지가 추가되기도 하고, 간담도계에 문제가 있으면 다시 2~3가지가 추가된다. 아직 치매에 수반되는 공격성, 행동 장애나 두통, 요통에 대한 통증조절약은 시작하지도 않았다. 다시 말해 많아도 15가지 약이 된다는 것은 실제로는 약이 더 많은데 줄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보다는 대체적으로 약을 많이 복용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어르신들의 약에 대한 집착은 간혹 유별날 때가 있다. 약에 대해 지나치게 경계하는 것도, 약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도 사실은 모두 약에 대한 과대평가 때문에 생겨난다. 약은 대부분 신체의 정상적인 흐름을 모방한다. 반대로 작용하여 상쇄하거나, 비슷하게 작용하여 도와주거나, 혹은 비슷한 일은 하지만 실제로는 효과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균형을 맞춰 주기도 한다. 우리 몸에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수많은 생리적 반응들이 있고 약은 그중의 하나, 둘 혹은 세 개의 기전만을 감소시키거나 강화한다. 약은 대단하지만 명확한 한계가 있다. 그것을 알아야 약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고 약물을 처방하는 의사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약의 효능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약이란 '알려진' 기전의 일부를 건드린다. 게다가 한 가지 흐름이 여러  임상 증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부작용이라는 것이 여기서 나오며 부작용의 '부'는 부수적인 작용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전립선 비대가 있어 소변을 보는 것이 시원치 않은 할아버지가 기침 때문에 감기약을 먹었는데 엉뚱하게 소변이 나오지 않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는 반대로, 한 가지 임상증상이 수십 가지의 망가진 기전을 통해 나오기도 한다. 당뇨의 뜻은 그저 소변이 달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약은 그다지도 많으며 심지어 조절이 완벽하게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변에 당이 나오지 않게 막는 한 가지 물질'이 있어서 '그 물질'을 보충하면 되는 식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몸에 수많은 생체 반응과 생리적 흐름이 있어서 그 결과의 하나로 당이 나오지 않았던 것인데, 그중 한 가지 이상이 망가져서 수많은 결과 중 하나로 당이 나오게 된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약은 한정적이다. 만약 이때껏 살면서 먹은 모든 약들이 평생 작용한다면, 약을 한 알 먹을 때마다 이때까지 먹은 모든 약들의 용량과 반응을 계산해야 할 것이다. 약은 분해가 될 수밖에 없고, 또 분해가 돼야 좋은 것이다. 그래서 약물의 효과는 언젠가는 끝이 나고, 그래서 중독이라는 오해까지도 생길 만큼 연달아 먹어야 하는 일이 생긴다.  

 또한 생각처럼 '영약'이라는 것은 없다. 옛날에는 원재료를 직접 캐거나 꺼내었다. 어떤 조건에서 얼마나 오래 자라난 약초인지, 어디서 살던 어떤 종자의 장기인지에 따라 약으로 쓰는 재료들의 상태가 제각각이었다. 아마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어떤 원료에는 특정 성분이 너무 많았고, 어떤 것은 너무 적었으며 어떤 것은 적당했으리라. 하지만 오늘날에는 원료를 추출하고 불순물을 거른 상태로 약을 만든다. 제네릭이라고 불리는 카피약들도 원료와 함량이 같다. 물론 약물을 전달하는 것에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상 많은 약들이 대부분은 대동소이하며 심사를 통과할 때도 거의 비슷한 성능을 내면서 비슷한 안전도를 보유해야 한다. 어떤 약을 먹었는데 잘 듣고 같은 성분의 다른 약을 먹었는데 잘 안 들었다면, 그리고 제형도 다를 것이 없다면 사실 가장 큰 원인은 본인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제형을 제외하고는 사실 어떤 약은 빨갛고, 어떤 약은 파랗고, 어떤 약은 크기가 크다는 것과 같은 외형적인 요소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물론 아주 중요할 때가 있긴 한데, 처방전이 없는 상태에서 약품을 식별할 때에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또한, 특정 색소에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에도 중요하다). 즉 약물의 색상과 모양은 고유의 식별 특질임과 동시에 어느 정도는 마케팅의 일부처럼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부작용이나 상호작용은 어떤가? 사람들은 부작용에 대해서도 과하게 생각한다. 약물의 부작용은 광범위한 가능성이 있지만, 인체란 상당히 많은 보완책을 지니고 있는 정밀한 생체 기계인 만큼 특이적인 상황이 아니면 대부분은 잘 적응하게 되어 있다. 약품이라는 것은 가장 엄밀하게 검사되는 것 중의 하나인 만큼 수 만 명 중 한 명만 보이는 어떠한 증상이 '혹시나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수준이어도 부작용의 하나로 기재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 약품 안전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수준으로 보고하고 관찰하는 것이지 개개의 상황으로 보았을 때는 약물 말고 다른 훨씬 가능성 높은 요인들이 있는 경우가 당연히 더 많다. 까마귀의 날갯짓에 대한 미묘한 여파로 배가 떨어질 확률보다 배가 익어서 떨어지거나 때마침 바람이 불어서 떨어질 확률이 훨씬 높은 것처럼 말이다. 반면에 상호작용은 오히려 이보다 훨씬 중요하고 훨씬 빈번하며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기전도 상당히 명확한 편이다. 어떤 약물은 다른 약물의 흡수를 촉진시키기도 하고, '경쟁적'으로 작용하여 타 약물을 후순위로 밀어버리기도 한다.  또는 약물의 분해 업무량을 증가시켜 장기를 혹사시키게 하기도 한다. 유명한 예인 주스와 약, 콜라와 약처럼 음료와도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것이 약일 진대 약끼리의 작용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주의해서 사용하면 큰 문제가 없고, 사실상 상호작용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처방을 할 수 없는 지경인 경우도 많지만 어찌 됐건 늘 주의해야 하며 늘 가짓수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금기인 약물조차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으니만큼 약물끼리의 상호작용은 늘 초미의 관심사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요즘은 자동으로 타 병원에서 처방받은 것과의 상호작용도 자동으로 점검이 되도록 시스템이 되어 있다.  

 

 요약하자면 진실은 이렇다. 약은 늘 효능으로써 얻는 이익이 부작용이나 흔한 약물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불이익보다 비할 수 없을 만큼 월등히 높아야 승인이 된다. 따라서 단일 증상이나 질병에 관해서라면, 약은 대부분 쓰는 것이 안 쓰는 것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약이라는 것은 오랜 원수처럼 지내왔던 몹쓸 만성 통증을 없애줄 수 없다. 증오의 대상이 밉살스러운 정도로 변하게 도와줄 뿐이다. 그리고 그 도움을 주는 약물은 많으면 많을수록 서로 싸워댄다. 그래서 우리는 약물은 안 쓰는 것보다는 쓰는 게 낫고, 많이 쓰는 것보다는 적게 쓰는 것이 좋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약을 맹신하지도 평가절하하지도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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