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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하는양 Sep 30. 2019

5. 영유아검진과 '요즘 것들'의 항변

나는 학창시절 아주 우등생은 아니지만 비교적 우등생이기는 했다. 착하고 성실하고 책임감있다는 소리가 아니고, 그냥 성적이 좋은 편이었다. 특히 언어영역을 좋아했고 지금에 와서는 다소 동의할 수 없는 여러 사항들도 의문을 갖지 않고 순종적으로 외웠다. 그 중의 하나에 대한 이야기다.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늘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자신의 감정에 대한 표현에 있어 불확실한 표현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오늘자 핫(hot)한 글을 쓰신 분의 주제기도 한데, 그 주제는 요즘 것들은 자신의 감정을 자신이 모를 리가 없는데 추측의 표현을 쓰고, 판단이나 제안에 있어서도 자꾸 추측성 표현을 쓰는데 그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참 이상한 소리다. 


짧다면 짧지만, 내 고통의 크기로 인해 억겁의 시간처럼 흘러갔던 병원 운영의 기간이 끝났다. 나는 머리털이 빠지도록 고민한 결과 계약 연장을 하지 않기로 했다. 약국은 말 그대로 난동을 부렸지만 나는 이 결정이 그에게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홀가분했다. 홀가분하고 행복한 것은 맞는데, 동시에 착잡하기도 하고 묘한 슬픔도 있는 것 같았다. 방금 나는 확실하게도 자신의 감정에 대해 추측의 표현을 사용했다. 뭔가 찝찝하긴 하지만 그게 꼭 슬픔인 줄은 모르겠고, 나의 부족한 어휘상 꼭 맞는 적절한 단어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추측의 표현을 쓰면 안되는 이유는 '무슨 감정인지 모를 리 없기 때문'인데, 나는 이 전제 자체가 상당히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감정은 누구나 느끼지만(하다 못해 '분노'라도) 그것을 객관화하여 나의 감정이 다른 이의 감정과 얼마나 같은 성질을 띠고 있고 얼마나 비슷한 크기를 지니는지 비교해 볼 도리는 없다. 그렇다 보니 흔히들 표현하는 그 단어가 내가 현재 느끼고 있는 것에 적합한지, 즉 내가 겪은 감정이 무엇인지 그 누구도 정확하게는 할 수 없다. 사실 이것은 언어의 본질적인 문제기도 하다. 내가 쓰는 단어가 다른 이에게 똑같이 받아들여질지는 수많은 경험적 근거들로 인해 추측하게 될 뿐 정확히 같다고는 볼 수 없으며, 사실 일상 생활에서도 그로 인해 수많은 오해와 억측과 싸움이 벌어지지 않던가(실제로 나는 부인과 진료시 느끼는 '수치심'을 사전적 의미, 즉 자기 자신이 검사를 두려워함으로서 생기는 의사로서의 '부끄러움'과, 자신의 몸에 대해 부족하게 느끼는 '부끄러움'에 근접한 의미로 사용해 본 적이 있고, 너나할 것 없이 '성적 수치심'이나 '모욕감'으로 읽은 수많은 선생님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바람에 죄책감에 시달린 적이 있다). 언어 자체가 가진 속성이 그러할진대 심지어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결국 확신하는 편이 확신하지 않는 것보다 신기한 일일 것이다. 


기타 다른 추측성 답변에 관해서도 나는 상당히 할 말이 많은데, 왜냐면 나는 이 확언 답변에 대한 문화 차이(주로 보호자의 자가기입식 설문지의 답변 선택지 때문에)로 인해 꽤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유아검진에 관한 이야기다. 부모로서 영유아검진을 한 번이라도 받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한국 영유아발달검사(K-DST)는 상당히 여러가지 사항을 고려해서 세심하게 만들어진 설문지인데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답변에 대한 모두가 납득할 만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형 DENVER-II라는 기존 설문지는 답변이 예/아니오 밖에 없어서 무응답을 할 것이 아니라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K-DST는 : 

 

1) 전혀 할 수 없다 2) 하지 못하는 편이다 3) 할 수 있는 편이다 4) 잘 할 수 있다 


로 나누어져서 좀더 세부적으로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설문지를 외국에서 가져와서 각고의 노력 끝에 한국식으로 변형시킨 전문가들의 바람과는 달리 이 설문지는 거의 2번 문황과 3번 문항만으로 점철되고 말고, 아무리 오랫동안 살펴 보아도 정상으로 보이는 아이가 '주의'나 '발달 상담 요망'에 해당하는 설문지를 들고 오는(혹은 건강인에 입력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 많은 부모들이 모두 자녀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관심이 없어서, 혹은 책임지기가 싫어서 이런 식으로 답변하는 것일까? 당연한 얘기지만 영유아검진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경제적 불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서 억지로 왔다면 그저 '잘 할 수 있다'에 자를 대고 그어 버려도 될 일이며 그까짓 설문조사에 확신하는 선택지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녀에 대해 책임이 면제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말로 잘 하고 싶어서, 아이들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싶어서 이들은 고민한다. 


사실 모든 '전혀 할 수 없는' 아이들은 '하지 못하는 편'이며, 모든 '잘 할 수 있는' 아이들은 '할 수 있는 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 편'이라는 선택지는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볼 때 훨씬 안전한 선택지이다. 한국 부모들은 정확하기를 원하고, 자신의 답변으로 인해 아이들에 대한 의사의 판단이 흐려질까 몹시도 불안해하며, 아이의 모든 상황에 대해 학술적 전문가가 아닌 부모가 감히 '확신'해 버려도 되는지 의문을 갖는다. 영어에서의 'sure'와 우리나라의 확신은 그 정도가 다르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틀리는 것을 상당히 두려워하며, 그로 인해 민폐를 끼치는 것을 몹시도 꺼려한다. 


마지막으로, 특히나 확언하기를 두려워하는 요즘 것들에 대해 항변하고 싶다. 

사실 요즘 것이라고 하기에는 나는 다소 애매한 경계에 있기는 하지만(특히나 젊은이에 대한 정의는 40대 초반까지로 연장되었으나 묘하게 꼰대층은 30대 초반으로 내려온 이 이상한 세태를 볼 때) 요즘 것으로서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삶에서 거의 20년 간은 확신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온 것이나 다름없다. 어릴 때는 텔레비전과 신문과 어르신들이 하는 말씀이 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다가, 어느날 갑자기 인터넷이라는 게 생기고, 그 다음에는 스마트폰이, 개인 미디어가 판을 치기 시작했다. 어제 옳았던 것은 오늘은 틀린 것이 되었고, 어제 같았던 것은 오늘은 다른 것이 되어 버렸다. 어디 일상 생활만 그랬을까. 나름 엘리트 의사에 속하는 외삼촌은 내 볼품없는 성적을 감싸기 위해 '우리 때는 생화학 책이 이렇게 얇았는데 이제는 외울 게 너무 많지'라고 위로해 주셨는데, 우리 때는 기본서 한 권이 무거워서 도둑 잡을 때 쓰기 딱 좋을 정도였다(물론 들어서 스윙할 수 있을 근력이 있다면 말이다). 임상 관련 책은 더 가관이었는데 그 책의 내용 중 '~일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다', '~일 것이다', '~일 것으로 보인다', '~일지도 모르지만 저자 개인은 동의하기 힘들다'를 모두 지우면 책이 반 권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는 농담을 입에 달고 살았을 정도다. 오죽하면 시험을 치기 위해 공부하다가 대체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며 일지도 모르지만 저자는 동의하지 않는 걸 왜 외워야 하나 싶었던 적도 있다. 그 뿐이랴. 내가 학교 다니는 동안 글루코사민은 골다공증에 도움이 되었다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가 혹여나 도움이 될 수도 있는 보조제가 되었고 심지어 문제집 답안도 도움이 되므로 권고하는 것이었다가 권고하면 안된다였다가 개인의 의사에 따르되 권고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가 되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앞으로 의사로서 '아무것도 확신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20년쯤 후에는 혈액형이 성장 중에 갑자기 변하는 사람이 여럿 발생할지도. 손만 잡았는데 애가 생기는 기적이 사실 있을지도. 암이 어떤 식물 추출물 먹고 싹 나을지도. 아프리카 부두 주술이 사실 의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이었을지도. 탈모에 기가막힌 고약이 나올지도. 초능력이 과학적으로 밝혀질지도. 예전 신경과 선생님들은 신경이 한 번 죽으면 다시는 안 자라며 재활도 의미가 없다고 배웠다가, 이제는 아주 느리지만 효과가 있기 때문에 지속적 재활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배우는 내용이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기존에 알던 지식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선택하는 법을 배운 세대고, 우리 이후의 세대는 그보다 더한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그러니 제안을 함에 있어 내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기가 그만큼 더 어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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