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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하는양 Jul 04. 2019

4. 병원에도 진상이 있을까?

최근 몇 년간 '진상고객'은 꽤나 큰 이슈였다. 온갖 자극적인 소재들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고, 때 이른 마녀사냥이나 도가 지나친 신상 털기 등이 유행처럼 번졌다. 그 대상은 주로 요식업계를 방문한 손님들이었다.
 
 사람들은 가끔 '그래도 병원에는 진상이 드물지 않겠냐'고는 한다. 물론 그런 일이 이슈화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하지만 그것은 병원이 담당하는 공적인 역할과 인식 때문이 크다. 병원은 사실 학교와 더불어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상식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많을 수밖에 없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학교나 병원에 가지 않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카페에서 해괴한 일로 이슈가 됐던 사람들은 절대다수가 학교도 다니고 병원도 방문했을 것이다. 무언가 먹고 즐기러 갈 때는 최소한 방문 시 대부분 기분이라도 나쁘지 않았지, 병원에 방문할 때는 대부분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방문한다. 사람들은 외식하고 커피를 마시러 갈 때 일부러 가는 경우가 많지만 병원은 사실상 어쩔 수 없이 온다. 이러한 여러 이유로 인해, 사람들은 병원에서 참으로 예민하다.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은 당연히 흔하고 있음 직한 문제다. 아이가 소파에서 신발 신은 채로 뛰어다니는 것이나 옆자리 친구에게 싸움을 거는 것을 제지하지 않는 보호자, 진료실 내부에서 중요한 통화는 물론 잡담을 하느라 시간을 계속 지체시키는 사람들 정도는 사실 흔할 수밖에 없다.  그 외에 상식적이지 못하지만 그래도 흔한 일들도 있다. 자주 왔으니 순서를 바꾸어달라, 동네 주민이니 더 잘해달라, 대형 카페에서 열심히 활동 중이니 나한테 잘 보여라 등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늘 있다. 하지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편법이나 범법을 요구하는 사람들이다. 가볍게는 학교에 빠지기 위해 끊임없이 진료확인서를 떼겠다고 하는 아이들이 있고, 그 외 대리처방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거나  보험사에 제출할 수 있게 화상을 좀 더 심각하게 기술해달라고 하거나 가벼운 교통사고로 심각한 질환이 야기됐다고 서류를 꾸며달라고 하는 경우와 같은 심각한 경우들까지 있다. 병원에 들르지도 않고 전화로 처방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방문도 안 하고 원하는 내용의 서류를 팩스로 보내 달라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을 무시하는 부류도 있다. 들어와서 관상을 보고 의학적인 것과 관계없는 질문, 즉 결혼 여부, 자녀 수, 나이 등만을 계속해서 묻는다거나 여자여서, 어려 보여서 등등의 이유로 못 미덥다고 앞에서 말하는 경우 등이다(여의사 말고 진짜 의사 나와... 이런 대사를 직접 듣게 될 줄은) 셀프 진단 셀프 처방을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이 분들은 어떤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다. '이 약 주시고, 이 약은 빼 주시고, 이건 이름이 이거여야 하고, 노란색 약으로 주세요. ' 특히나 이런 분들의 특징은 선입견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점이다. 유명 소아과 약은 잘 듣는데 여기 약은 안 듣는다며 그 소아과 처방전대로 좀 내라며 짐짓 화가 난 목소리로 처방전을 내민 분이 있었는데, 우연히도 한 알도 빠짐없이 같은 약이 처방된 적도 있다. 성분은 물론이고 제약회사까지 같았다. 접종도 마찬가지로, 어디서는 잘 놓는데 여기서는 붓는다더라 같은 식으로 글을 남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국소반응은 매회 5~9%의 확률로 생기고 생겼다가도 안 생길 수 있고 안 생겼다가도 생길 수 있다. 어차피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국가접종 백신은 나라에서 관리하며 심지어 어떤 백신은 보건소에서 일괄 배분하고 보관상태도 관리받는 것인데, 단지 비급여 접종을 저렴하게 놔줬다는 이유로 오만가지 의심을 다 해대곤 한다. 

 이런 오해와 의심은 사실 정보의 편향성 때문에 자주 생기는 편인데 예를 들어 아이가 팔이 빠졌을 때 1. 사진을 찍고 맞춰주는 경우 2. 그냥 맞추는 경우 이렇게 2가지의 경우가 있다. 둘 다 각자의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원칙적으로는 더 안전한 방법이며 비용이 적게 들고(의사 수기료는 안 나와 몇 만 원씩 진료비가 저렴해지는데 엑스레이 포지셔닝을 하다 보면 대다수라 저절로 맞춰진다) 2번은 빠르고 간편하다. 특정 상황에서 서로 다른 의사들은 언제나 서로 다른 결정을 할 수 있고 각기의 장단점이 있는데, 같은 치료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소리를 지르는 경우들이 있다. 나 같은 경우 원칙을 좋아하는 편이라 1번을 선호하는데 2번으로 치료받았던 사람이 실력이 없어 사진을 찍냐며 고함치며 화냈던 기억이 있다. 수납액이 많이 저렴해지니 대접받지 못한 듯한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흔한 경우다. 가끔은 아주 특이한 경우들도 있다. 피부염이 생겼다며 방문한 분이었는데, 병원에 기침을 하는 환자가 있었다며 본인이 감기 옮으면 어쩔 거냐고 들어오자마자 화를 버럭 냈다. 이곳에 기침하는 사람은 못 들어오게 해야 하지 않냐며...... 할 말을 잃었다. 아픈 사람을 못 들어오게 하는 병원이라니, 애초에 병원인 의미가 없지 않은가.


 대기시간으로 엄청나게 화를 낸 분도 기억이 난다. 대기시간이 길어질 것 같아 직원이 미리 설명을 드리자 집이 5분 거리니 집에 다녀오시겠다고 나갔는데, 예상보다 대기시간이 짧아서 바로 연락을 드리니 그냥 앉아있을 선택권을 빼앗겼다며 갑자기 울먹이며 화를 있는 대로 내셨던 것이다. 정확히 대기시간 예측을 못했으니 서운한 것도 이해는 갈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소리를 지르고 직원을 윽박지른 다음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진료실에서도 다시 화를 낼 일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비급여 진료일 경우, 서비스를 미리 받은 후 서비스는 공짜였을 테니까.... 하고 환불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것을 전부 병원 탓을 하는 경우도 있다. 피부관리를 받은 후, 다른 곳에서 무언가를 받았다가 감염성 피부염이 생기면 그걸 병원에 와서 따지는 경우이다. 얼굴 피부관리를 받았더니 목에 멍울이 생겼다고 하는 경우도 보았다. 한의사 분께 한의원은 이런 일이 없냐고 했더니 '마을버스 ㅇㅇㅇ번이 지나가면 꼭 허리가 아프다'는 것을 주장하는 분은 있다고 했다.
  
 3일간 감기약을 받아가고, 한 달 후에 폐렴이었다고 호소한 분도 있었다. 3일간 감기 치료를 했는데 호전이 없었다면 다시 평가를 하든지 계속 치료를 받는 것이 상식 아닐까? 3일간 약 받아 간 후 27일간 자가 치료하다 굳이 폐렴을 만들어서 불평을 하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조금 납득이 안 갔다. 학원 선생님이셨는데, 본인은 학생이 3일간 수업을 듣고 27일간 학원에 나오지 않고 독학하다 시험을 쳤더니 성적이 좋지 않아 컴플레인했다면 납득했을지 정말 묻고 싶었다.


 사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가 제일 기분이 나빴던 건 두 문장이었다. '동네 장사 이렇게 할 거야?' 하는 것과 '맘 카페에 올릴 거예요' 딱 이 둘. 화내고 불법적인 것을 요구할 때는 맞지도 않게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어쩌고 윤리의식과 사명감이 어쩌고 하다가 갑자기 협박할 때는 또 장사라니 대체 어느 쪽으로 욕하고 싶은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 병원이 진상 때문에 힘든 것도, 진상이 아무리 많아도 이슈화시키기 어려운 것도 이 양면성 때문이기는 하다.


 사실 위 사례들은 가벼운 사례들이고 잠 못 이루는 밤이나 술을 부르는 사례들은 아니다. 사람과 밀접한 직업인 만큼 인간의 밑바닥과 추악함도 정말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해야 할까. 특히나 응급실 정도 되면 사람이 추락하는 데는 끝이 없다는 것까지 느낄 수 있게 된다.  가볍게는 콧물이 조금 난다, 모기에 물려 가렵다, 어제 술 먹고 숙취가 있으니 영양제 좀 달라는 식으로 다른 사람이 죽어가든 말든 본인 편한 길 찾아와서 베드나 대기열을 차지하고 순서대로 봐달라는 사람부터, 옆에서 심폐소생술 중인데도 그 사람은 글렀으니 자신을 봐달라고 불쑥 커튼 열어젖히는 사람까지. 패싸움하다 꿰매러 와 봉합 중인 사람한테 담배연기 내뿜으며 자신은 상남자라 마취가 필요 없다며 폼 잡는 사람부터 마약 내놓지 않으면 찢어 죽이겠다는 사람까지. 멀쩡히 살아있고 위독하지도 않은 어머니를 안락하게 보내 달라는 자식들도 있었다.


 한편으로 피부미용은 컴플레인 성격이 많이 다르다. 진상과 예민한 사람과 정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있는 사람이 마구 뒤섞여 정리가 어렵다. 우선 진상은 악의적인 목적으로 금품갈취를 위해서 컴플레인을 한다.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고, 모공에 블랙헤드가 끼면 시술 자국이라고 우기며 드러눕고, 심지어 서비스를 3년씩 받아 챙기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까지 되는 경우 보통 그 끝은 소송전이다. 예민한 사람은 약간의 변화에도 걱정하느라 잠을 못 이루고, 계절적 변화에도 시술 탓일까 봐 전전긍긍한다. 여름에 시술을 받으면 여름에 받아서 피부에 기름기가 있고 얼굴이 타며 땀이 많이 나고 모공이 커졌다고 하고(모두 여름에 피부가 저절로 보이는 변화) 겨울에는 같은 시술을 받아놓고 건조하고 뾰루지가 나며 거칠거칠해서 자주 튼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신체 이형증이 있어 끊임없이  시술이나 수술을 반복하고 받을 때마다 컴플레인한다. 필러를 녹였다 빼길 반복해서 울퉁불퉁해지고, 과도한 성형으로 인조인간이 되어간다. 사실 이런 경우 반드시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데 애매한 것이 치료가 필요하다고 얘기하면 책임회피다, 정신병자 취급을 한다며 난리가 날 것이고, 계속 시술을 해 주자니 그것도 못할 짓이다. 그래서 초반에 어찌 되든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위에 얘기한 많은 가벼운 일들과 진상 사례들은 사실 몰라서 생기는 경우, 급한 마음에 실수한 경우가 섞여 있다. 그리고 진상이 많다지만 그보다는 고마워하고, 믿고 따르고, 인간적인 정을 보이는 수많은 좋은 사람들이 그보다는 훨씬 많다. 그래서 어떻게든 버텨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나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도 일부러 위의 많은 사례를 얘기한 것은 의사도 사람이고 하나하나의 사례들로 마음 아파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배송하는 친구를 알기 전에는 택배기사의 고충에 대해 온전히 몰랐고, 해외 파견직으로 근무하는 친구를 알기 전에는 특수한 상황에서의 설움을 몰랐고, 친정 어무이로부터 각종 독특한(?) 학부모님들에 듣기 전에는 교사의 고충을 몰랐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많은 직업적 관심사와 고충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면, 이 세상 자체가 npc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매 순간 느끼기가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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