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상대로 하여금 계속 거짓말을 하게 하는 사람이었더라고요
이미 엘리멘탈 열풍이 지난지 한참 인지라 이 글을 쓰는게 좀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최근 디즈니 플러스에 엘리멘탈이 올라왔으니 뒤늦게나마 글을 써보려 한다. 나도 엘리멘탈은 한참 극장에서 상영중일 때, 너무 보고 싶은데 같이 보러갈 사람을 찾고 일정을 잡자니 귀찮아서 그냥 동네 영화관에 혼자 터덜터덜 걸어가서 봤는데, 묘하게 예상과는 달랐지만 그 다름이 주는 매력이 또 좋았달까? 생각보다 재밌게 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우연히, 해당 작품이 처음 올라왔을 때 부터 재밌겠다! 나중에 한번 봐야지하고 언제나 그렇듯 보지 않은 채 찜만 해두었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인 '끝나지 않는 세번째 데이트'를 침대에 누워 선풍기로 머리 말리는 동안 잠깐 봐본다는게 그대로 머리가 바짝 마를 때까지 다 봐버렸는데, 보면서 엘리멘탈 생각이 나더라는 거지.
그 이후로 만나는 사람 마다 엘리멘탈과 끝나지 않는 세번째 데이트를 엮어서 팔아봤는데, 이게 또 얼마나 잘 팔리는지, 다들 아주 그냥 당장 두 작품 다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이 말이에요? 그냥 그렇게 영업왕으로서 뿌듯함만 갖고 지내려다가, 모든 아이디어는 언제나 불현듯 찾아오는 법. 이거 글로 써봐도 괜찮겠는데?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휴. 서론이 너무 길군요. 자, 그럼 두 작품의 연결고리가 뭐길래 그렇게 영업을 하는 족족 성과를 냈던건지 얘기를 해볼게요. (또 이렇게 각잡고 시작하려니 안팔릴거 같지만서도 암튼)
그대로 머리가 바짝 마를 때까지 다 봐버렸는데
두 작품 다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최대한 스포는 자제해보겠지만 잘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알아서 주의 바랍니다. 헤헤.) 엘리멘탈의 주인공은 물과 불인데, 물은 웨이드라는 남자 캐릭터고, 불은 앰버라는 여자 캐릭터다.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물인 웨이드는 약간 전형적인 미국의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나고 자란 사람을 캐릭터화한 느낌이고, 불인 앰버는 미국의 아시아계 이민 가정에서 나고 자란 사람을 캐릭터화한 느낌이다. 그렇게 다른 가정 환경과 가치관 때문에 둘이 서로 끌리면서도 발생하는 갈등 같은게 귀엽고 재밌고 창의적으로 펼쳐진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후는 그냥 스포네요. 스포입니다. 스포 싫어하시는 분들은 그만 읽으세요. 허허.) 앰버가 자기 꿈을 찾게 되었고, 웨이드의 도움으로 그 꿈을 이뤄볼 수 있게 됐는데, 가족, 특히 그중에서도 아버지 때문에 망설이는 부분이 나온다. 이때 웨이드 입장에서는 꿈을 망설이는게 살짝 이해가 안되는거지. 웨이드는 기본적으로 가족들에게 늘 정서적으로 지지를 받으며 자라와서 뭐든 하고 싶은게 있으면 할 수 있고, 감정표현도 솔직하게 할 수 있는 반면, 앰버는 기본적으로 아시아계 가정이기도 하고 이민자 가정이다보니까 가족 전부가 악착같이 살아와야 해서 충분한 정서적 지지나 응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랄까.
가족 전부가 악착같이 살아와야 해서
끝나지 않는 세번째 데이트는 사실 엘리멘탈처럼 두 사람의 문화적인 차이가 메인이 되는 내용은 전혀 아니고, 뉴욕에서 데이팅 앱으로 만난 두 사람이 충동적으로 세번째 데이트 겸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그 사이에 코로나 락다운이 되면서 돌아오지 못해 몇 달이나 강제로 함께 살게 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이게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남자 주인공이 브이로그를 찍는답시고 여행 초반부터 영상을 찍었기 때문인데, 진짜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걸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지점이랄까. 암튼, 근데 내가 엘리멘탈과의 연결고리를 찾은 지점은 두 주인공의 배경 때문이기는 한데, 남자 주인공은 엘리멘탈의 물인 웨이드 처럼 미국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나고 자란 걸로 추정이 되고, 여자 주인공은 엘리멘탈의 불인 앰버처럼 아시아계 이민 가정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다.
이 둘의 가정적 배경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사실 거의 없다. 왜냐면 일단 기본적으로 둘다 결국 미국인이기 때문에 적당히 개방적이면서도 적당히 경계하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 한가지 지점이 달랐다. 바로 그 지점 때문에 엘리멘탈이 생각났는데, 바로, 여자 주인공이 아버지에게 본인이 지금 외국에 남자와 단둘이 있단 사실을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기는 바로 그 태도. 여자 주인공은 락다운이 된 상황에서도 끝까지 아버지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다가, 후반에 가서 어쩔 수 없이 아버지가 알게 될 것 같자 엄청나게 망설이고 걱정하다가 드디어 말을 하는데, 심지어 그것 조차도 완전히 솔직하지 않다.
사실 여러 여자 친구들이랑 왔고, 그 중에 한명이 남자고, 근데 그 남자가 내가 오랫동안 만났던 사람이라고 말하려고 막 스토리를 짠다. 이때 이렇게 아버지에게 말하려고 긴장하고 있는 여자 주인공을 보고 남자 주인공이 이해를 하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왜 굳이 거짓말을 하느냐. 나에게도 거짓말을 했냐. 혹은 앞으로도 할거냐. 그러자 여자 주인공이 우리 부모님은 나를 너무 통제하려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네가 내가 하고 싶은걸 하지 못하게 하면 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할거야. 라고 말을 하는데, 순간 아... 난 상대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었구나...
네가 내가 하고 싶은걸 하지 못하게 하면 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할거야.
일단 엘리멘탈과 끝나지 않는 세번째 데이트의 연결고리는 바로 이 장면 때문이었다. 환경적인 요소 때문에 혹은 덕분에 정서적 지지를 받거나 줄 수 있었던 가정에서 나고 자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만났을 때 드러나는 그 모습. 약간은 슬프면서도 각자가 다 이해 되면서 안쓰러워지고 가여워지는 순간이랄까.
최근 연애를 했을 때, 너무 힘들고 괴롭던 와중에 애착이론이란 걸 알게 되어서 한참 빠졌었는데, 그 애착이론 까지도 함께 연결이 되면서 두 작품이 서로 착 달라붙는 느낌을 받았달까나. 그리고 난 나의 전 연인이 끊임없이 나에게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사람이었구나... 라는 반성도 동시에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다시 전 애인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도록 넘치는 정서적 지지를 줄 수 있느냐? 아쉽지만 그건 어렵다. 비록 걔가 이해가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내가 그 역할까지는 못하겠는거지.
끊임없이 나에게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사람이었구나...
연애 당시에도 애착이론을 알게 되고, 걔와 내가 왜 이렇게 우리 연애를 망쳐먹고 있는지, 그 근원이 우리 각자의 어린 시절의 정서적 지지가 충분히 안정적이기 못해서 라는걸 안 순간 서로가 너무 안쓰럽고 불쌍했는데, 내가 이런 관점을 가진 상태로 두 작품을 보게 되어서 그런지, 이해가 되면서도 슬프고 씁쓸했다. 물론 두 영화 모두 내 연애와 달리 해피엔딩이었지만. 그래서 괜히 부럽고 질투나기도 했고.
호호. 암튼, 어떠신가요 들? 글로 한 영업도 잘 먹혔는지 모르겠네요. 두 작품 이런 관점에서 한번 같이 봐보셔도 좋을 듯 해요. 뭐 사실 영화 팔러 온건 아니지만요. 영업 잘 한다고 해서 저한테 떨어지는 것도 없고... 그저 오늘도 성공적인 영업이었다는 뿌듯함만 남을 뿐... 호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