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기 중 미국에서 교수로 재직하는 친구가 있다. 작년 여름, 친구의 귀국에 맞춰 대학 때 친했던 친구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점심때 만나 그간 쌓인 이야기를 풀다 보니 다섯 시가 넘어서야 헤어졌다. 지난주 토요일, 이 친구들과 다시 만났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이어간 모임은 무려 일곱시가 넘어서야 끝났다고 한다. 간접화법으로 전하는 건, 이번 모임엔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년 3월, 영어스터디를 개설했다. 그동안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스터디에 주로 참여해왔었다. 하지만 오프라인 스터디가 코로나기간 동안 뜸해지자 아쉬운 마음이 커졌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야하기에 스카이프로 온라인 스터디를 개설했다. 스터디 모집 게시글에 몇 분이 회신을 주셨고, 매주 토요일 밤 우리는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새로운 멤버가 중도에 합류하기도 하고 개인사정으로 떠나기도 했다.
지금은 다섯 명이지만, 스터디 구성원 중 2년 이상 꾸준히 인연을 이어오는 이는 나를 포함해 세명의 여성이다. 미국인과 결혼해 덴버에서 체류 중인 50대 여성,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40대 여성, 프랑스에서 박사후과정 중인 30대 여성. 이 중 프랑스에 계셨던 분은 지금은 귀국해 전공을 살려 배터리분야에서 연구자로 활동하고 계신다.
온라인으로 100번 가까이 만났지만 직접 만날 일이 없었던 우리는 드디어 지난주 토요일에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미국에 계신 분이 잠시 한국을 방문하셨기 때문이다. 이 분의 따님이 참여한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로 우리가 찾아갔다. 대학 동기들과 모임에서 먼저 자리를 떠야했던 이유이다. 페어가 오후 6시까지인데, 입장 대기에만 1시간 가까이 소요되기에 서둘러야만 했다.
온라인으로만 만나왔던 분을 실제로 만난다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슴 설레는 경험이었다. 매주 토요일 1시간씩 이야기를 이어갔기에, 우리를 서로를 꽤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년간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깊이 있는 이야기는 나눴지만, 정작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인식이나 관점, 가치관에 대해서는 의견을 나눴지만, 각자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사적인 영역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면을 통해서 만났던 것보다 두 분은 더 앳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영어 목소리만 나누다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새로웠다. 나는 영어로 이야기할 때는 한국어로 말할 때보다 톤이 낮아지고 목소리가 굵어지곤 한다. 내 의견을 힘줘가며 피력하기 때문인 듯 싶다. 반면에 우리 말로 이야기할 때는 톤이 올라간다. 반가운 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높아진 텐션이 목소리에도 묻어난다. 나의 상이한 목소리 톤에 두 분이 만남 초반에 살짝 어색해하는 게 느껴졌다.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를 방문한 건 처음이었다. 페어는 2015년에 시작됐는데, 매년 7월과 12월, 매년 두 차례 개최된다. 이번이 15번째였다. 부스를 운영하는 수백명의 작가들은 자신만의 개성과 독특한 그림체를 선보이며, 일러스트가 담긴 엽서, 포스트잇, 스티커, 파우치, 키링, 족자와 같은 굿즈를 판매 중이었다.
스터디 멤버분의 따님은 친구와 함께 공동부스를 운영 중이었다. 눈길을 사로잡은 캐릭터 세 명의 엽서를 딱 다섯 장 구매했더니, 미니버전 그림을 몇 장 선물로 안겨주셨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를 통해서 이미 인지도가 있는 작가분인지, 몇몇은 그림 넘버 등을 구체적으로 문의하기도 했다.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를 찾는 팬들이 생긴다는 건 작가로서는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페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내내, 내가 창조한 무엇인가를 매개로 소통할 수 있는 <지음>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이글거렸다.
한 부스에서 취향저격인 작가님을 만났다. 일러스트레이터 BAEKSAN님. 나른하고 몽환적인 그림체가 인상적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기븐>의 한장면을 연상시키는 그림과 주말 아침 냥이의 기상 공격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늦잠을 이어가는 듯하는 그림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더 많이 구입하고 싶었지만 눈 질끈 감고 딱 두 장만 샀다. 망설이다 구입하지 않은 그림들이 집에 와서도 내내 눈에 밟혀 삭제했던 인스타그램을 다시 깔고 작가님을 팔로잉했다. 팔로워가 3만4천명이다. 이 분의 작품에 취한 이는 나뿐이 아니었던 거다.
어렸을 때는 누군가와 인연이 단절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학년이 바뀌거나 학교를 바꾸며 친했던 친구와 소원해지는 게 못내 아쉬웠다. 이제는 안다. 인간관계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유효기간이 만료되면 가차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해야 하는 식품과 달리, 사람과 사람 사이 유효기간은 생명력이 강하다. 수십년 간 연락을 주고받지 않아 유효기간이 도래했다고 생각했던 관계가 갑자기 되살아나기도 한다. 옛 친구들처럼.
어릴 때와 비교하면 어른이 되어 맺는 관계는 얕은 관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적인 연락을 주고받는 경우가 흔치 않다. 취미나 공통 관심사와 같은 공통분모를 토대로 인연을 맺었더라도 별 일 없는데 단순히 안부인사를 주고받는 사이로까지 발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이 느슨한 관계가 좋다. 매일 나에게 허용된 얼마 안되는 자유시간을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촘촘하게 나누기에는, 에너지도 시간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떠나가버린 인연에 연연하지 않기에 내 마음에는 늘 빈자리가 넉넉하다. 새로운 인연이 쉽사리 자리잡을 수 있다. 최근에 새롭게 만든 나의 대부분 인연은 온라인으로, 보통은 나의 일방적인 호기심과 열정으로 시작된다. 쌍방의 깊은 관계로 발전하지 않더라도, 나만의 단기 덕질로 끝나버리는 관계라도 나에게는 모두 소중하다. 나이와 언어, 인종과 문화의 벽과 경계를 초월해 모두 친구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