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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Nov 25. 2023

건치 찾아 삼만리 가족 수난사

어렸을 때 즐겨보던 애니메이션들은 대부분 성장 스토리를 품고 있었다. 고난을 극복해 가며 한 뼘씩 나아가는 이야기는 늘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빨간 머리 앤, 플랜더스의 개, 들장미 소녀 캔디, 그리고 엄마 찾아 삼만리. 특히 <엄마 찾아 삼만리>는 엄마의 발자취를 쫓아 쉼 없이 이동하는 어린 소년에게, 이미 떠나 버린 엄마의 남겨진 흔적만 안겨주는 야속한 에피소드만 주구장창 이어져 더욱 가슴 아팠던 기억이 있다.


스토리의 결은 다르지만, 어제 치과를 다녀온 후 건강한 치아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 지 다시금 깨닫게 됐다. 엄마를 찾겠다는 뜨거운 신념으로, 무려 12,000km를 이동한 마르코와 비교하니, 그동안 건치를 향한 나의 마음은 노력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는 어리석은 행보로만 점철되어 있었기에 부끄럽기 그지없다.


우리 가족은 다들 이가 멀쩡하지 않다.


큰 애가 한참 유치를 갈던 어느 날, 아이 발치를 끝낸 후에 의사 선생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말씀하셨다. 멀쩡한 영구치를 유치로 잘못 알고 뽑았지만, 바로 다시 심었으니 괜찮을 거라고. 비록 그 치아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다른 치아와 비교했을 때 발육상태가 좋지 않아 이로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큰 아이가 성격이 순둥순둥해서 이후 단 한 번도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내 가슴 깊은 곳에는 유치와 영구치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아이가 겪지 않아도 될 아픔을 경험하게 한 것에 대해 큰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아이가 교정을 시작할 때 치과에서는 유난히 작은 치아들을 포함해 4개 이를 발치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큰 아이 치아에 대해 아련함과 회한의 심정으로 가득한 나는, 발치 교정에는 극구 반대했더랬다. 어리석었다. 발치를 했더라면 교정시간을 좀 더 단축했을 테고, 교정효과도 더 나았을 텐데...




3년 전,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오던 아들은 길이 고르지 않은 곳에서 넘어져서 이 3개가 부러졌다. 부러진 이 조각 중 큰 거 몇 개를 찾아들고 있는 아들에게, 마침 주위를 지나가던 행인분들이 우유를 사다주며 치아를 보관하게 도움을 주셨지만, 부러진 치아를 다시 붙일 수는 없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라 응급실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병원을 찾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토요일 늦은 밤 치과응급이 가능한 곳은 주위에 거의 없었다. 10차례 이상 전화를 돌리다 치과진료까지는 아니지만, 상태를 진단해 줄 수 있는 곳을 간신히 찾았다.


1시간 정도 이동하는 그 거리가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응급실 안으로는 보호자 한 명만 동행이 가능하다고 해서 아이 치료와 관련된 이야기를 행여 놓칠세라 잔뜩 긴장하며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하지만 이런 시련은 이후에 아래와 같은 브런치 글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https://brunch.co.kr/@justina1031/10 

캐나다에서 아이 셋을 홀로 돌보며 고군분투 박사여정을 이어가던 때. 주말에 엄마 노릇해보겠노라고 아이들을 스케이트 수업에 데려갔다. 아이들이 수업에 참여하는 동안, 나는 다음 주 수업을 준비하며 읽어야 하는 아티클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아이들을 지켜보며 논문 읽기를 병행했다.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눈을 들어보니, 스케이트를 타던 막내가 앞으로 고꾸라져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헬맷과 무릎 보호대를 착용했지만, 안면 보호용 철망은 없었던지라 아이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버렸다. 관중석에 함께 있던 학부모 중 한 분이 의사라서 아이 상태를 지켜보고 다행히 다친 이가 모두 유치니, 월요일에 치과에 가서 발치를 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그 당시 느꼈던 황망한 마음은 벌써 9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어제 일처럼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 홀로 외국에서 아이를 돌본다는 것의 무게가 더없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막내는 계속 서럽게 울고 두 아이들은 뒤따라 오지만 아직 너무 어려 큰 도움은 되지 못하고.


돌이켜보니 그 당시 막내가 경험한 고통은 앞으로 계속 이어질 치아 분투기의 서막에 불과했다. 막내의 치아 고난기는 작년부터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다. 턱이 아프다고 하소연을 해서 살펴보니 윗니와 아랫니가 맞물리지 않는 개방교합이었다. 어릴 때는 고르고 흰 건치를 자랑하던 아이였는데, 영구치가 나면서 유치만큼 예쁘지가 않았다. 게다가 밤마다 이갈이가 심하고 엎드려자곤 하는 습관이 있어서인지 개방교합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교정 전문 병원을 찾았지만 서울 성형외과를 추천하며 양악수술과 교정을 병행해야 한다는 비보를 접했다. 연예인들이나 하는 뼈를 깎는 양악수술을 내 딸이 해야 다니. 딸도 내키지 않아 하고, 나는 더 내키지 않았다. 큰 애 교정을 했던 병원을 찾아 양악은 원하지 않으니 교정만으로 할 수 있는지 살펴봐달라고 부탁드렸다. 원장선생님께선 어렵지만, 해보겠노라고 말씀하시며 양악수술 없이 교정에 성공한 케이스들을 몇 개 공유해 주셨다. 하지만 학술적인 사명감을 갖고 하는 것이니, 아이의 교정 경과 사례를 개인정보는 보호되는 선에서 컨퍼런스 등에서 발표할 수 있다고 덧붙이셨고, 우리 가족도 동의했다.




건치를 자랑하던 남편은 얼마 전 어금니 한 개와 헤어졌다. 그 어금니 한 개를 발치하기 위해 대학병원만 여러 군데 몇 차례 방문했고, 아들이 보호자겸 늘 동행했다. 방학이 끝나 아들이 더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되자, 내가 조퇴를 하고 남편 병원행에 함께 했더랬다. 어금니 한 개를 잃었을 뿐인데 남편은 그 뒤로 딱딱한 음식과는 결별했다.  


나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아직까지는 이가 멀쩡한 사람이었다. 건치까지는 아니지만, 스케일링도 주기적으로 하고 충치치료 후 인레이가 몇 개 있기는 하지만, 나름 우리 집 치아건강의 최후의 보루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내 치아 상태에 대해 지나치게 자만했다.


돌솥밥을 먹을 때는 부드러운 누룽지가 아니라 딱딱한 누룽지를 즐기고, 간식으로는 진미채나 쥐포, 생라면을 씹어먹곤 했다. 그다지 더위를 안타는 편인 내게도 유독 더워 힘들었던 올여름에는, 퇴근 후에 매일 팥빙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그 안에 든 얼음을 우적우적 깨가며 먹는 게 큰 낙이었다. 이런 내 식습관을 잘 아는 한 친구는 '우리 나이에는 이제 치아건강을 위해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충고를 했지만, 귀에 들어올 리 만무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왼쪽 어금니 부분이 불편했다. 딱딱한 견과류를 먹던 중이었는지, 평소에 즐기던 불량 간식을 먹던 과정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이후 불편한 왼쪽 어금니 대신 오른쪽 어금니를 주로 이용하며 식습관을 크게 바꾸지는 않았다. 연말이 다가오자 올해 미뤄둔 숙제 중 시급한 것들을 완수해야겠다 싶어졌고, 최우선순위에 있던 치과부터 방문했다.




상태를 설명하고 X-레이부터 찍었다. 사진으로 본 치아 상태는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오른쪽 위 제일 끝에 자리한 어금니의 끝부분이 살짝 깨져있었다. 그 옆 어금니는 인레이 주변에 금이 가 있는 상태였다. 스케일링을 하던 분께서 오른쪽 어금니에도 살짝 실금이 가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를 꽉 무는 습관이 있다. 검색을 해보니 이런 행동도 이에 부담이 되는 피해야 하는 습관 중 하나였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크라운 치료를 권하셨다. 조금 검색해 보니 금 인레이를 하는 경우, 오랜 시간 센 힘이 계속 가해지면 치아에 균열을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크라운 치료 예약을 잡고 나니, 나 역시 이제 남편처럼 딱딱한 음식과는 영영 작별을 하겠구나 싶어졌다. 그동안 고마운 줄 모르고 함부로 아무렇게나 사용해 온 소중한 내 치아들에게도 미안해졌다.


아직 사랑니가 나지 않아 치아가 28개였던 막내는 교정을 위해 4개 치아를 뽑게 되어 이제 24개가 남았다. 4개 사랑니를 모두 발치하고 어금니도 한 개 잃은 남편은 27개 치아가 있다. 큰 아이는 28개가 모두 있지만 2개 치아는 기능을 못하고 있다. 아들도 겉보기에는 28개 치아이지만 사고로 부러진 2개 앞니는 레진으로 형태만 잡아놓아 치아 구실을 하지 못한다.




나는 크라운 치료가 완료될 때까지는 당분간 3개의 치아에 최대한 무리가 가지 않도록 식이에 유의해야 한다. 기능이 저하된 치아상태에 대한 상실감이 젖어 있다, 문득 얼마 전 보았던 로봇다리 김세진 님의 어머니인 양정숙 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양정숙 님은 두 다리와 다섯 손가락이 달린 오른손을 가지지 못한 신세를 한탄하는 아들에게, 그가 갖지 못한 단 세 가지가 아니라, 그가 이미 갖고 있는 많은 것들에 집중하도록 강조하셨다.


사랑니를 두 개만 발치했기에 나는 이가 30개다. 우리 집에서 이가 가장 많다. 이 개수로 왕을 정했다는 신라 초기 이사금 국왕 시대라면 우리 집에선 명실상부 제일 어른인 거다. 치과진료는 언제나 끔찍하게 무섭고 힘들지만, 크라운 치료 잘 받고 남은 치아들이 오래오래 내 곁에 머물 수 있도록 힘껏 노력해야겠다.


진정한 어른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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