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부러진 이를 이어 붙인 아들이 밥을 먹다 심드렁하게 내뱉는다. 꽤 많이 깨져버린 이를 레진으로 이어놓은 탓에 밥을 먹을 때마다 엄청 조심하고 있다. 앞니를 쓰지 못하니 신경 써서 음식물을 양 어금니 쪽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 마치 모세가 홍해를 양 옆으로 가르는 기적을 일으켰듯이, 매 끼니 식사 때마다 아들은 모세가 되어 음식물을 갈라낸다.
아들은 작년 여름 끝자락에 자전거를 타다 고꾸라졌다. 길이 평탄치 않아 앞으로 엎어졌는데 그만 얼굴이 콘크리트 바닥을 강타했다. 졸지에 앞니와 옆니, 송곳니까지 이 3개가 여러 조각으로 부러졌다. 앞니는 1/3쯤 사라졌고, 옆니는 남은 게 그렇게 많지 않고 송곳니는 그나마 제일 상태가 괜찮았다.
주말 10시가 다 된 시간이라 병원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부랴부랴 치과 응급을 찾았지만, 코로나 19 상황이라 방문 가능한 곳이 거의 없었다. 십여 차례 이상 전화를 돌려 1시간 거리에 있는 병원을 간신히 찾았다. 간신히 찾은 응급실에서도 소염 치료와 진통제 외에는 특별한 조치를 받을 수 없었다.
가슴을 졸이다 월요일이 되자마자 찾은 병원에서는 신경치료 후 크라운을 씌울 것을 권했다. 아직 10대인 아들 치아의 신경을 죽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른 병원에서는 레진으로 씌워서 생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해줬다. 병원에서 그리 급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니 마음이 놓였다. 어떤 치료로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시간만 흘렀다. 마스크 벗을 일이 없기에 더욱 차일피일 미루게 됐다.
졸지에 아들 이 세 개가 사라져 버렸을 때는 엄청 심각했는데, 이 없이 반년 남짓을 지내다 보니 나름 아들의 새 얼굴에 익숙해졌다. 분명 시작은 비극이었는데 살다 보니 희극으로 변신했다. 말할 때마다 부러진 이가 보이니 아들과 말할 때는 늘 웃음기를 안게 됐다.
아들 치아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실비변상으로 치아 치료비를 얼마간 환급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청구기한은 상해일로부터 반년.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환급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목돈 들어가는 걸로 해주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우리 가족은 마라톤 상의 끝에 레진치료로 결정했다.
아들의 멀쩡한 치아가 아직은 좀 어색하다. 치료 전에 기념사진을 찍어두고 싶었지만 아들이 싫어했다. 막내딸이 그린 우리 가족 그림에 남은 부러진 이를 한 아들모습이 예전 상태를 알려주는 유일한 흔적이다.
아이들의 치아와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자면 끝이 없다. 가장 큰 가슴속 상처는 큰 딸의 영구치를 뽑아버린 것이다. 물론 병원 의사의 잘못이었지만, 엄마인 나도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수를 깨달은 의사가 다시 바로 집어넣긴 했지만, 후폭풍으로 큰딸의 옆니 크기는 유독 작아졌다. 아마도 이후 치아 성장이 멈췄을 게다.
수년이 흘러 큰 딸 치아 교정을 위해 치과를 방문했을 때 의사는 문제의 그 옆니 발치를 제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치아가 너무 작아 큰 기능을 못하니 발치해도 무방했는데 딸에게 미안해서 발치하지 않기로 했다. 그 탓에 딸의 교정은 예상했던 2년을 훌쩍 넘어 4년 남짓이 걸렸다.
큰 딸은 몇 달 전에 교정을 끝내고 지금은 유지기만 끼고 있다. 밥 먹을 때마다 유지기를 벗어서 그릇에 담가 놓는데 마치 틀니를 연상시킨다. 우리 가족은 유지기를 그냥 편하게 틀니라고 부른다. 막 스무 살이 된 딸은 그때마다 의문의 1패를 당하고 초로의 할머니로 희화화된다. 여덟 살 때 가슴속 아픈 손가락이었던 딸내미 영구치 상실 사건이 틀니로 이어지면서 비극이 다시 한번 희극으로 변신했다.
1여 년 전 오늘, 자정을 10여분 앞두고 퇴근해 지친 몸을 이끌고 간신히 자리에 누웠을 때, 막내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요새 왜 이렇게 평온한가 했거든요. "응, 왜 이렇게 평온한데?"
더 이상 이를 안 빼도 돼요. 1년에 몇 번씩 닥쳐오던 위기를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돼요.
막내딸에게 이 뽑는 게 이렇게 큰 스트레스인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막내는 캐나다에 있을 때 처음 이를 갈기 시작했다. 캐나다는 치과보험을 들어도 이 하나 뽑는데 기본 10만 원 남짓이 드니 치과 의사들도 무리해서 이를 뽑으려 하지 않는다.
이를 뽑으러 처음 갔을 때 아이가 너무 무서워하니 아이를 달래다 지친 의사는 부모가 뽑아도 된다며 우리 가족을 돌려보냈다. 간호사는 아이에게 사과 주면서 베어 물게 하면 그냥 빠질 거라며 충고를 했다. 영구치가 이미 조금 보였기에 마음이 급했지만 겁 많은 나는 도저히 딸 이를 뽑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남편이 시도했는데 아이에게 큰 고통만 안기고 이 뽑는 데는 실패했다.
결국 치과에서 치아 뽑기 나머지 숙제를 끝냈다. 막내의 치아 분투기는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해에는 스케이트를 타다 고꾸라져서 앞니가 피범벅이 돼버렸다. 발치가 불가피했고 다행히 영구치가 아니라서 상실감이 크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홀로 낯선 공간에서 피투성이가 된 아이 입을 바라보며 충격에 빠졌던 그 순간의 공포감이 선연하다.
어른인 내게도 힘든 순간이었는데 하물며 예닐곱 남짓 어린이가 견디기란 더욱 힘들었을 터. 평온한 일상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하고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막내는 바로 렘수면에 접어들었다. 아이들이 각자 나이에서, 각자 위치에서 나름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안고 살고 있다는 걸 새삼스레 곱씹어보고 있는데, 아들이 방문을 열고 얼굴을 들이민다.
아들에게 막내 이야기를 전하며 물어봤다.
왜 요새 여동생이 평온하다고 느낄까?
아들은 대답은 전혀 뜻밖이다.
요새 엄마가 아주 늦게 들어와서
나름 노력하지만, 아이들 시선에선 아직도 많이 부족한 엄마인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이렇게 실수투성이 엄마지만 생활 속 우중충한 사건사고가 비극 일색으로 흘러버리지 않고 유쾌 상큼한 코미디로 변신할 수 있는 건, 다 가족의 힘이다.
홍해의 기적을 경험하는 아들과, 유지기를 끼는 큰 딸과, 이 뽑는 고통을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되는 막내딸을 위해 이번 주말엔 아이들 치아별 맞춤형 특별식을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