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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Jun 17. 2024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

뭐든지 미리미리 꼼꼼하게 준비해야 직성이 풀리는 슈퍼 J형이다. 예측가능한 상황 속에서 충분히 미연에 방지 가능한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도 만만치 않다.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플랜 B를 비롯한 백업조치를 해둬야 마음이 편안해지기에 불필요한 재원낭비로 흐르기 일쑤다.


인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달성하는 것을 목전에 두고 있다. 외국행을 준비하면서 온갖 경우의 수에 대비하다 보니 기회비용이 고공행진 중이다. 통상적인 사례에 따라 비자가 발급될 거라는 낙관전망 하에 일찌감치 집을 구해둔 탓에 마음의 평화를 얻은 것은 안타깝게도 찰나에 불과했다. 기약 없이 늦어지는 비자 탓에 출국이 지연되면서 하룻밤 경험도 못해보고 꼬박꼬박 나가는 월세에 가슴이 타들어가고 있다.


11년 전 처음 외국행을 할 때도 비슷했다. 집안 살림의 절반 가까이를 해운운송으로 통 크게 보내고, 짐이 도착할 때까지 필요한 살림살이를 테이크오버를 받았다. 이케아에서 새것으로 구입한다고 해도 절반 가격이면 충분히 살 수 있는 것들을 바가지를 써서 품에 안았다는 것을 알게 된 날부터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졌다. 다리가 덜컹거리는 구닥다리 의자와 균형 안 맞는 식탁 등을 볼 때마다 치솟는 화를 삭이다 보니, 귀국한 후에도 스트레스가 쌓일 때는 종종 관련 꿈을 꾸곤 했다.




울트라 J형이라는 성향에 대해 최근에 다시금 절감하게 됐다. 백세시대에 백세까지 사는 보편적인 삶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주말 동안 부모님들을 뵙고 나니 건강한 노년의 삶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몇 달 만에 뵈었을 뿐인데 수년 만에 뵙는 것처럼 양가 부모님들은 그새 더욱 연로해지셨다.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일상을 꾸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실감했다. 백세의 절반인 지천명에도 아직 이르지 않았지만, 일찌감치 생애의 마지막 종착지인 죽음에 대해 준비하고 싶어졌다. J형답게...


사랑을 뜻하는 단어인 <아무르>라는 프랑스 영화를 보게 된 건 우연의 일치였다. 별생각 없이 고른 영화였는데, 보고 나니 최근 가장 큰 관심사인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반추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서로 사랑하며 평생을 해로한 평화롭던 노년부부의 일상은 부인의 뇌졸중 후 편마비로 인해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부인이 치매까지 앓게 되자 남편의 사랑만으로 부부관계를 이어가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2012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관람객 평점이 무려 9점대인 이 영화 속에서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문장은 부인의 넋두리였다.


인생은 참 길어


힘없이 읊조리는 영화 속 주인공의 말을 들으면서, 아흔 살쯤에 만나면 좋겠다는 농담반 진담반 조의 내 말에 "그렇게 오래 살 생각이 없다"라고 답했던 친구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주인공이 인생이 너무 길다고 한탄만 했던 것은 아니다. 식사 중에 사진첩을 갖다 달라고 부탁하고, 남편이 건네준 앨범을 넘기며 한 장 한 장 사진을 살펴보던 그녀는 다음과 같이 남편과 대화를 나눈다.


C'est beau. 정말 아름다워
Quoi? 뭐가?
La vie. 인생이
Si longtems. 참 긴 것 같아
La longue vie. 인생은 참 길어


사진을 통해 찬란하게 빛났던 청춘시절을 회상하며 인생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도 잠시, 짧아서 더욱 소중한 젊은 시절의 끝자락 이후 지난하게 반복되는 일상은 길디 길게만 느껴진다.




주말에 방문한 시댁에 세 아이들의 어릴 적 모습을 간직한 앨범이 몇 개 있었다. 고향행을 함께 한 딸내미들과 사진첩을 넘기다 보니 어린아이들과 함께 한 20년 전, 15년 전 내 모습도 사진 귀퉁이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지금보다 젊고 더 밝은 모습이다.


앞으로 15년, 20년 후 오늘 찍은 사진을 본다면, 과거의 나를 지금 내가 부러워하듯, 미래의 나는 오늘의 나를 부러워할까? 마지막 순간까지 건강하게 살고 싶다. 자력갱생이 어려울 정도로 신체, 정신 건강이 온전치 않다면 나의 의지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열망 또한 강하다.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너무 길어서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해보고 싶은 일이 아직 많아 아쉽다는 회한이 남지 않을 만큼 살려면 과연 몇 살까지 살아야 할까? 70세는 아쉬울 것 같다. 90세는 지겨울 것 같다. 그럼 80세?


삶을 관장하는 절대적인 존재인 그분이 언제 나를 찾게 될지 모르니, 하루하루 후회 없도록 살아야겠다는 식상한 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글 마무리하고 이제 열품타 앱 켜고 열중 모드로 공부에 전념해야겠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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