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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Jun 21. 2024

명품 같은 삶 vs 명품을 소유한 삶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욱 공감하게 되는 책이 있다. 내겐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To Have or To Be?>가 그랬다. 소유보다는 존재에 우선순위를 두고, 끊임없이 삶을 재편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선물 받은 난 화분조차 집착의 근원이 되는 것을 깨닫고 난초 없는 일상을 선택하신 법정스님처럼 절대적인 무소유를 주창하는 신봉자는 아니다.


가끔 궁금하다. 이런 나의 신념이 진정한 나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맞는지... 충분히 소유하는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경제적 제약을 애써 외면하려는 몸부림은 아닌지... "어차피 먹지 못할 포도라면 신포도임에 분명해"라며 자위하는 여우처럼 말이다.




철없던 10대 시절 가난한 아빠를 원망하곤 했었다. 그렇다고 반백이 가까운 지금 철이 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형편 탓에 부모님의 뒷받침으로 학창 시절 학원을 다녀본 건 고 3 시절 40일간 다녔던 논술학원이 전부다. 입시에 갑자기 도입된 논술고사를 준비해 줄 수 없으니 학원의 도움을 받으라는 학교의 권고가 없었다면, 이마저도 경험해보지 못했을 테지만.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기 전까지 가족외식 경험도 없다. 자동차도 없었다.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주행 연수를 받으며 브레이크, 클러치 위치 등을 수첩에 일일이 그려가며 암기하던 나를 별종 보듯 쳐다보던 코치 얼굴이 아직도 선연하다. 기억에 남아 있는 가족여행은, 버스비 외에는 일절 돈이 들지 않는 근처 계곡이 전부다. 물론 당일치기 일정이었다.




궁핍한 삶이 부끄럽기도 하고 벗어나고 싶기도 했지만, 아껴 쓰고 절약하는 삶이 익숙해서인지, 오히려 풍족한 삶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중고차지만 자동차가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지인들의 멋진 차가 아주 가끔 부러울 때가 있지만, 이런 감정은 금방 사라진다. 매사에 포기가 빠른 나는, 왠지 반짝거리는 새 차는 나랑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며 눈길도 주지 않은지 오래됐다.


에어컨, 건조기, 로봇 청소기, 식기세척기, 스타일러 등등.  필수템 같은 가전도 없는 게 태반이다. 건조기를 들여놓으면 삶의 질이 수직상승한다는 큰 딸에게 설득되어, 얼마 전에 구입할 생각도 진지하게 잠시 했지만, 사고 싶은 걸 직접 고르라는 내 제안에 결정장애 성향이 다분한 큰 딸이 백기를 들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얼마 전 친정엄마께서 공부하러 다니는데 가방이 작다며 집에서 안 쓰는 백팩을 몇 개 갖다 달라고 하셨다. 마침 이틀 후 친정을 방문할 예정이라서, 평소에 출퇴근할 때 매는 색 두 개와 좀 더 큼지막한 아이들 가방 두 개를 챙겼다.


평소처럼 고맙다며 그저 챙기실 거라 기대했었는데, 가방을 흘깃 보시던 어머니의 첫마디는 의외였다.


메이커냐?


제조사가 없는 공산품이 어디 있겠는가? 어머니가 말씀하신 <메이커>는 <고가 브랜드>, 한발 더 나아가 <명품>이냐는 질문에 다름 아니다.

 

1만 원대 가방이라고 하니 얼굴이 일그러지신다. 내가 갖고 있는 가방 중 가장 비싼 건 10여 년 박사시절, 아웃렛 매장에서 20만 원 가까이 주고 구입한 핸드백 몇 개가 전부다. 애 셋 데리고 고행길을 거듭하던 나 자신에게 주는 통 큰 선물이었다. 친정어머니가 브랜드 가방을 원한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셨다고 해도, 사치품 구입엔 인색하기 그지없는 내 수준에선 아마도 십 년 전 내게 선물했던 정도의 가격대를 넘지 않았을 테지만.




브랜드를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나는, 일반인에게는 상식에 속하는 브랜드에도 문외한에 가깝다. 며칠 전 점심을 함께 한 동료분의 목에 걸쳐진 둥근 문양의 십자가 비슷한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를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이유다. 반면에 나와 함께 한 다른 동료분은 그 목걸이의 진가를 알아보셨다. 네 잎 클로버 디자인으로 유명한 브랜드고, 아담한 사이즈였음에도 한 달 치 월급에 맞먹는 수준의 고가였다. 뒤늦게 찾아보니 그 브랜드에서 그 정도 가격대는 하이엔드 명품 축에 못 끼는 그저 가벼운 '주얼리' 수준에 불과한 듯싶다.


그럼에도 내 눈에는 명품이 분명한 목걸이를 걸친 동료분과 함께한 점심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식사가 마무리될 즈음, 단골이라며 식당에서 갓 구운 츄러스 세 개를 서비스로 내주셨다. 식당을 자주 찾기는 했지만, 이렇게 특별대우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고맙다는 마음은 잠시,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더 컸다. 명품처럼 나를 아껴주고, 배려해 주는 마음에 감동이 일었지만, 익명성의 자유를 누리고픈 열망이 더욱 큰 나는, 나를 알아봐 주는 존재가 고마우면서도 불편한 게 사실이다.




집에 돌아와 새롭게 알게 된 명품에 관련된 세상 이야기를 딸에게 들려주니 딸의 눈이 반짝인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작 명품 에피소드보다는 맛있는 점심을 했던 식당에 더 관심을 갖는 듯싶다. 역시나 먹는 데에 나름 진심인 딸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진다. 갑자기 미안해진다. 단골이라며 나를 알아봐 주는 레스토랑에 딸은 단 한 번도 데려간 적이 없다.


다음날 점심에는 딸과 둘이 오붓하게 데이트를 했다. 바로 그 레스토랑에서. 두 명 예약을 했을 뿐인데 좁은 2인용 테이블이 아니라 널찍한 4인용 테이블에 예약이 되어 있었다.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며 맛있게 점심을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림막이 등장한다. 바로 옆 테이블에 자리한 이들의 목소리가 다소 커서 우리 이야기가 묻힐 때가 종종 있었는데, 사장님의 배려심 담긴 병풍 덕분에 남은 시간은 더욱 호젓하게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도서관에 예약도서를 픽업하기 위해 식사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계산을 하려고 하니, 디저트로 준비한 애플파이가 곧 있으면 준비되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을 하신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점철된 계면쩍은 웃음과 함께 어정쩡하게 다시 앉았고, 얼마 후 음미하게 된 애플파이는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었다. 파이류를 좋아하지 않아서 즐기지 않는데, 마음에 감동받아서였던 듯싶다.




식당에서 나를 위해 특별하게 제공해 준 세 가지의 특별 서비스는 내가 명품처럼 귀하게 여겨진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명품을 걸치지 않았지만, 명품처럼 배려받는 것은 무척 감동스러웠다. 그럼에도 이런 특별한 대우는 이제 그만 받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명품 같은 삶을 지향했다.


하지만 내가 진정 원했던 것은 다른 이들이 나의 진가를 알아보고 특별한 존재로 나를 대접해 주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 나를 아끼고 마음 깊이 나 자신을 존중하는 삶을 영위하고 싶다. 지난 브런치 글에서 삶의 마침표 순간을 여든 살로 정하고 난 뒤, 마음이 급해지고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오늘 남은 시간도 나를 명품처럼 귀하게 여기고 각별한 눈맞춤으로 아껴가면서 나랑 사이좋게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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