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아킴 Aug 16. 2021

떠오르는 첫 해를 바라보며 그때 난


1. 2021년의 첫 일출을 보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걱정에 잠겨있던 때가 생각난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때의 나에게 떠오르는 태양을 본다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아마도 인구의 절반이 했을 미래에 대한 걱정과 다짐들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떠오르고 지는 자연의 숭고함에 사로잡혀 아무 말 없이 태양을 바라보면서 느낀 감정은 뒤숭숭함 속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다.




2. 이때 당시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한 생각들 사이에서 방황 중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도 들리지 않을 때, 내가 선택하는 길이 어렵다는 걸 알지만 선택하고 싶은 내 마음속 울림이 들릴 때, 뭔가를 해보고 싶은 기대감은 크지만 정작 아무것도 뭣도 아닌 나 자신이 보일 때, 삶의 가장 근본적인 방황 "나는 무얼 하며 먹고살 수 있을까?" 속에 사로잡혀 있을 때였다.


커가면서 내 선택에 대한 결과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선택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다는 사실이 두렵게만 느껴졌다. 가끔가다 몰려오는 자괴감과 번아웃에 무뎌지기 시작할 때 앞으로의 삶에 대한 무게감이 더 크게 느껴져 왔다.


내 한계를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단점을 개선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알지 못할 때의 절망감이 나를 옥죄어올 때 견디기 힘들 만큼의 삶의 고독함이 찾아온다.






3. 매 년 치르는 의식 같은 나의 다짐들은 어느 순간 휘발되어 붙잡을 수 없는 정도로 날아갔을 때, 난 그때를 회상하며 삶에 대한 방향성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본다. 불과 엊그제 했던 다짐들을 무상케 할 만큼 쌩까버리는 모순적이고 불완전한 나의 존재를 다시 한번 곱씹는다.


완벽해지기 위한 욕망에서 벗어나자, 모순적인 나를 받아들이자, 모든 것에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영원한 건 없으니 나를 내려놓자. 



4. 집에 돌아가는 길, 좀 더 어렸을 때라면 훌훌 털어버리고 씩씩하고 가벼운 발걸음이었을 텐데 여운이 길었던 탓일까? 더 많은 생각이 탑재되어 발걸음이 무거웠던 기억이 난다. 해돋이를 보고도 별로 달라진 것 없는 내 모습과는 달리 빠르게 변하는 하늘은 밝은 빛과 함께 아름다운 구름들을 이끌고 왔다. 마치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로하듯이 아름다운 색의 하늘과 빛이 비친 산맥들을 보여주었다.




5. 해돋이를 보고 난 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표현에는 두 가지의 뜻이 담겨있다. 첫 번째로는 현재 시점으로 본 과거의 나와 정신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큰 기대감을 갖지 않게 되어서이다. 보들레르의 시에 나오는 '악의 꽃'에는 이제 막 여행을 출발해 기대감을 많이 갖고 있는 젊은 청년과 많은 걸 보고 경험해서 인생의 덧없음을 알게 된 여행자의 대화가 나온다. 난 아직 많은 걸 경험하지 않았지만 여행을 이미 많이 다녀본 여행자의 태도를 갖고 살고 싶다. 책에 나오듯 실제로 많은 것을 경험해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모든 것에 있어서 연연하지 않고 지금 현재의 삶에 충실하는 것, 언제 삶을 마감하더라도 아쉬움을 갖지 않을 만큼의 삶을 살고 싶다. 


모든 것에 덧없음을 붙이는 회의적인 마음이 내 맘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생각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바라보는 관점에 따른 차이니까. 때로는 이 생각이 내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인생을 많이 산 것도 아니고, 지금 시점으로 살아온 경험에 기반하여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의 모양들이 언제 또 변할지 모른다. 



아무튼 8월의 중순을 보내고 있는 지금, 2021년 첫 해돋이의 사진이 왜 떠올랐을까?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는 것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