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식물에 관심 없던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우리 집에는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모여 살고 있다. 그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여태까지 물 한 번 준 적이 없을 만큼 눈길이 가지 않았다. 식물을 키운다는 것에 흥미가 없었던 것이다. 자연을 정말 좋아하지만 자연경관의 전체를 좋아했지, 그 속에 있는 나무나 풀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창문 앞, 길게 솟은 이파리들이 거의 죽을랑 말랑 폴싹 내려앉은 식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다시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지만 다 죽어가는 듯한 생김새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결국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정수기로 향했다. 물을 한가득 주면 죽을까 봐 대충 적당량을 받아 그 식물에게 물을 주고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거실에 나와 밥을 먹으며 창밖을 보는데 어라라? 어제는 다 죽어가던 식물이 파릇파릇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거기서부터였다. 작은 생명의 안부가 궁금해지기 시작한 때가. 처음엔 내 작은 관심으로 인해 생명력이 생긴 식물을 보며 자연의 신비에 놀랐었다. 물을 주고 몇 시간 후면 축 늘어졌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쌩쌩하게 일어서 있었다. 그렇게 2~3일 간격으로 잊지 않고 물을 줬다. 짱짱하게 핀 잎과 곧게 슨 줄기를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나에게도 힘내라는 에너지를 주는 것만 같았다.
'너도 나와 비슷한 면이 있구나'
물을 주는 주기가 잡히면서 의도치 않게 식물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틀 정도는 쌩쌩하게 있던 식물이 삼일 째 되던 날 에너지가 방전된 것 마냥 축 늘어져 있다. 여기서 '물'이라는 에너지원이 그에게 활력을 북돋아주는 수단이 된다. 그럼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피어오른다.
팽팽 돌아가던 팽이가 맥없이 멈추듯 내 리듬의 패턴 또한 2~3일 정도의 주기로 꽤나 단기적이다. 나의 이러한 패턴을 파악하지 못했을 때는 에너지 방전 주기와 함께 자괴감 주기도 찾아왔다. 그리고 그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 의지를 탓하곤 했다.
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모든 일에 완벽한 변화가 필요한 건 아니다. 그리고 완전한 정답 또한 없다. 나 자신을 괴롭게 하는 시기를 보내며 난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무작정 부정하며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이런 나를 긍정하며 수용해보려고 노력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구나'라는 태도로 나 자신을 내려놓고 난 후에는 '그럼 이런 나를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나에게 알맞은 주기와 패턴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시도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1.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2. 내 템포에 맞춰 가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곱씹을 수 있었다.
나를 알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점에 있다. 인터넷에 퍼져있는 여러 가지 글들, 자기 계발서에 만연한 공식들이 내 템포와 맞지 않다면 그것들은 나에게 괴로움만 줄 뿐이다. 우린 모두 다르다. 그런 것들을 따라 하려고 노력하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그것을 어떻게 다뤄나갈 것인지 스스로 생각해볼 줄 아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나의 반려식물 일기 끝 ~ ƪ( ˘ ⌣˘ )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