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나Kim Jan 30. 2023

방랑 벽의 끝, 결혼 (28)

'예상치 못한 프러포즈'

 그가 한국에서 생활한 지 약 한 달 그리고 몇 주가 흘러 벚꽃이 개화하시는 시기가 왔다. 그때가 4월 중순 정도였던 것 같다. 하는 일 없이 시간이 잘 간다 싶은 나날들이었는데, 로버트가 벚꽃을 보러 여의도에 가자는 제안을 했더랬다. '남자친구랑 여의도 벚꽃길을 걸으면 꽤 낭만이 있겠는데~' 싶은 마음에 아무 생각 없이 꽃 나들이를 갔다.


 아 그런데 사람이 많아도 이리 많을 수가 있는가. 사진을 찍으면 벚꽃과 내가 찍히기보다는 주위 사람들 10명이 같이 찍히는 그런 상황.. 우리가 벚꽃을 보러 온 것이 아닌 사람을 보러 온 것이 틀림없다 싶을 지경 ㅠ 나야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기에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지만, 동독 시골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는 너무 생소하고 낯선 풍경이었으리.


 '아니 왜 서울은 어딜 가든 이리 사람이 많은 거야?'라고 묻는 그에게 '서울만 그런 게 아니라 아시아 나라 어딜 가든 이런 느낌이.'라고 답해줬다. 아시아 인구 밀도가 괜히 높은 게 아니다. -_-


 나름 버티고 싶어 하는 그였으나 결국 무리였는지 일단 여기를 빠져나가자고 했다. 그러면서도 아쉬워하는 그를 보고, 여의도 근처 선유도에 가면 사람도 적고 나름 운치도 있을 거다 말해주니, 바로 선유도로 가잖다. 하여 우리는 선유도로 향했다. 뭐 선유도라도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람에 치여 아무것도 못하는 여의도와 같은 상황은 아니었다.


 약간의 안정을 찾고 선유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그가 물가 근처에 가서 잠깐만 앉자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너무 많았어서 잠깐 쉬고 싶다나? '그래그래 시골남자 내가 맞춰줄게'라는 마음으로 물가 근처로 가는데... 뭔가 나의 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어..? 왠지 프러포즈할 거 같은데?? 하면 안 되는데.. 진짜 뜬금없이 프러포즈하는 거 아냐? 아.. 설마아 ;;'



 역시나 내 촉은 틀린 적이 없다.  



 그가 반지를 꺼내더니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너를 만난 순간부터 아주 오래된 사이같이 편안했고, 지금도 같이 있으면 너무 편하고, 처럼 밝은 너의 모습이 어쩌고 저쩌고... '라며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랑 결혼해 줄래? 


ㅠ_ㅠ



 사실 반지를 보는 순간 내 머릿속은 하얘졌다. 대답을 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프러포즈는 적어도 다 만나보고, 그래도 좋다 싶을 때.. 또는 그가 독일에 돌아가기 1~2개월 전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조금은 했었기에..


 예상치 못한 프러포즈에 내가 눈을 막 굴리고 대답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니 그의 눈에 맺혀있던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 이번에도 남자의 눈물에 당황한 나는 'S.. Sure... of course, I will marry you'라고 떨결에 대답을 해버렸다... -_-


...


 참고로 독일은 남자아이들에게 울지 말라는 교육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남자들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슬프거나 감동을 받을 때 눈물을 흘리는  당연하다 가르친다고. 우리나라도 요즘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자의 눈물을 터부시 하는 문화가 강한 듯하다. 


 로버트 말로는 독일 남자의 평균 수명이 한국 남자보다 긴 이유가 바로 이 눈물을 받아들이는 문화 차이 때문이라고 다. 또한 한국 남자들이 40~50대 한창 잘 나갈 때 돌연사 비율이 높은 이유도 울지 못하게 하는 문화가 큰 이유를 차지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생각해 보니 맞는 것 같다. 나는 우리 아빠가 우는 걸 살면서 딱 한 번  적이 있다. 그것도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을 앞세워 먼저 보낸 , 딱 그날울었더랬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인생이 얼마나 가여운 삶인가 싶다. 우리 모두 슬플 때나 기쁠 때 숨김없이 눈물을 흘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눈물이야 말로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괴로울 때나 슬플 때, 감동적인 순간에도 그냥 울어버리자. 그럼 모든 감정의 찌꺼기가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질 것이다.


...


 구렁이 담 넘어가듯 우리의 프러포즈가 끝이 났다. 너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의 프러포즈였기에 아쉬운 생각조차 들지 않았더랬다. 어찌 됐든 그 후부터 그는 사람들에게 나를 "My Fiancee"라고 당당히 소개하기 시작했고, 나는 얼떨결에 그의 피앙새가 되었다. -_-


 

 그날 로버트를 보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다. 남자가 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 어떠한 역경도 그다지 큰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가 외국인이던, 그녀가 미지의 세계에 살고 있던 그에게는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연애할 때 '나를 잃지 않고 나답게 중심을 잘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내가 만약 로버트가 소피(-_-)에게 관심을 보였을 때 나의 중심을 잃고 그에게 살살(?) 거렸더라면, 또는 그와 함께하는 미래가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 속에도 그의 손을 놓지 않고 계속 잡고 있었더라면... 아마 우리의 인연은 결국 끝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


 지금 연애를 하고 있는 여인이 내 글을 읽고 있다면 이 하나만 기억하자. 지금 주저하는 남자 친구에게 필요한 것은 그에게 걸맞은 "완벽한 환경"이 아니란 사실. 이럴 때 정말 필요한 것은 그런 남자친구에게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 또는 '흔들림 없는 나의 중심'이란 사실을 말이다.


Don't lose yourself.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

매거진의 이전글 방랑 벽의 끝, 결혼 (2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