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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Kim Jan 09. 2024

바콜로드에서의 6일

'생각보다 더 괜찮은 두 번째 방문'

  작년에 바콜로드에서 두 달간 살면서 영어수업을 받은 것이 너무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우리는 올해도 한치의 망설임 없이 다시 한번 바콜로드를 찾았다.


  이곳이 좋은 이유는 우선 사람들이 굉장히 평화롭다는 것이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에 올 때도 사기를 당한 경험이 없다. 심지어 나의 바콜로드 현지 친구가 공항에서 숙소까지 비싸면 1500페소, 현지인이면 1000페소 정도라고 미리 말해줬는데, 택시 아저씨께 비용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800페소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정직함에,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매료됐다.


  또한 바콜로드에서 사용하는 일롱고의 발음은 타갈로그어와는 달리 부드러워, 필리핀에서 영어 발음이 가장 예쁘다는 것도 이곳에 다시 온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요즘은 일롱고가 거의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 이 지역 어린이들의 대부분은 타갈로그나 일롱고 보다는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하기에 사람들의 영어 사용이 필리핀의 지역 중에서 가장 자연스럽다고도 한다. 마지막으로 바콜로드는 마닐라나 세부와 같은 큰 도시가 아니기에, 바콜로드 시티 끝에서 끝까지 차가 막혀도 30분이면 간다는 것도 우리에겐 큰 장점이었다.


  나는 21살 때 필리핀 마닐라에서 35일간 머물며 어학연수를 했던 경험이 있고, 2019년에도 아이들을 위한 영어학원을 찾기 위해 나 홀로 마닐라를 방문하여 한 학원에서 한 달간 수업을 받은 적이 있기에 필리핀이란 나라가 영어를 배우기에 얼마나 가성비가 좋은지, 또한 우리가 언론에서 보는 것처럼 위험하지 않은 도시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늘 걱정과 고민을 안고 사는 남편님께서는 "납치의 나라, 범죄의 나라 = 필리핀"이라는 강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그에게 필리핀을 가자고 설득하는 데 거의 3년이 걸렸더랬다. 설득을 겨우 해서 가기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끝없는 걱정으로 우리는 장티푸스 주사, A형 간염주사, 무슨 주사, 무슨 주사와 대학병원에서 처방받아야 살 수 있는 무슨 약 무슨 약을 다 받아 백만 원을 쓰고서야 갈 수 있었다. 세상 아까운 돈이었지만, 그를 너무나 잘 알기에 나는 군말 없이 모든 주사를 맞고, 모든 약을 구입했더랬다. 물론 그때 샀던 약은 작년에 단 한 번도 쓰지 않고, 올해 또 가져왔음 -_-


  그도 작년에 경험해 본 바콜로드가 좋았기에 다시 오는 것에 찬성을 했겠지만, 역시나 출발 한 달 전에는 걱정의 걱정을 했던 그다. 택시를 탈 때 잘 확인을 해야 한다는 둥, 아무나 믿지 말라는 둥... -_-


  그리고 6일 전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물 만난 고기 마냥, 혼자 4시간씩 쇼핑센터에 나가 벌써 스케쳐스 운동화를 사고도 뭐 또 살 거 없나 두리번거리며 이곳에서 최상위 행복지수로 지내고 있다. -_- 


  작년에는 바콜로드 도심과는 멀리 떨어진 타운 하우스에서 머물렀지만, 그곳이 주택이었기에 엄청난 바퀴벌레의 출현으로 힘들었고, 도심까지 오려면 트라이시클에 택시를 타야 하는 거리 때문에 만족도가 많이 떨어졌었다.


  올해는 바콜로드의 중심에 위치한 콘도를 선택했다. 걸어서 SM몰과 Ayala몰에 갈 수 있기에 택시 따위는 필요치 않다. 콘도 안에 큰 수영장이 있는 것과, 대형 슈퍼마켓도 코앞이라 슬리퍼를 끌며 금방 갔다 올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집이 너무 좁고, 가격이 작년의 2배인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인 듯하다.


  필리핀 출국 2개월 전에 아이들의 영어선생님을 모두 구했지만, 1월 1일 0시에 선생님 중 한 명이 Happy New Year 새해 인사를 전함과 동시에, 자기가 1월 6일에 다른 도시로 가게 됐다면서 둥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했더랬다. 당황에 당황을 한 나는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필리핀 출국 하루 전날에 겨우 선생님을 소개받고, 그녀와 5분만 통화를 하고, 바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선생님을 구할 때는 15분 정도의 간단한 전화통화 후 줌을 통해 1~2번의 무료 수업을 받아본 후에 선생님을 선택하는 나이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라 그녀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약간의 걱정은 했지만, 목소리와 태도가 괜찮았기에 나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고, 직접 만나보니 다행히도 괜찮았다.


  아이들을 위해 가져온 영어책은 Bricks reading 240 1, 2, 3와 Bricks writing 150 1, 2, 3, 그리고 Bricks Voca 1500과 2300, Bricks Smart Grammar 1, 2를 준비해서 가져왔다. 이제 진짜 초등 고학년이 되는 아이들인 만큼 writing, grammar & voca를 더 이상 side로 둘 수 없기에 작년과는 다르게 다각적으로 책을 준비했다고 할 수 있다.


  작년에는 바콜로드에 온 주목적이 영어였다면, 올해는 그래도 한 번 살아봤다고 약간의 여유가 생겼기에 영어 & 스포츠(테니스, 탁구, 수영)를 목표로 잡고 왔다. 영어만 하기에는 바콜로드에 가성비가 좋은 스포츠 수업이 참 많다. 우선, 집 근처 아얄라몰에서는 1시간에 300페소(7500원)로 1:1 탁구 레슨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바콜로드 시티 중부 지역에서는 테니스 레슨을 1시간에 850페소(21000원)로 받을 수 있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게 안타깝지 않겠는가.


  이미 어떤 스포츠를 할지 다 결정하고 온 나였지만, 남편님은 역시나 마음에 안 들어했다. 욕심이 많다는 둥, 너무 한국 엄마스럽다는 둥, 여기까지 와서 무슨 학원이냐는 둥, 독재자라는 둥!!! 말이다 -_- 당신이 아무리 떠들어 봐라 내 계획이 틀어지나... 한쪽으로 듣고 한쪽으로 흘린 후 어제 처음으로 탁구 레슨을 받으러 갔다.


  근데 애들보다 지가 더 좋아하네... 자기도 레슨을 받고 싶다는 둥... 탁구 레슨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둥.. 아주 난리가 났다 -_- 그러면서 탁구에 올인하자, 테니스는 무슨 테니스냐. 테니스를 배우려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너무 귀찮고 위험하다 난리였는데... 오늘 오전에 테니스 수업을 들으러 갔더니.. 역시나 자기도 테니스 레슨을 받고 싶다는 둥, 여기 사람들 너무 고급지고 좋다는 둥... 너무나 좋은 기회라는 둥... 이 독일남자는 늘 이런 식이다. -_-


  바콜로드에 도착하자마자 59일 비자를 현지에서 신청했다. 작년 한국에서 59일 비자를 받다가 몸무게가 3킬로나 빠진 지옥 같은 경험을 했기에, 이번에는 돈을 더 내더라도 쉽게 가자 싶어 현지에서 받기로 결정. 바콜로드에 도착하자마자, 중심가에 있는 이민국(Bureau of Immigration Bacolod City)에 갔다. 이민국 앞에 앉아계신 경찰 같은 분께 30일 비자를 59일로 연장하고 싶다고 말하면 그분이 작성해야 할 서류를 준다. 그걸 다 작성하고 여권이랑 인당 3030페소(인당 75000원)만 내면 59일 비자를 30분 만에 받을 수 있다. 이리 간편한 방법이 있는데 뭐 하러 한국에서 수천 가지의 서류를 준비하고 59일 비자를 받으려 한단 말인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59일 비자는 필리핀 현지에서 받기를 강추한다 -_-


......


  세상은 넓고, 이 넓은 세상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음을 안다. 때문에 나는 우리 아이들을 지금처럼 나만의 방법으로 키울 예정이다. 물론 아빠가 독일인이라 한국 아이들보다 옵션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사실 내 초중고대 동창들은 내가 한국인이랑 결혼을 했었어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들 한다. 그만큼 나는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길로 뚜벅뚜벅 나아가는 고집 센 녀자인 것이다.


  그저 나는 둥이에게 우리는 이 세상에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임을, 그리고 물질적인 것으로는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또한 이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이란 소풍'을 잘 마칠 수 있도록 응원하고 도와주고 싶을 뿐이다.




  오늘의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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