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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Kim Jan 24. 2024

'Sipalay(시팔라이)' 여행기

'재방문이 당연한 곳, 시팔라이..'

  바콜로드에서 버스로 약 5~5시간 반 정도 가면 도착하는 시팔라이(Sipalay)에 다녀왔다. 우리 걱정요정 남편은 민다나오 섬 위에 위치한 시팔라이에는 분명 해적이 나올 거라며 굉장히 걱정에 걱정을 했었으나, 이런 남편을 어르고 달래고 때론 윽박지르고 겁박하며 (-_-) 결국 리조트를 예약하는 데 성공.


  새벽 6시 반에 일어나서 짐을 챙기고 바콜로드 남부 터미널로 갔다. 매 정각에 시팔라이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해서 우린 8시 버스를 타기 위해 집 앞에서 7시 반에 택시를 타고 출발! 그때 택시 아저씨로부터 남부터미널 건너편에 벤을 셰어 하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버스는 5~5시간 반이 걸리는 반면 벤은 3시간 반~4시간이면 간다고 한다. 허나, 버스를 경험해보고 싶었던지라 우리는 그냥 버스를 타기로 했다. (*참고:  이곳 버스는 우리나라처럼 휴게소에 길게 머물지 않는다. 때문에 5시간 동안 먹을 수 있는 간단한 간식거리와 물을 가지고 타기를 추천한다.)


  나와 로버트는 같이 앉고, 바로 옆자리에 둥이가 앉았다. 우리의 앞자리에 어린 아기가 앉아있었고, 가끔 우리를 보면서 인사를 했다. 뭐랄까, 처음 가는 낯선 장소이지만, 굉장히 익숙한 느낌... 왜 이럴까 생각해 보니, 우리가 처음 만났던 '멕시코시티-오하카'행의 버스 안이랑 지금이랑 딱 같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때도 우리는 둘이 앉았고, 옆자리에는 로버트의 친구 커플인 '유리드와 로버트'가 앉아있었으며, 우리 바로 앞에는 5~6정도 되는 여아가 앉아서 가끔 우리를 돌아보며 인사를 했더랬다. 그때와 다른 게 하나 있다면 지금 우리에겐 아이 2명이 딸려있다는 것이다.


  그때로부터 18년이나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변한 게 없구나 싶었다. 또한 그를 만나서 여전히 나는 나답게 살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며 급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평소에는 남편욕을 하는 나이지만.. - _- 이날만큼은 고마운 마음이 뿜뿜 나와 그의 무릎 위에 손을 살포시 올렸었더랬다.


  버스를 타면서 얼마나 많은 버스역에 멈추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렸는지도. 내리면서 "안녕~"하고 내리는 사람, 차창 밖의 사람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해주는 그들... 20년 전에 마닐라에 왔을 때도, 신혼여행으로 팔라완에 왔을 때도, 둥이가 3살 때 세부에 왔을 때도, 2019년과 작년 그리고 올해에 다시 필리핀을 찾았을 때도, 이 나라는 늘 나에게 따뜻했다.


  언론에서 필리핀에 대해서 뭐라고 이야기를 하든, 모든 인간은 직접 겪어봐야 이면의 진실을 알 수 있는 법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아무리 나쁘다고 한들, 내가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5시간 10분을 달려 시팔라이역 가기 전인 New Sipalay Government Center에서 내렸다. Sugar beach는 이곳에서 더 가깝기 때문이다. 내려서 그곳에 서있는 트라이시클을 타고 약 15분 정도 들어간 것 같다. 가격은 250페소가 들었다.


  피곤하고, 배고픔에 지친 우리는 리조트에 도착하자마자, '체크인보다 밥부터 먹겠어요~'라고 외쳤다. 야자수 정글 속에 예쁜 독채의 방갈로로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뭐랄까, 도착한 순간부터 내 마음을 평안하게 했다. 하얀 모래 알갱이 위에 지어진 레스토랑 또한 굉장히 낭만이 있었다. 걱정을 하던 로버트도 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입가에 웃음기가 올라왔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하트가 보였다. -_-

  

  이름이 Sulu Sunset Beach Resort인 만큼, 이곳의 일몰은 진심으로 아름다웠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로 뭉게구름마다 다른 색을 자아내는 자연의 광경이야 말로 이곳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또한 고운 모래알갱이로 이루어진 해변과 한참을 들어가도 가슴팍까지만 오는 바다는 아이들이 놀기에 최적의 놀이터였다. 덧붙여 필리핀의 전통 가옥으로 만들어진 방갈로는 아이들에게 자연에서 노는 것이 얼마나 많은 상상력과 모험심을 일으키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해 준다.


  시팔라이에는 다양한 액티비티가 있다고 들었지만, 사실 리조트에만 있어도 여행의 묘미를 100% 느낄 수 있기에 굳이 하지는 않았다. 다만 아이들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짧게나마 스노클링을 한번 더 경험해 보길 바라는 마음에 신청을 했다. 작년에는 바다에 들어가자마자 죽는다고 소리치며 나왔던 둥이지만, 그래도 올해는 10분은 바다 아래를 봤던 것 같다. 심지어 바람이 너무 불어서 바다에 떠있는 것만으로도 멀미가 날 지경이었는데도 10분이라니!! 훌륭하다. 그리고 충분하다.


  Turtle Island와 Shipwreck(난파선)을 보는 3시간짜리 스노클링 투어는 2500페소였다. 배를 한 채를 빌려야 하기 때문에 8명까지는 가격이 같다고 했기에, 우리는 투어를 보고 있는 독일 커플에게 다가가 같이 하자고 이야기하고, 다음 날 6명이서 같이 했다.


  레스토랑 앞에는 해먹, 썬베드, 파라솔 등을 해변가와 참 조화롭게 비치를 해놨다. 그래서인지 석양이 질 무렵, 그곳에 앉아 그 근처에 사는 필리핀 로컬들과 여행객들이 비치발리볼 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몸과 마음이 힐링이 된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형형색색의 붉은색으로 수 놓인 하늘, 남녀노소와 인종을 초월하여 한마음으로 노는 모습... 이곳이 바로 천국이다.


  슈가비치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썬베드에 앉아있을 때 이 사람, 저 사람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낯선 장소에서 나와 접점이 1도 없는 사람과의 대화는 늘 흥미롭고, 삶을 더욱 풍요롭고 향기롭게 해주는 것 같다.


  이곳 주인의 딸인 나타샤는 둥이랑 나이가 비슷했다. 아빠가 독일인, 엄마가 필리핀인 혼혈로 필리핀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살고 있다고. 도착한 첫날, 구석에 앉아 유튜브만 보는 아이를 보며 둥이를 슬슬 구슬렸다.


  "둥이야, 쟤랑 같이 놀아~ 닌텐도 같이 하자고 해봐!" 절대 싫다며 학을 띠는 아이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멈출쏘냐. 그다음 날, 오전에도 구슬렸다. "어제 나타샤 오빠랑 이야기해 봤는데, 나타샤가 지난 3년간 코로나 이후로 친구 사귀는 못한대. 주위에 친구도 없고, 수줍음이 많아서 걱정이라고 하더라. 너네가 가서 같이 놀자고 해" 역시나 절대 싫다고 하는 둥이 -_-


  결국.


  "노무 시키들아! 오늘 하루만 같이 놀아. 같이 놀면 닌텐도 못하게 한다!!!"라고 윽박질러, 둥이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그녀에게 다가가 함께 놀기 시작.... 했는데, 그날 이후로 밥 먹을 때 빼고는 둥이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는 사실. -_-


  리조트에는 아빠는 스웨덴인, 엄마는 필리핀인인 노아라는 비슷한 나이의 남아도 있었다. 노아네 가족은 이 리조트에 6번째 방문이라고 한다. 코로나 때 2년을 제외하고 늘 이곳에 와서 길게는 6주, 짧게는 3주를 머물다 간다고.


  이렇게 나타샤, 노아 그리고 둥이가 친구가 되어 같이 닌텐도를 하고,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잠수도 하고, 킥커 게임, 보드게임을 하며 하루종일 놀았다. 그렇다. 영어로 논 것이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ㅠㅠ 둥이들이 드디어 영어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된 것!!


  나타샤는 초반에는 수줍음이 굉장히 많아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일단 친해지면 바다를 누비는 말괄량이 톰보이의 모습으로 변한다. 닌텐도 게임에서 1등, 킥커 게임에서 1등, 수영 빨리 가기 1등. 잠수 1등. 확실히 바닷가에 사는 씩씩한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런 건강하고 낯선 모습의 아이라 둥이가 좋아했던 것 같다.


  마지막 날 그녀와 헤어지기 싫다고 둥이가 엉엉 울었다. 바콜로드로 돌아가지 말고 이곳에서 나타샤와 살자고 -_- 


  결국 둥이들은 집에 오는 날, 나타샤와 꼭 인사를 해야 한다며 새벽 6시에 알람을 맞춰 끙끙거리며 일어나 그녀의 등교 길에 인사를 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는 슬픈 이야기다 -_-


  둥이야 여행은 늘 이렇게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야. 헤어짐을 너무 슬퍼하지 말자. 또 다른 좋은 만남이 기다리고 있거든.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여기에 있으면 언제든지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어.


  이 리조트에는 나타샤뿐 아니라, 그녀의 따뜻한 오빠 데이비드, 그녀의 아빠 요건, 그리고 말은 거의 안 하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필리핀 엄마가 있다. 게다가 다섯 마리의 개성 강한 강아지들도 이곳을 지키고 있다. 라파엘, 원더우먼, 라우디, 컬리, 베트맨.



  아이들이 얼마나 순한지, 이곳에서 둥이의 강아지 트라우마를 싹 고쳤다는 것도 큰 소득이라 할 수 있다. 이전에 크로아티아에 놀러 갔다가, 한 녀석이 래브라도레트리버한테 얼굴을 심하게 물린 적이 있다 ㅜㅜ


  당한 녀석이나, 얼굴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것을 본 다른 놈이나, 그때 둘 모두에게 강아지 트라우마가 심하게 생겼더랬다. 근데 이것이 시팔라이에 와서 고쳐지다니. 진심으로 감사하다.


  석양이 질 때 아직 한 살이 안된 골든레트리버인 라파엘과 저 4명의 아이들과 같이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곳에 있으면 있을수록 사람들이 왜 지속적으로 여기를 다시 찾는지 너무나  알 수 있. 우리도 다시 올 것이다. 그때는 바콜로드에서 머무르지 않고 이곳에서 2주 정도 머물며, 이 근방의 아포섬과 시키호르를 가봐야지.



  여행기를 마치며 Sulu Sunset Beach Resort 사장님이 나한테 하신 말을 전한다.


  "한나Kim, 한국인들한테 슈가비치가 좋다고 이야기하지는 마. 나는 한국인은 좋지만, 한국 단체그룹은 싫어. 자기들끼리만 놀고, 어울리려고 하지 않거든. 좋은 개인들은 좋지만, 한국인 단체들한테는 소문내지 말아 줘!"


  오픈 마인드로 자연과 사람 그리고 동물과 동화될 준비가 된 사람들은 반드시 이곳에 가보기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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