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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Kim Feb 02. 2024

바콜로드 택시

'순하다 순하다 많이 순하다.'

  나란 인간은 좋고 싫음이 아주 분명한 사람이다. 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야기를 하고, 밑져도 된다는 마인드를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으나, 뭔가 나의 기준에서 선을 넘는다 싶으면 가차 없이 이야기하는 성향을 가졌다. 상대편이 누구든, 그다음 상황이 어떻게 되든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말이다. 조금 쉽게 설명하자면 설사 총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할 말은 한다는 . -_-


  약 20년 전, 친구 2명과 함께 마닐라에 어학연수를 왔을 때다. 어느 날 친구들과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이 미터기를 켜지 않고 가는 것이 아닌가. "미터기 켜주세요."라고 바로 이야기를 했으나 그가 It's okay 하면서 계속 가는 것. 좋은 기사님한테 Tip은 빵빵하게 줄 수 있다. 팁 주는 것은 아깝지 않다. 그러나 사기 치는 꼴은 못 보겠다. 한 번 더 정중하게 요청하자, 그의 반응이 험악해졌다. 나는 즉시 택시 문을 열고 내렸다. 같이 갔던 친구가 총 맞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서웠다고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한다. ;;


  요즘은 어딜 가나 Grab이 있어서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이미 가격이 정해졌기에 실랑이를 할 필요도 없고, 기사님이 길을 뱅뱅 돌아가지도 않고 말이다. 참 편리해진 세상이다.


...


  지난 월요일에 남편 없이 아이들과 셋이서만 SM몰을 갔다. SM몰은 집에서 택시를 타면 45~55페소(약 1250원)가 나오는 거리로, 걸으면 10~15분 정도 걸린다. 그곳에서 놀다가 탁구 수업이 있어서 서둘러서 쇼핑 앞에 정차하고 있던 택시를 탔다. 근데 기사님이 SM몰을 빙빙 돌면서 가는 것이 아닌가. 바로 가는 길이 있는데 말이다. 아이들이 옆에 있어서 참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역시 참을 수 없었다.


  "저 바콜로드에서 오래 살아서 길을 잘 아는데요, 왜 이쪽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SM몰에 거의 매일 오는데 이렇게 돌아가는 기사님은 처음이에요."

  "그쪽 길은 차가 막혀서 그래요. 도는 거 아닙니다."

  "아무리 차가 막혀도 저쪽 길로 가면 50페소 정도면 가잖아요. 앞으로 손님이 외국인이라도 안 돌면 좋겠어요."



  둥이는 그러지 말라고, 엄마 제발 조용히 있으라고 옆에서 난리가 났다. 그렇지, 옆에 아이들이 있으니까 이럴 때 조심은 해야겠지만, 아.. 참을 수가 없었단 말입니다! 말을 던져놓고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어쩌나 약간의 걱정을 했지만 이미 말한 거 어쩌겠는가.. 


  근데 어째 기사님이 조용하다. 별말 없이 운전만 쭉 하시다가 내릴 때 즈음 나에게 딱 한 마디를 하셨다.





  

  "그럼 50페소만 주세요."





  ... 네?

  80페소가 넘었는데요??



  음.. 이런 리액션은 처음이라... 너무 당황한 나는 얼떨결에 사과를 했다.


  "아니에요.. 그냥 다 낼게요. 죄송해요..."



  "그럼 60페소만 주세요."하고 그는 정말 60페소만 받았다는 이야기..



  내가 운이 좋아서 바콜로드에서 순한 사람들만 만나는 것인지, 아님 이곳에는 진짜 대부분 평화로운 사람들만 있는 것인지..  아무튼 바콜로드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임은 틀림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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