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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Kim Feb 09. 2024

테니스 수업 & 필리핀 부자들

'필리핀에서 무조건 필수로 받아야 하는 수업: 테니스'

  바콜로드는 영어뿐 아니라 테니스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아주 '만족스럽게'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이는 5주간 수업을 받아본 나의 경험에서 나오는 말이다. 영어뿐 아니라 다양한 스포츠도 저렴한 가격으로 배울 수 있는 바콜로드로 오세요! ㅎ 


  우선 필리핀은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어린이 친화적인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테니스 코치님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얼마나 잘 가르치시는지 매 수업 시간마다 반할 지경. 적절한 게임을 곁들이며 아이들끼리 약간의 경쟁을 시키며 친근한 친구처럼 이끄신다. 거기에 꼼꼼한 자세 교정까지!!!


  지금까지 단 8번의 레슨을 받았지만, 조금씩 늘어나는 아이들의 실력을 보면서 나 또한 신이 난다. '아쉬워! 이렇게 끝나서는 안된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테니스장의 메인 코치이자 사장님인 Patrick한테 제발 자투리 시간이라도 좋으니 주 1회를 더 하게 해달라고 사정에 사정을 했더랬다. 사실 1월에도 제발 주 3회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으나, 빈 코트가 없어서 주 2회만 하고 있는 중이다. 2월이라고 사정이 달라졌겠는가 ㅠㅠ


  필리핀에서도 테니스가 유행이라고 한다. 때문에 빈 코트를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또한 테니스 레슨비는 여기 물가로는 비싼 편이기 때문에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위층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60분 1대 1 수업이 600페소(15000원) 또는 700페소(17500원)라 저렴하게 느껴지지만, 이곳 물가로는 1시간에 6만 원 또는 7만 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맨 처음 테니스장에 왔을 때 30대 중후반 무리의 사람들이 신나게 테니스를 치고 있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아이들을 보고 있는데, 그 무리 중 스티븐이라는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와 아메리카노와 고급진 도시락을 먹으라고 줬다. 그러면서 '이게 바콜로드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야!'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다음 주에도 그는 우리에게 아메리카노와 에그 베네딕트 도시락을 전했다.


  두 번이나 공짜로 받아만 먹다니! 또 정 많은 우리 한국인이 받아만 먹는 민족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남편은 독일인이지만 한국에서 산지 10년이 훨씬 넘었으니 거의 한국인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받아만 먹을 수는 없다며 다음 주에 무엇을 사가지고 와야 하나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을 때, 남편이 그냥 돈으로 주자고 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거 같아... 하며 스티븐한테 덜컥 말해버렸다.


  "이 커피랑 도시락 너무 맛있어. 다음 주에는 내가 한국 음식을 만들어 올게!"




   ...

  그렇다. 내 입으로 저 말이 나와버린 것이다 -_-



 

  그랬더니 스티븐 눈이 동그래지며

  "와!! 진짜? 여기 사람들이 10명은 될 텐데 진짜 만들어 올 수 있어?? 너무 기대된다!!!"



  10명이란다.. 물론 나도 한국음식을 만들어 현지 사람들한테 대접하는 거 너무 좋아한다. 근데 내가 살고 있는 콘도에는 냄비가 큰 거 하나랑 작은 거 하나밖에 없는데... 어쩔 수 없지. 그 두 개로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



.....


  다음 주 수업이 있는 날 아침부터 일어나 닭 한 마리와 닭가슴살 1kg, 감자, 당근, 양파, 양배추, 파, 마늘 등으로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는 닭볶음탕을 만들었다. 뚝딱뚝딱 만든 후 그랩을 부르고 테니스코트장으로 날아갔다.


  내가 가져간 닭볶음탕과 스티븐이 가져온 쌀밥을 세팅한 후 먹으라고 얘기하자 다들 음식을 덜기 시작. 근데 희한한 것은 테니스 코치들은 음식 근처에도 안 오는 것이었다. 메인 코치님과 우리 둥이 코치님께 다가가 따뜻할 때 드시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둘 다 배가 부르다며 급구 사양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가 보다 했다.


  근데!! 스티브와 그 친구들이 자리를 잡고 다 먹으니, 그제야 코치님들이 오셔서 밥을 뜨는 것이 아닌가..  희한하다...



...


  그들과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필리핀 상위층의 분위기를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그들 무리는 모두 같은 초중고 동창이라고 한다. 대부분은 동창이고 선배들도 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다 같이 골프를 치다가 1년 전에 골프 멤버들이 테니스로 넘어와 테니스를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다시 말하면, 상위층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 최고의 사립학교에 들어가 초중고를 같이 어울리며 그들만의 곤곤한 리그를 만들며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그 무리 중에는 바콜로드가 위치한 네그로스 섬 주지사의 딸도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바콜로드의 관광지인 루인스(Ruins) 주인의 손녀이기도 했다. 그렇다 알고 보니 이들은 바콜로드의 초 부자였던 .


  불평등이 만연한 필리핀 사회에서 최상위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니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여 다음 주에 만나면 그들과 이야기를 해봐야지 싶었는데... 웬일인가. 내가 밥을 대접하고 난 이후부터는 그들을 볼 수 없었다는... ㅠㅠ 아마 그들이 레슨 시간을 바꾼 것 같다.



.....



  바콜로드 친구 로셀의 말에 따르면, 필리핀은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이기 때문에 자신의 부가 드러나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범죄의 타깃이 너무 쉽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6개월은 마닐라에서 살고 6개월은 바콜로드에 사는 사람들도 많고, 마닐라에서 사업을 하면서 삶의 주거지는 바콜로드인 사람들도 꽤 있다고.



  우리가 머물고 있는 콘도에서 늘 필리핀 사람들을 마주친다. 그들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날 경우는 가볍게 인사를 하는데, 희한하게도 같은 층에 살고 있는 앞집과 옆집 사람들이랑은 마주쳐도 인사를 한 적이 없다. 내가 상냥하게 먼저 인사를 해도 대답하지 않고 지나가는 그들이 낯설었다.


  근데 테니스 무리들을 겪고 생각해 보니, 내 이웃집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 사는지 알고 있는 같은 층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의 태도가 아주 약간이나마 이해가 됐다.  



.....



  극도로 부가 불평등한 필리핀 사회에서 모든 부를 만끽하며 사는 '상위 1프로의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신들의 초등학교 동창이 아닌 이상, 아무도 믿을 없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 이 필리핀 사회의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최상위층의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 과연 하루종일 일을 하고 5000원만 받는 서민들의 삶을 마주칠 수는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부가 불평등한 사회는 이렇듯, 늘 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그 폭탄이 혹시 자신에게 떨어지지 않을까 싶어 모든 것을 비밀스럽게 해야 하겠지.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자기들끼리만 어울릴 수밖에 없고 말이다. 이런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결국 가진 자도, 없는 자도 모두가 Loser일 수밖에 없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필리핀에도 언젠가 봄이 오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모두가 평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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