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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Kim Feb 19. 2024

돈 쓰는 독일 귀신은 한국으로.

'돈 아끼는 한국 귀신의 알뜰한 생활이 시작됐다.'

  돈 쓰는 독일 귀신인 남편은 2월 초에 한국으로 갔다. 넉넉하게 페소를 환전해서 가져왔는데 4주간 쓰고, 한 달이나 더 남은 우리에게 110만 원 남기고 돌아간 그분이다. 물론 환전한 돈은 과외비, 월세, 전기세 등을 제외하고, 그저 생활비로 가져온 돈이다. 과외비나 월세 등의 목돈은 송금으로 해결하고 있다.


  내 이전 글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독일은 사회보장제도가 너무 잘 되어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독일인은 저금을 하지 않는다. 대신 버는 돈의 45프로를 세금으로 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우리가 저금하듯 보험에 많은 돈을 넣은 후, 남은 돈 계획적으로 쓰기보다는 본능에 충실하게 쓰는 것 같다. 적어도 남편은 그렇다.


  반면 나란 인간은 어떤가. 절약이 미덕이라고 여기는, 그저 저금하는 돈만이 내 돈이라 생각하는 아주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신용카드를 쓰면 얼마를 쓰는지 감이 오지 않기에, 평생을 체크카드만 쓰면서 살아온 인물이다. 또 38개국을 돌아다니면서도 카드를 쓰면 예상 지출 비용을 가늠할 수 없기에 오로지 현금을 들고 가, 현금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하며 늘 계획 있게 쓰는 녀자이기도 하다.


  그렇다. 남편에게 나란 인간은 정말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할 수 없는 아주 피곤한 종족인 것. -_-



  그는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아이들이 집에서 영어 수업을 받을 때, 늘 홀로 근처 커피숍으로 가서 일을 했다. 일하는 건 사실 핑계고, 혼자 주 2회씩 마사지도 받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즐긴 것이다.


  즐기는 건 좋다 이거다. 근데 돈 쓰는 독일 귀신이 말이지, 아내는 알뜰살뜰하게 장보고 음식 하며 살고 있는데, 2~3일에 한 번씩 돈봉투에서 3000페소씩 가져가서 쓰고 오는 게 문제 아니겠는가. 필리핀은 여전히 현금만 쓸 수 있는 곳이 많기에 카드로 긁을 수 있는 건 긁고도 저리 현금을 써대니...  -_-


  그래.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최대한 이해해 보고자 했다. 근데 하루는 평생 살면서 단 한 번도 사 본 적 없는 스케쳐스 운동화를 사 들어오고... 또 뜬금없이 같이 안경점 가자고 더니, 아니 갑자기 구찌, 레이밴, 톰포드 등 60만 원 넘는 안경을 사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_-


  "저기요.. 안경 사는 거 찬성해. 근데 이걸 굳이 필리핀에서 사겠다고? 진짜?? 정말로?"라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랬더니 자기는 반드시 바콜로드에서 마음에 드는 안경을 사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 꽂힌 것이다. 꽂히면 누구나가 그러하듯. 무조건 실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왕 살 거 모든 안경점을 다 가보고 사자. 여기서 몇 개만 보고 사는 것은 아니 된다라고 읍소를 한 후, 몰 내에 위치한 모든 안경점의 투어가 시작됐다.


  이왕 사는 거 최고로 잘 어울리는 것으로 사야지. 하며 나도 열심히 봐줬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안경점이 은근 잘 어울리고, 일단 가격이 단 125000원이야. 60만 원짜리 보다 10만 원 대 보니까 너무 싸!!! 거의 공짜 같은 느낌이야. 이거다 싶어 너무 잘 어울린다 물개 박수를 치며 최고다 최고다 폭풍 칭찬을 하니, 마음에 들었는지 125000원짜리 안경으로 퉁쳤다는 행복한 결말이다.


  이런 인생을 보고 이웃사촌이 었다. 

  "언니는 맨날 아끼고, 남편은 맨날 쓰는데 안 억울해? 나라면 억울해서 못살아."


- _-


  근데 참 웃기지.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른 거 같다. 나는 돈을 쓰는 것보다 아끼는 데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물건을 사는 것보다 소비를 안 하고 아끼는 것을 좋아하고, 또 그렇게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여행하는 데 쓸 때 인생의 참된 행복과 보람을 느낀다.


  문에 그가 돈을 쓰면 그저 아까울 뿐이지, "내가 너처럼 펑펑 쓰면서 복수하겠다!"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아이고 저 화상 펑펑 쓰는 것 좀 봐... 내가 더 아껴야겠네!!'라는 보릿고개 시절에나 볼 법한 성향을 가진 것이다ㅜㅜ 가끔은 구질구질한 이런 내가 싫을 때도 있지만,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한국에 돌아가기 딱 이틀이 남은 그가 또 돈을 요구했다. -_- 이틀이니까 1000페소만 주자, 버럭 하며 일단 쓰고 남은 돈은 주고 갈 테니까 넉넉하게 3000페소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어차피 공항에서는 카드를 쓰면 되니까 "알았어~"하고 믿고 줬다.


  공항 가는 날 1000 페소가 남았었는데, 그가 과연 주고 갔을까? 물론 아니지 -_- 남은 1000 페소로 공항에 있는 Spa Nature에서 마사지를 받아야 한다며 바콜로드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주 알차게 즐기다 간 것이다.


  

...


  그가 가고 하루는 불안했다. 둥이를 나 혼자 봐야 하기에.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 맡기러 갔다가 빨래 가져오는 거랑, 매일 수영장 가서 애들이랑 놀아주는 거, 장보기, 택시 타고 테니스장 가기, 탁구 수업 데려가기, 주말에 놀기 등등 전부 다 혼자서 해야 하니까 말이다 -_-


  근데 이건 무슨 일인가. 아빠가 없어서 집이 텅 빈 것 같다고 하는 둥이에게 아주 여유롭게 먹고 싶은 것도 다 사주고, 오락실에서 원하는 만큼 오락도 시켜주고, 저녁마다 나가서 사 먹고 했는데... 왜 이리 돈이 넉넉하게 남는 것이냐 -_- 도대체 남편은 지난 한 달 동안 어디다 쓴 줄도 모르게 그렇게나 현금 다닌 것냔 말이다!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인 것 같다.

 


  그가 간 후 셋이서 즐거운 12일을 보냈다. 남편이 서운할 정도로 보람차게 그리고 꽉 찬 스케줄로 말이다. 그러다 이번 주 화요일에 내 베프 M양이가 그녀의 아들과 함께 바콜로드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알뜰살뜰하게 부탁해. 한나Kim 너만 믿고 간다"라는 특명과 함께.


  소비의 여왕 M양이가 온다기에 그녀가 있는 동안 나도 좀 펑펑 써야지 싶었다. 근데 저런 부탁을 받은 것이다! 지금까지 20년이 넘게 그녀를 보아왔지만 이런 특명은 처음이다. 에 무한한 책임을 느낀 내가 답했다.


  "소비의 여왕 M양아. 너 나한테 이런 부탁한 거 후회하게 될 텐데. 괜찮겠어? 나중에 나한테 작작 좀 하라고 할 거 같은데??"


  "나 진심이야. 요즘 현금이 마른다. 최대한 가성비 있고, 알뜰살뜰하게 부탁해."


  "좋아. 그럼 평일은 다 해 먹고, 주말에는 맛집 외식에 바콜로드 핵심 여행 전부 시켜줄게. 17박 18일 생활비 + 1대1 탁구 주3회, 1대1 테니스 주1회 레슨비 포함해서 60만원에 끊어보겠다. 나만 믿고 오시오."



  나의 즐길 거 다 즐기고도 저렴하게 한 달 살기 하는 법을 다음 회에서 공개하겠다. 솔직히 나처럼 살면 해외여행 한 달 살기하면서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절약이 미덕이라 여기는, 또한 약간 부족한 것이 넘치는 것보다 낫다는 철학을 가진 나만의 노하우를 기대하시길. -_-



  오늘의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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