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적응기간인 3월이다. 25개월인 첫째가 점심만 먹고 집에 오니, 해야할 것은 최대한 오전에 끝내야 한다. 물론, 9개월인 둘째가 오전 잠을 자고 있거나 나의 구세주요 구원군인 엄마가 아기를 돌봐주실 수 있는 알이라는 전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3월 2일 첫 등원은 순조로웠다. 이사를 하고 붕 뜬 2주간 엄마와 아기와 함께 온종일 집에 있었으니, 엄마와 함께 간 어린이집은 즐겁고 새로운 곳이었을 터. 하지만 "엄마 잠깐 슈퍼 다녀올게!"를 시작으로 서서히 어린이집에 혼자 있어야 함을 직감한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울기 시작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우는 아이를 억지로 데려가야 하나 아님 그냥 가정보육을 해야 하나, 영유아 둘을 데리고 가정보육을 하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니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아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자.
첫째는 규칙을 잘 지키고 언어 발달이 빠른 편이다. 아이에게 평일에는 아빠도 회사에 가듯, 엄마도 집에서 일을 하고 행복이는 어린이집에 갔다가 즐겁게 보내다가 다시 만나는 날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주말엔 온종일 가족이 함께하면서 할머니댁도 가고 서점도 가고 대공원에도 가는 날이라는 부연과 함께. 그래도 절레절레.
어린이집 선생님은 엄마와 함께 어린이집 교실에 있다보니, 엄마에게만 붙어있으려 하고 교사와 친밀감을 쌓을 기회가 없는 것 같다며 이번엔 좀 울더라도 입구에서 헤어져보자고 했다. 키즈노트에 장문으로 어떤 계획으로 아이를 보육할지에 대해 적어주신 선생님의 열의에 한번 더 용기를 내보았다. 대성통곡을 하는 아이를 뒤로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까. 드디어 오늘 아이는 울지 않고 등원을 했다. 하원하는 모습도 명랑함으로 가득한 아이. 아, 이렇게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는구나 하며 방심했다. 여전히 나에게는 남편이 오기 전 두 아이와 함께하는 6시간이 남아있는데 말이다.
요즘 자신의 장난감에 손을 대면 거칠게 대응하는 첫째다. 밀치고 누르고. 어떤 날은 장난감 망치로 동생의 머리를 때리고 있어 기겁한 적이 있다. 뭘 알고 했겠냐만은, 아직 대천문도 닫히지 않는 말랑말랑한 머리를 저 딱딱한 플라스틱 망치로 치다니!
아이는 너무 예쁘지만, 둘은 정말 힘들다. 1:1도 힘든데, 1:2라니. 내가 첫째를 너무 쉽게 키우다보니 두명도 거뜬할 거라 생각했나보다. 오만했다. 이런 이야기는 어디다 편하게 하지도 못한다. 특히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자신이 엄마를 힘들게 하는 존재라고 오해할까봐 더더욱.
육아의 지옥 속에서 나는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아이들에게 떡뻥을 쥐어주며 나와 분리한 후 오직 나를 위한 떡볶이를 만들었다.
"엄마, 매워?"
"응 아주 많이 매워"
매운맛 떡볶이를 먹으며 맘스홀릭에 '육아지옥'을 검색해봤다. 나와 같은 엄마들이 한 트럭이었다.
"출산도 친구들 중엔 제가 처음이라, 저는 그 흔한 조카도 없었어요 그래서 진짜 주변에 애기라고는 없었던 사람이라 이렇게 힘든거 본 적도 없고 그저 애엄마들은 다른 세상 사람 같았고 진짜 시건방지게 '나는 나중에 애 낳아도 저렇게 추레하게 안다녀야지' 뭐 이런 생각을 했었던 거 같아요. 근데 지금은 뼛 속 깊이 모든 애엄마들을 존경스럽게 생각하고 왜 그랬는지 왜 그럴수밖에 없는지 너무 잘 알아서 아는 제 자신도 짜증나네요"
"님 말대로 어디다 후회한다 말도 못하고. 속만 베베 꼬여서 미혼 친구들 결혼 소식 하나씩 알릴때마다 너도 해봐라 이것아 그 소리가 목 끝까지 절로 나오는데 절대 말 안해주고 있네요"
"미니멀라이프로 집도 깔끔하게 하고 커리어 쭉 이어가고 미용 운동 등 나한테만 투자하고 근데 그 어떤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는거 몰랐어요 이렇게까지 힘들줄 원망스러움. 나도 말 안할거에요 모든사람들이 다 애 낳았으면 좋겠어요 나만 이 고통을 겪을순없지"
다들 많이 힘들구나. 나만 이런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공감을 얻는 것만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결국 치트키를 썼다. 모두가 잠든 밤에 '프랑스육아'를 검색해보았다. 그중 '자발적 방관육아'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초등학교 교사이자 두 딸의 엄마인 저자가 쓴 책이었는데, 여기저기 배울 점이 많았다. 맘스홀릭에서 공감으로 1차 소독하고 2차 약바른 느낌이랄까.
아이가 집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위험한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하게 두어야 한다.
청소도, 빨래도, 설거지도, 어설프고 더 어지럽히는 것 같지만 해봐야 는다.
집에서 아이들에게 많은 경험을 시켜주면 좋겠다.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엄마는 좋은 엄마가 아니다.
- 최은아 <자발적 방관육아>
정서적 안정에서 가장 기본은 공감이다. 그리고 그 공감을 바탕으로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해결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속상한 아이라면 속상한 마음에 함께 공감하고, 아픈 아이라면 아픔에 공감하고, 화난 아이라면 화나는 마음에 공감하면 된다. 아이의 마음을 애써 엄마가 해결해주려고 하지 말자. 단단한 정서를 만드는 비결은 "괜찮아?"라는 말 한 마디에 있다.
- 최은아 <자발적 방관육아>
내일은 좀 더 어른다운 어른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대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