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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현 Jan 10. 2024

예민한 아이로 자라는 이유


얼마 전 나보다 세 살 많은 언니와 페이스톡을 하다 나눈 이야기다.

    

“나는 둘째가 어려워. 얘는 기분이 좋을 땐 너무 좋고, 안 좋을 땐 너무 까다로워.”     


언니는 마치 그런 걸 네가 힘들어하면 어떡하냐는 투로 말했다.     


“완전 너네.”

“응?”

“너도 그렇잖아. 좋을 땐 너무 좋고 안 좋을 땐 완전 안 좋고.”

“그렇지…. 내가 그렇지.”          


라며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대답했지만, 실은 내 성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된 순간이었다.


'아…. 나는 나랑 똑 닮은 성격의 둘째가 버겁구나. 그럼 이런 나를 대하는 가까운 사람들 역시 쉽지 않았겠구나.'          



 한편으론 또 다른 생각이 들고 일어났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예민한 아이가 아니었다. 너무 순해서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 자는지 안 자는지 구분도 안 될 정도로 순둥순둥한 아이였다고 한다. 자다 깬 갓난아기는 배고프다고 울거나 기저귀가 축축하다고 울거나 엄마가 안 보인다고 울어야 하는데, 나는 두 눈을 말똥하게 뜨고는 내 발을 잡고 노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그 덕에 엄마는 집안일을 하기 수월했다며 어린 시절 나의 순둥미를 여러 번 증언했었다.     



 그랬던 내가 어쩌다 예민한 아이가 되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생각과 의견이 요만큼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답답함을 느낄때마다 조금씩 예민해졌다. 마치 반사판이 있는 벽처럼 내 얘기들이 튕겨 나오는 대신, 모든 상황에서 교장 선생님의 훈화 같은 이야기를 온 가족에게 들어야 하는 일이 반복되던 어느 날부터 차근차근.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강제로 하게 되는 상황에서, 안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수도 없고, 마음과 다른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던 요령없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정 표현이 짜증을 내는 일이었다. 내 생각을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에도 어차피 받아들여지지 않을 걸 알기에 짜증부터 일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쉽게 짜증 내는 아이, 좋았다가도 한소리만 들으면 바로 안 좋아지는 아이, 까다롭고 예민한 아이가 되어갔다.     



 어린 나는 나를 잘 몰랐다. 때문에 예민함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몰랐다. 자랄수록 점점 예민해진 이유는 비슷한 상황이 지속해서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원인은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를 덧입히듯 계속 들이닥치는데, 피할 방법을 모르는 어린 영혼은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날카롭게 가시를 세우는 방법밖에 몰랐던 것이다.



      


 


 모든 부모는 아이에게 사랑만 줄까? 아니다. 사랑이라는 가면을 씌운 상처도 함께 준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가 주는것은 모조리 사랑이라 여기기에 선별해 받지 못한다.      

 


 백영옥 작가는 《힘과 쉼》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아이의 성격은 부모의 영향 아래 있다.”라고 말했다. 시험 점수, 석차처럼 결과만을 가지고 칭찬받은 아이들은 실패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아이로 자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공감받기보다 질책과 훈화 같은 이야기만 들은 아이는 스스로에게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게 된다. 무엇보다 외롭고 슬퍼도 울지 못한 아이는 발화되지 못한 감정을 고스란히 몸에 쌓아 병의 씨앗을 키운다. 



 10살도 안된 어린 아이가 원인 모를 두통에 시달리고,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함께했던 위장병은 무엇을 의미할까.

 병원에서는 원인을 발견하지 못해 늘 신경성이라며 대학교에 입학하면 나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나의 두통과 위장병은 나을 기미가 없었고, 오히려 그전까지는 겪어보지 못한 위경련이라는 극심한 통증을 동반한 병까지 더해졌다. 현재까지도 이지엔식스프로(편두통약)와 부스코판 플러스(위경련약)는 상비약으로 우리 집 약통에 항상 모셔다 놓고 산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복잡하고 다양한데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은 “괜찮음”까지였다. 화가 나거나, 억울하거나, 질투가 나거나, 실망스러움을 표현하면 야단을 맞았다.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감정 역시 서둘러 감추어야 하는 감정이었다.그저 “괜찮아”로 표현하기에 나는 지나치게 다양하고 많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표현하는 방법도 다루는 방법도 배우지 못했다. 마치 작은 구멍으로 뭔가를 밀어내려면 날카로운 소리를 내게 되듯이 나는 신경질적이고 까다롭고 예민한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시 처음의 문제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그런 내 성격을 내가 자유롭게 키웠다고 자신하는 둘째 아이가 닮았다고? 뭐든 하게 해주고 어떤 표현이든 받아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의 나와 이상적인 나의 갭이 이렇게 차이가 난다.      



 백영옥 작가는 《힘과 쉼》에서 요가를 배울 때의 일화를 소개하는데, 본인은 매우 정확한 자세로 요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본인의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보니 자세가 7~8도쯤 틀어져 있었다고 했다. 

 어떤 이야기든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 좋은 부모의 표상이라 여기고 있었지만, 실제의 나는 올바른 소리로 아이의 감정 표출을 막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최근 내가 성경처럼 묵상하고 있는 스캇 펙 박사의 《아직도 가야 할 길》에는 수많은 밑줄이 그어져 있다. 그중 최근에 밑줄을 긋고 깊이 묵상했던 문장이 있다.     

 


 “개인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진보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가 속한 사회를 진화시킬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우리를 키워준 문화는 어른이 된 우리에 의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



 나는 늘 성장하고 있다고 여기지만,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바라보지 못하면 성장은 그저 나의 상상 속에만 존재할 뿐 실제로는 제자리걸음을 걸을 뿐이다. 나와 똑 닮은 아이를 보며 속상해할 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답답함과 속상함을 토닥여 주고, 들어주고, 공감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어른이 된 나에 의해 내가 속한 사회가 보다 진보한 문화로 변화할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표현하는 어떤 감정도 사소하지 않다는걸 기억하자. 

아이가 표현하는 긍정의 감정이든 부정의 감정이든 모두 내 아이를 표현하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교한 아이의 이야기에 맞는 말을 보태지 말고 그저 들어주기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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