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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Aug 22. 2022

My mom

어린 시절 학교 갔다 오면 엄마가 늘 집에 계셨다. 같이 돈까스를 만들어 먹기도 했고 더운 여름엔 복숭아 화채를 만들어주시기도 겨울이 되면 핫케이크를 구워주시기도 했다. 저녁이 되면 우리 자매 넷 둘러 앉혀 사과를 반으로 잘라 숟가락으로 긁어서 한입씩, 아기새 먹이 주듯 주시던 기억도 생생하다. 아빠가 한창 바쁘셨던 어느해 어린이날, 나와 언니 동생이 놀이동산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쉴새 없이 놀이기구를 타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겨운 기색 하나도 없이 홀로 지켜보시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또 다른 맘 한 켠엔 엄마에 대한 깊은 상처. 엄마에 대한 좋았던 기억을 먼저 쓰고보니 엄마로 인해 아팠던 기억이 순간 바래진 같아 조금 놀랐다. 하지만 분명하게 있다. 그건 없어지지 않았다.  

엄마에 대한 마음은 늘 복잡하다. 한없이 우리 곁에서 따뜻한 추억을 안겨주기도 한 사람. 때론 자식들보다 본인의 상처와 과거에 사로잡혀 우리를 힘들게 한 사람. 때론 사람보다, 자식보다 돈이 먼저인 것 같았던 사람. 나와 남편 다음으로 우리 아이를 가장 많이 사랑해주는 사람. 나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사람. 내 인생에서 절대 뺄수도 지울 수도 없는 사람.  

며칠 전 힘든 일이 있어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는 언제나처럼 누구보다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셨고 나만큼이나 속상해하시고 슬퍼하셨다. 같이 욕해주고 울어주고, 그렇게 실컷 하신 뒤 새벽바람으로 일어나셔서 매일 기도해주셨다. 평상시에도 늘 느꼈던 거지만 다시 새삼 새로이 생각했다. 내 기쁨을 자신의 기쁨이라 여기고 내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느껴주는 세상 몇 안되는 사람이라고. 엄마에 대한 내 상처의 기억은 아마 살면서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동시에 엄마에 대한 좋은 기억 또한 함께 존재할 것이다. 아픈 기억을 억지로 없애기 위해 좋았던 기억으로 덮으려고 하지도 않으려한다. 그냥 두 기억 모두 그대로 둔 채 살아가려한다. 상처도 사랑도 다 마음 안에 있다.  

성인이 되고 미워했던 엄마를 닮아가는 내 모습을 종종 봤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는 더 자주 보게 된다. 나는 어떤 엄마로 기억될까.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처럼 아주 오랜 시간을 엄마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애를 쓰고 써야만 했던 아이로 자라게 하고싶지는 않다. 역시 부모는 거저 되는 건 아닌걸까. 배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는 걸 막기 위해 키를 반대로 돌리고 돌리는 수고를 한 뒤라야 원하는 방향으로 가듯, 나의 싫은 부분, 내 가정의 싫었던 부분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어쩌면 많이, 아주 많이 노력해야할지도 모른다. 실은 내 마음이 치유되어야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들었다.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장점을 갈고 닦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엄마는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주셨고 많이 안아주셨고 항상 잘한다고 뭘 입든 어떻게 하든 예쁘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엄마에 대한 마음이 여전히 복잡한 지금, 엄마가 해주셨던 따뜻한 사랑의 표현들을 우리 아기에게 많이 많이 해주는 것, 우선을 그걸 해보려한다. 상처를 지우는 것보다는 지금은 그게 더 쉬우니까. 온전히 조금 더 엄마를 더 이해하고,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아팠을 어린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날이 올까.
오지 않더라도 괜찮다. 지금은 그냥 뭐든 그대로 두고 싶다.



2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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