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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뒷골목 식당

듣고 마시고 먹는 것에 대해 써도 정작 식당을 소개할 일은 거의 없는데 이번에 <바자>에서 청탁을 받아 좋아하는 식당들 중 다섯개를 골라 썼다. 강제 금주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골라 놓고 보니, 모두 소주 강도같은 음식들이다. 허름한 분위기야말로 술맛과 밥맛을 촉진시키는 조미료라 믿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곳이다.


호반

낙원상가 옆 막다른 골목에 있는 호반은 맛과 기품을 동시에 갖춘 곳이다. 1961년 헌법재판소앞에서 시작, 지난 해 이곳으로 옮겼다. 능히 소주 한 병을 비울 수 있는, 시지도 달지도 않은 물김치가 기본찬의 백미다. 직접 만드는 순대, 강굴과 주꾸미 등 제철 해산물, 그 무엇을 먹어도 후회가 없다. 하나만 먹어도 다른 모든 메뉴를 맛보고 싶어진다. 꼭 먹어야할 게 있다면 병어조림. 두툼한 병어를 조화롭게 졸여낸다. 고급스러운 한식 주점이 많지만 이 만큼 편하고 세월의 기품까지 묻어 있는 곳은 단언컨데 없다.


을지오뎅

을지로 3가 골뱅이골목 초입에 있는 을지오뎅.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오뎅탕 전문으로 시작한 가게지만 술꾼들의 주타겟은 도루묵이다.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입구에서 뱃속을 알로 꽉 채우는 도루묵을 일년 내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알없는 도루묵이란 푸들 머리없는 엘에이 메탈아닌가. 구이도 찌개도 수준급이다. 2인석? 4인석? 그런 거 없다. 커다란 ‘스뎅’ 오뎅가게용 테이블 하나에 스무명 남짓 둘러 앉으면 가게가 꽉찬다. 오뎅바의 유행은 사라졌지만 유행의 상징은 유물이 되어 팔십년대 미싱 다이처럼 훌륭한 인테리어로 살아 남았다.



20년 전통 생태찌개전문

간판엔 그 흔한 ‘**집’ ‘**식당’도 없다. 덩그러니 ‘20년전통 생태찌개 전문’뿐이다. 대로변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영등포 시장 뒷골목이다. 아는 사람 아니면 절대 못갈만한 곳인데 식사 시간이면 금새 자리가 꽉 찬다. 시원하고 칼칼하며 잡맛이라고는 일체없는 생태찌개는 찬바람이 불면 절로 생각나는 맛이다. 그 때 그 때 퍼서 주는 밥에 갓 구워낸 김을 싸서 양념장과 함께 먹어도 한 그릇은 뚝딱이다. 세상에는 스피키지 바만 있는 게 아니다. 이런 곳이야말로 술꾼의 아지트가 될만한 스피키지 식당이다.


식이네

모래내 시장 한 켠에 오래동안 자리잡고 있는 식이네를 빼고, 나는 밥집을 말할 수 없다. 목포 출신 이모가 오랫동안 밥을 짓고 장을 담그고 음식을 만들어 왔다. 시장이 지척이건만 갈치, 꼬막 등 모든 해물은 남도에서 직접 올린다. 찌개 하나만 시켜도 온갖 김치와 장아찌가 한 상 가득 깔린다. 남도의 진한 맛이 모든 음식에 배어 있다. 쭉 찢어 먹는 묵은지 한 두 줄기만으로도 밥 반 그릇쯤은 순식간에 증발한다. 이모가 진짜 남도 사람임을 확인하려면 홍어를 시키자. 신나서 상차리는 모습만 봐도 식탁은 남도 잔칫집이 된다.


원조 아바이 순대

80년대 부터 청계천에서 쇳밥 먹는 분들의 식탁을 책임져 온 곳이다. 순대국 한 그릇을 시키면 주방에서는 질좋은 부속, 야채와 두부가 가득찬 대창 순대, 그리고 밥을 넣은 그릇에 국물을 토렴해서 내온다. 잘 익은 무김치와 담백하기 그지없는 순대국의 조화는 용형호제가 따로 없다. 절로 소주를 시키게 된다. 순대국도 훌륭한 안주지만 두엇이 가서 모듬 고기까지 시키면 소주병을  볼링 핀 삼아도 좋을 만큼 쌓을 수 있다. 위험하다. 항상 준비된 누룽지 숭늉으로 그 위험을 중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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