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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해장

공덕동 진시황 북어국

예수는 삼일만에 부활하셨지만, 술꾼이 숙취에서 부활하는데 삼일이나 걸렸다가는 일상 생활과 음주 생활에 양면 타격을 입는다. 그래서 옛 현인들은 음주후 해장이라는 연결관계를 창안해내셨으니, 우리는 해장후 다시 술을 마실 때 마다 선조들의 덕을 기려야 마땅하리라.


숙취와 해장의 관계는 타자와 투수의 그것과 같다. 좋은 투수가 타자에 따라 구위와 구속을 달리 하듯, 현명한 술꾼은 숙취의 유형에 따라 해장의 종류를 선택한다. 짬뽕이 필요한 날이 있고, 곰탕이 땡기는 날이 있으며, 닥치고 미음이나 한 그릇 먹어야 하는 날도 있다. 콩나물국은 늘 무난하지만 늘 맛이 없기 마련이고 평양냉면은 가끔 주화입마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할머니가 배를 문질러 주시듯 속을 편하게 하는 해장음식이 있으니, 나에겐 북어국이다. 숙취가 누적되며 몸이 무겁고 속이 편하지 않으면 가장 먼저 북어국이 떠오른다.


북어국의 으뜸은 오랫동안 무교동 북어국이었다. 북어국이 필요한 날이면 나는 무거운 몸과 부서질 것 같은 머리로 기꺼이 버스를 타고 무교동으로 향하곤 했다. 직장인들이 모두 출근한 시간이지만 일단 사무실에 들어 갔다가 해장을 위해 다시 나온 이들 틈바구니에 있노라면 왠지 직장인이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늘 무교동까지 갈 수는 없는 법. 밥 한 그릇 먹고 다시 홍대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잉여 그 자체가 되었다는 자책감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잉여이기 때문에 그 자책감은 더욱 견디기 힘든, 천형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종종 이용하던 곳이 합정동의 모 북어국집이었다. 이 곳은 뭐랄까, 북창동의 열화버전이랄까. nike가 아닌 nice요, 아디다스가 아닌 아디도스같은 그런 느낌이다. 구성도 똑같고 스타일도 똑같은데 혀와 속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은, 응급용과 자책방지용으로 간다. 걸어가기에도 큰 부담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하지만 장점이 있다 하여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우리의 해장은 그만큼 소중하니까.


공덕오거리에 작은 북어국 전문점이 있다. 뭔가 거창한 나머지 왠지 신뢰가 안가는 상호를 갖고 있지만 맛은 신뢰해도 좋다. 무교동이랑은 달리 계란이 안들어가고 기본적으로 간도 넉넉히 되어 있다. 연구의 결과다. 이 집을 올 봄에 알게 되서 사철을 갔다. 오픈 초기에 맛이 있는 집은 일년은 좀 다녀 봐야 한다. 오늘은 딱 북어국이 필요한 날이었다. 광합성도 할 겸 늦은 점심 공덕동까지 걸어 갔다. 지난 가을 이후 오랫만의 방문이었다. 처음에 왔을 때나 오늘 갔을 때나 맛이 그대로다. 밥도 잘 짓고, 국물도 잘 낸다. 해장국의 기본이란 밥과 국물인데 이 양대 기본기에 충실한 집이 의외로 많지 않다. 이 집이 정확히 그렇다. 화려하진 않은데 달려 드는 적을 부드럽게 튕겨 내는 고수의 초식이랄까. 그릇을 비우고 있노라면 숙취가 고급지게 사라진다.


집으로 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숙취를 성공적으로 제압해서 기뻤고 그 고마움을 이렇게 뻘글로나마 남기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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