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이해인 수녀님 시 '말을 위한 기도'에 나오는 문구다. 눈 뜨자마자 마주치는 가족, 학교 또는 회사에서 만나는 인연, 친구, 애인, 학원/퇴근 후 즐기는 취미생활에서 알게된 지인... 등등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 특히 스마트폰이 일반화되어 있는 2022년인 만큼 '입'을 통한 이야기를 넘어 '손가락'으로 자신만의 의견, 리액션, 생각을 공유하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문득 대화는 어떻게 시작되는지 생각했다. 인사 및 안부 다음으로 여담, 스몰톡, 아이스브레이킹 그리고/또는 찡찡이 아닐까? 하버드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아기가 우는 이유는 선천적으로 엄마의 관심을 독차지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에 엄마의 잠을 깨워 수유를 하게 만드는 등 둘째의 탄생을 막아 '주인공'이 되려는 생물학적 행동을 저지르는 것이다. 유일한 언어 수단 '울음'을 가진 아기에서 진화해 우리는 누군가의 관심을 얻기 위해 '찡찡'을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찡찡'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찡찡'은 솔직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소연 작가님의 '마음사전'이라는 책에서는 '마음에서 무언가 사라지길 원해서 우리는 말을 하는 걸까. 아니면, 무언가 정말 잘 기억하기 위해서 말을 해두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말을 건네는 걸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지금 마음 속에 간직한 짜증나고 답답한 감정을 어느 정도 해소하기 위해 '찡찡'을 하는 것이고 나는 그 '찡찡'을 시작으로 대화가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정 수준의 '찡찡'을 공유할수록 관계가 가까워지는 것으로 보였다.
그저 그런 날들이 있다. 회사 이메일에 '감사합니다' 만 쓰고 OOO드림 안 썼다고 혼나고(이메일 시작 부분에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라고 썼다고 해도), 친구가 30분 지각하는데 연락도 잘 안되고, 핸드폰 터치스크린이 갑자기 작동 안 되고, 부모님이 옷 가지고 잔소리를 하는 등 싫증나는 날들이 있다. 사소하지만 불가피하게 이런 감정을 겪는 순간 만큼은 그 어떤 것보다 울컥하고 힘든 법이다.
그런데 '찡찡'을 하고 나면 약간 괜찮아진다. 우선 '찡찡'을 부릴 수 있는 이가 있다는 점에, '찡찡'을 하면서 상황과 감정이 정리된다는 점에, '찡찡'을 통해 얻는 애정 어린 눈빛과 따뜻한 말에 위로를 받는 것이다. 나는 남자친구에게는 디테일하게, 친구 또는 같이 일하는 이에게는 간결하면서 센스있게(안다... 이 '센스'가 가장 어렵다는 것을..) '찡찡'하며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래도 김소연 작가님의 문구처럼 말(찡찡)을 하니 마음에서 안 좋은 것들이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물론, 일정 수준을 넘어 주체되지 않는 감정에 '찡찡'이 계속된다면 듣는이가 힘들어할 수 있다. 그래도 '찡찡'은 다행히 유효기간이 길지 않아 보통 그날 겪고 그날 푸는 경우가 많으니 우리 모두 '찡찡'을 부리고 귀기울여 들어주는 세상이면 좋겠다. 바이러스로 얼굴까지 마스크를 써야하는 상황에 감정이라도 정직하게 얘기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서로 기대어 있는 사람 인人자처럼!)는 그런 세상 말이다.
그리고, 인생은 언제나 씁쓸하지 않고 가끔씩 따스한 나날들도 있어
그때는 왜 그리 힘들어했을까 마음 가볍게 웃는 날도 있을거라고, 곧 올거라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토닥토닥이고 싶다. 찡찡러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