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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빙어니언 Apr 22. 2023

(빌려)주는 마음

몽쉘같은 마음

고등학교 시절,

동경하던 친구가 있었다.

공부를 잘하던 친구였고, 해외경험도 있었던 친구였고, 그 친구가 전하는 미술/예술 쪽 관련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친하게 지냈다.


한국 고등학교 시절 생각나면 그 친구가 제일 먼저 생각날 정도로 나에게는 큰 의미를 지닌 친구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친구만 있다면 나도 멋있는 사람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고, 30명 반 친구들 중에 그 친구 한 명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정도로 그 친구를 멋있어 했다. (얼추 <스물 다섯, 스물 하나> 초반, 나희도가 고유림 선수를 좋아했던 것 처럼)


내가 나를 봤을 때, 나는 정이 많은 사람이다.

(광고 동아리 지원서에 나를 한 마디로 표현하라는 질문에 '초코파이'라고 했을 정도..)

정이 많은 나는,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 몽쉘을 챙겨 학교에 가곤 했다.

엄마가 마트를 간다고 할 때에는 꼭 몽쉘 1박스를 부탁했다. 등교 전에 집에서 친구 꺼 하나, 내꺼 하나 챙겨서 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몽쉘을 챙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 친구를 그렇게 멋있게 생각하는데, 그 친구에게 inspiration이 되기 위해 나 나름대로 멋있는 사진, 영상, 영화 등 찾아보기도 하고, 생각도 정리해 갔는데, 그 친구는 막상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느끼자 몽쉘 챙기는 루틴을 그만뒀다. 계기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한 농담이나 질문에 별 반응하지 않아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정말 쪼잔할 수 있지만 그 친구는 자기 과자만 챙겨서 먹는 모습을 보고 살짝 섭섭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당연하고, 고3시절 체력은 본인이 지키는게 맞는건데..

속상했다. 첫 번째로는 그 친구는 내가 하는 노력(몽쉘, 이야깃거리를 위해 하는 나의 노력 등)을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아서. 두 번째로는 누군가를 싫어하는 내가 싫어서 속상했다. 사랑하기도 바쁜 세상인데, 그 친구는 나를 혹시 안 좋아하는 건지 전전긍긍하는 내가 그저 초라해 보였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너무 잘 보내다가 한국에서 적응해야 했던 시절이라 더 예민했겠지만 누군가가 나를 떠나는게 싫었고 그 친구가 없으면 나머지 학교 생활은 어찌해야하나 싶기도 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쯤 그 친구는 나에게 무심해서 미안하다고 전했고, 공부라는 스트레스가 자기도 정말 지독하게 싫었고, 입시가 잘 안 되었을 때 나를 탓하기 싫었다고 했다. (얘기를 듣자마자 내 마음은 사르륵 녹았다.)


엄마에게는 몽쉘을 더 이상 사오지 않아도 된다며 속상한 마음을 표출했다.

엄마는 내가 몽쉘을 준 거지, 왜 빌려준거처럼 생각하냐며 나를 거의 혼내듯 얘기했다.

마음을 줬으면, 준 것으로 끝내야지. 왜 보상받을 생각하다가 보상 못 받으면 혼자 속상해하냐고, 그 속상한 마음 친구에게 표현도 못 할 거면서 마음은 빌려 주는 것이 아닌 주는 것에 대해 얘기해줬다. 엄마는 다음 날, 몽쉘을 사왔고 친구에게 꼭 주라며 다른 과자 또는 반응을 못 받아도 속상해 하지 말라고 하셨다.


give and take에 익숙한 것인지, 정이 많은 나는 정을 받아야 정이 지속가능한 것인지, 그저 보상만을 바라는 욕심쟁이 사기꾼 같은 나의 본성인 것인지, 여전히 마음을 주었다고 생각했을 땐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의 우선순위에 내가 들어가 있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아직도 사람으로부터 속상할 때 엄마의 이야기를 되새기고 있다.

그리고 올해 30살이 되니 관계에도 계절이 있다고 믿게 됐다. 봄-여름-가을-겨울과 같은 순서는 아니지만, 마음을 주는 방법으로 나는 계절을 선택했다. 모든 관계에 계절이 있다고 생각해 보는거다.

어떤 사람과는 뜨거운 여름처럼 만나자마자 영혼의 단짝인 것마냥 친해지고, 어떤 사람은 겨울처럼 차가워보였지만 천천히 알고 지내다 보니 봄처럼 살랑살랑 기분 좋은 관계가 되고, 어떤 사람은 고민을 얘기하다 보면 가을날 시원한 바람처럼 통쾌하게 풀어주는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행복한 인연들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여름같이 뜨거웠던 친구 관계에도 차가운 바람이 불 수도, 봄 햇살같이 따사로운 관계에서 더 좋은 여름이 될 수도, 차디찬 겨울에서 어느 순간 뜨거운 여름이 될 수도 있는 생각이 들었다.


계절은 영원하지 않고, 새로운 인연은 또 색다른 계절을 데려와 나와 새로운 합을 맞추는 게 나만의 마음을 지키는 방법이랄까.

재택이 많은 요즘 생각이 많으니 불안한 감정도 마주하게 됐다. 불안이라는 친구는 이제 익숙해진건지 불안감을 느끼면 이제는 응 왔니.. 싶다. 조금 느끼다가 또 새로운 에너지에 반하면 잊혀질 친구라는 것도 잘 알게됐으니 말이다.


특히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는 ’지구 탄생 이래 단 한 번도 동일한 날씨를 반복하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그렇게 밝다가도 갑자기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날씨. 예측이 어느 정도 되지만 갑작스레 변해도 마주해야하는 날씨. 계절 속 날씨가 있듯 관계 속에서 지내는 나날들의 무드를 생각하면 비슷한 면이 정말 많다고 생각하게 됐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강연도 인상깊게 봤다.

Life can be heavy, especially if you try to carry it all at once. Part of growing up and moving into new chapters of your life, is about catch and release. What I mean by that is, knowing what things to keep, and what things to release. You can't carry all things. Decide what is yours to hold, and let the rest go. Oftentimes, the good things in your life are lighter anyway, so there's more room for them. One toxic relationship can outweigh so many wonderful, simple joys. You get to pick what your life has time and room for.


https://www.youtube.com/watch?v=OBG50aoUwlI

테일러 스위프트는 인생에 있어 지킬 것과 놓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전한다. 모든 것을 갖을 수는 없으니 소중한 것만 간직하고 나머지는 버리라고. 그래도 인생에 있어 좋은 것들은 대부분 가벼워 채울 수 있는 공간이 많을 거라는 메시지가 내가 최근 생각하고 있는 관계에 있어도 적용된다고 생각들었다.


4월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쌀쌀한 날씨에 햇살과 바람이 그렇게 반갑다.

겨울은 확실히 지난 느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친구, 연인, 가족 관계에도 겨울보다는 따사로운 봄이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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