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연 Apr 10. 2023

봄비가 내렸다


연이틀 봄비가 내렸다. 비가 통 오지 않아 건조하고 전국 각지에서 산불 소식이 들렸었다. 비가 내리고 흐린데 미세먼지까지 안 좋은 건 왠지 억울하지만, 여러모로 반가운 봄비다. 거의 스치듯이 지나간 벚꽃보다 오히려 한 발 늦게 핀 동네 목련 나무는 이제 막 고개를 들어 꽃봉오리를 틔웠는데 봄비에 바로 떨어졌다. 그래도 아무렴 좋다. 덕분인지 그 다음 날 해가 났을 때 새순 돋은 나무들이 보여서다. 초록색에 노란색과 하얀색 물감을 한 방울 떨어트린 듯한 연두빛깔의 여린 잎들을 새로 단 나무들이 바람에 한층 더 해사하게 넘실거린다. 숱도 며칠 전보다 조금 더 많아진 느낌이다. 봄비 덕분이었을까, 어제보다 조금 더 빼곡해서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면 땅이 덜 보인다.


봄비는 후두둑보단 부실부실 내린다. 습하고 눅눅하기보단 촉촉한 느낌에 가깝다. 여름에 내리는 장마는 온종일 저녁같다면, 봄비가 오는 날엔 하루 종일 해가 뜨기 전 새벽같은 느낌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천둥 번개가 치는 요란한 비도 좋아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빗소리가 샤워기 튼 소리처럼 쏴-하는 소리가 집 안에서도 들리는 그런 비도 좋아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런 날 온가족이 집에 있는 걸 좋아했다. 장대비가 오는 날에 식구들이 복작거리는 집에 있노라면 튼튼한 집의 사면이 우리 가족을 수호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집에서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있을 때 몸을 감싸는 아늑함이 너무 좋았다.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하루종일 어둡고 푸른 바깥을 보면 노란 불을 킨 우리 집 안은 한층 더 따뜻해보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있다는 느낌. 어떤 어둠이나 위험도 안으로 새어들어올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어렸을 때 집 모양 텐트도 좋아했다. 어린이용 텐트라서 어린 아이 네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사이즈지만, 어엿한 지붕까지 있는 텐트집이었다. 언뜻 보면 조금 큰 강아지 집같기도 했지만, 지퍼 문에 진짜 문 같은 그림을 그려 넣은 작은 집이었다. 집 안에서도 또 한 겹 더 내 공간이 생기는 것 같았다. 이중막이 생긴 셈이니 더할 나위없이 완벽했다. 어린 내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그 공간이 주는 완전한 안전함이 좋았다. 그 안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고, 책을 읽었다. 가끔은 거실에 있는 엄마를 초대하기도 했다. 몸을 반으로 꾸깃꾸깃 접어 지퍼문을 통과해 텐트 안으로 들어온 엄마와 과자를 먹으며 가장 안락한 오후를 보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내 작은 집을 비추면 집 안이 온통 밝아졌다.




바깥으로부터 안전지대를 찾아 그 아늑함에 볼을 부빈다. 추운 겨울 따끈한 탕 속에 들어가 앉는 것만 같은 기분에 몸이 나른하게 풀어진다. 움츠리지 말고 바깥으로 나가보는 것이 중요한 만큼 돌아올 곳의 존재도 중요하다. 안전지대라는 말이 언뜻 소극적이고 진취적이지 못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하지만 중요한 이유다.

문득 나에게 더 이상 텐트집은 없지만 그보다 더 넓고 푸근한 안전지대가 있다는 것이 벅차게 감사하다. 비를 피해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돌아갈 수 있는 어떤 이의 품이 있다는 것. 동시에 나를 다시 바깥으로 나가게 해주는 원동력들이기도 했다. 뒤에서 든든히 잡아주는 것들이 촘촘한 그물망처럼 있어 나는 내 힘이 닿는 데까지 다리가 후들거릴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힘을 다할 때까지 버티다가 고꾸라지면 언제든지 손을 뻗어 잡아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상처받은 마음은 다른 이의 마음을 반창고 삼아 덮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내 마음을 온전히 다 쓸 수 있었다. 

누군간 나에게 용기있다고, 표현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라고, 열정적이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나는 내 마음을 불살라 태워버려도 다시 새 살이 차오를 수 있다는 걸 은연중에 알았기 때문에 더 무모할 수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가 과연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에게, 어디에도 주저앉을 곳 없이 사방이 절벽인 사람에게 그 어떤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죽을 힘을 다 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 쏟아부었어야했다고 첨언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다시 삼키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럴 수도 있겠다, 말 대신 고개를 끄덕여줬다. 따뜻한 실내에 있으면서 바깥에서 비를 맞고 있는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었다. 그건 조언이 아니라 교만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이야기할 땐 왜 우린 다른 사람인데 자꾸 너의 잣대를 들이대는 걸까, 하며 귀를 닫아버리면서 왜 반대의 상황은 생각하지 못했을까. 보지 못한 시간들 속에서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난 다 알지도 못하면서 때론 그를 별난 사람으로 속단했었다. 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듯, 그의 세계도 부지런히 돌고 있을텐데.



어떤 날 어둑한 터널 안 구석진 곳마다 달팽이처럼 웅크려있는 노숙인들을 지날 때 나는 서글퍼졌다. 세찬 비바람이 부는 날이나 살인적인 한파로 모든 것이 얼어붙는 날이면 당신들은 홑겹의 낡은 옷과 눅눅해진 종이상자로 애써 파고들겠구나. 나에겐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 그런 궂은 날씨를 따뜻한 집에서 바라만 보며 이런 날도 좋다고 느낀 마음이 죄스러웠다. 그 마음이 너무 사치스러웠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그저 외면한 채 종종 걸음으로 그 터널을 나갔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빌었다. 부디 오늘 밤이 당신들에게 너무 춥지 않길. 밤이 너무 길지 않길.

작가의 이전글 애증의 마음으로 다시 카메라를 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