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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연 Apr 25. 2023

먹고 살 길은 많다

퇴사 후 두달하고 2주 정도가 지났다. 그간 무탈하고 평화로웠다. 이제야 슬슬 그 감각이 옅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여전히 일요일 밤에 누웠을 때 내일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전혀 없다는 것이 낯설 때가 있다. 모두가 월요일에게 오지말라고 아우성칠 때 옆에서 은은한 미소를 띄고 있는 자의 모습이랄까. '내일은 뭐해볼까'하는 생각이 스스로 너무 사치스러워 비죽비죽 웃음이 나기도 한다. 일을 그만두니 평일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어떨 땐 요일도 착각한다. 금요일에 '오늘 목요일인가?' 하면서 직장인들에겐 큰일날 착각을! 

받고 싶지 않지만 엄연히 내 자리로 온 전화고, 나는 부재중이지 않으니 받아야할 수 밖에 없는 전화는 이제 없다. 5분만 맘대로 조용히 있고싶은데 그조차 허용되지 않는 부자유에서도 해방이다. 날씨가 좋아서 뛰쳐나가고 싶을 때 창살 없는 감옥처럼 사무실에 갇혀있어야 할 의무도 없다. 창문 밖의 하늘이 맑으면, 기온이 20도 전후로 딱 적당하면, 한번 나가볼까 하고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나간다. 그렇게 집을 나설 땐 굉장한 부자가 된 기분이다. 돈은 못 벌지만 이 파란 하늘과 울창한 나무 사이를 그저 하릴없이 휘적휘적 걸을 수 있다. 돈은 없지만 그 외 나머지가 모두 내 것 같다. 

거리엔 한 손엔 아이의 손을, 한 손엔 장바구니를 든 젊은 엄마들과 뒷짐을 지고 느릿느릿 산책하시는 할아버지, 산책하는 강아지들과 보호자들뿐이다. 그 사이에 누가 봐도 학생은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어른도 아닌, 헐렁한 옷을 입고 걷는 내가 있다. 다른 세상으로 넘어와버린 것만 같다. 

내가 얼마나 한량같은지를 쓰고자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한량이라고 해서 스트레스는 전혀 받지 않는 것도 아니다. 

점심 시간에 밖을 나가면 사원증을 목에 걸고 삼삼오오 다니는 또래들의 모습을 본다. '너네는 사무실로 복귀하지? 나는 집으로 가지롱' 하는 우월감 옆엔 늘 불편한 찝찝함이 혹처럼 붙어있다. 그 혹은 작아졌다가 커지기도 해서, 유난히 그들의 사원증이 반짝여보이고 그 멋진 각짐에 씁쓸할 때도 있다. 소소한 적금 이자 외엔 전부 (-)표시로 나가는 돈만 줄줄이 보이는 통장 내역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하고 싶은 걸로 먹고 살아보겠다는 웅장한 포부를 그 (-)표시들이 자꾸 침식시킨다. 

하지만 다시 예전 직장으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겠냐 하신다면 아직까진 NO다. 알던 세계로 다시 발을 들이기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너무 많이 떠버렸다.





퇴사하고나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강연을 들으러 갔다가 우연히 나란히 앉게 되어 간단한 스몰 토크를 나누게 된 분들, 수업을 같이 듣다보니 간단하게 서로 자기소개를 나눈 분들 등등 대부분이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이었지만, 무얼 하시는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경주에서 와인 편집샵을 운영하고 계시는 분, 평택에서 남편분과 함께 인테리어 사업을 하시는 분, 음악을 전공해서 레슨을 다니시는 분, 번역가가 되고 싶어서 퇴사 후 통번역대학원을 다니시는 분 등등. 엄청나게 독특한 이력들은 아니지만, 나는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눈이 번쩍 트이는 것만 같았다. 적어도 내 인생에선 생각해보지도 않은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이었다. 


자라온 환경 때문인지, 내 주변엔 대부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대학을 졸업할 때쯤엔 대기업, 대기업까진 아니더라도 주5일 9-6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무직들이 전부다. 그게 평균이고 보통이었다. 물론 다르게도 살 수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게 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해본 적이 없었다. 마치 유튜브에 50만, 100만 구독자를 갖고 있는 채널들은 많지만 내가 그 중 하나가 될 순 없듯이. 주변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지금까지 살아왔으니, 남은 인생도 그렇게 사는 것이 기본값처럼 입력되어있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세상은 넓고 먹고 살 길은 너무도 다양하다. 그리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생계의 줄을 잡고 잘 살아가고 있다. 이 사회가 정상적으로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이 누군가에겐 업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체감한 다양함보다 더할 것이다. 

요즘 어딜가도 들리는 'N잡'이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 수많은 것 중에 어떻게 딱 하나만 쏙 골라놓고 나와 꼭 맞는 천직이길 바랄 수 있을까.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그 사람은 정말 행운아임을 감사해야한다. 

어쨌거나 다시 돌아와서, 나는 먹고 살 길은 너무 많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제서야 좀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20대 후반이 다 되도록 나는 반쪽짜리 세상만 보고 있었던 걸까. 이제껏 주류라고 여겨온 길만 보며 열심히 눈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며칠 전 오빠와 밥을 먹고 소화를 시킬 겸 역삼역 부근을 걷다가 뜬금없이 그런 말을 했다. 나중에 사원증 만들고싶다고. 지나다니는 저 직장인들 목에 걸린 사원증 같이 하나 만들고 싶어, 그런데 그 사원증은 오직 나만 갖고 있어야 돼. 한마디로 말해서 회사에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어야 한다고 어리둥절한 표정의 오빠에게 신나게 이야기했다.

아직까진 어떤 조직에도 완전히 묶여버리고 싶지 않다. 내 의견이나 자유가 조직 앞에서 무력해지는 그런 곳에는 더더욱 들어가고 싶지 않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만의 무기를 갖게 되어 나를 찾아주는 곳들이 생기는 것. 그래서 함께하지만 나는 엄연히 계약된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따로 또 같이'인 것. 어딘가의 부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원하는 곳에 자발적으로 1인분을 하러 가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상상의 나래를 갑자기 더 펼치자면 나중엔 내 공간도 만들고 싶은 꿈도 있다. 카페 겸  바 겸 스튜디오인 복합 공간. 혼자인 사람도, 여러 명도 환영. 마실 거리와 스낵은 주인장이 손 재주가 없으니 종류가 많진 않을 것이다. 식사는 팔지 않지만 가끔 주인장이 요리하고 싶은 기분이 들거나 도전해보고 싶은 메뉴가 있다면 있을 수도. 하지만 이 곳은 분명히 먹기만 하는 곳은 아니다. 개인 작업도 하고 같이 작업도 하는 작업 공간이자 스튜디오다. 

가끔은 종잡을 수 없이 그때 그때 내용이 다른 클래스나 단순한 모임이 열리기도 한다. 가끔씩 소소한 파티도 열린다. 사실 모든 건 주인장 마음대로인, 다소 제멋대로인 공간이다. 그리고 주인장의 목에는 난생 처음 보는 사원증이 걸려있을 것이다. 캐주얼하게 찍은 사진일 수도, 직접 그린 그림이 그려져있을 수도. 주인장이 사원증에 괜한 욕심이 있으니 이해해주세요. 


주5일 매일 같이 출퇴근하며 하루의 반도 안되는 시간만 온전히 쥔채 살아가는 모든 직장인들은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심지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꾸준히 하는 건 웬만한 희생 정신과 인내심만으론 불가능하다. 그걸 못참고 뛰쳐나온 나로선, 원하고 말고의 문제와 상관없이 그들을 존경한다. 내가 다른 세상에 눈을 떠 이 글을 쓴다고 해서 결코 이 세상은 따분하고 저 너머의 세상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렇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런 나도 언제 어떻게 또 생각이 바뀔지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세상은 넓고 먹고 살 길은 많으니 나만 준비되어있으면 된다. 이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지면서도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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