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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연 Apr 26. 2023

시간이 약이야


전에 만났던 사람이 꿈에 나왔다. 희한하게도, 내 삶에 그다지 큰 비중이 없었던 사람들은 종종 꿈에 등장했는데 정작 한 때 나에게 너무 컸던 존재인 그 애는 도무지 나오질 않았다. 그 애를 잊지 못했을 땐 깼을 때 고통스러운 것도 괜찮으니 꿈에서라도 한번 더 보고 싶어 꿈에 꼭 나오길 빌기도 했다. 그럴 땐 한번을 안나오더니, 몇년이 지나 이제 그 애의 이름을 들어도 그냥 잘 사려나, 싶고 마는 정도, 평소엔 생각도 나지 않는 지금 뜬금없이 꿈에 나왔다.


꿈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하게 어떤 행사에서 만났다. 바닷가에서 각자 학교 과잠을 입고 강강술래 비슷하게 각자의 원에서 움직이며 놀고 있었다. 꿈의 비현실성을 고려하면 이 정도면 양반이다. 내가 먼저 그 애를 봤고, 그 애도 뒤이어 나를 봤다. 눈이 마주쳤다. 싱긋 웃고 우린 다시 각자의 원에서 놀았다. 그러다 그 애가 원에서 나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도 내 원에서 살며시 나왔다. 하얗고 고운 모래의 백사장을 걸으며 우리는 한참을 이야기했다. 꿈이라 무슨 대화였는지까진 기억이 안난다. 분명 그 애를 봤을 때 나는 그 애를 전에 만났던 사람,으로 인식했는데 우리의 대화는 원망이나 미움이 아니라 처음 만난 것처럼 간질거리고 웃음으로 가득했다. 꿈의 개연성이란. 우리는 신발을 양손에 쥐고 모래에 맨발을 푹푹 담그며 걸었다. 둘다 바닥을 보며 발을 딛을 때마다 모래 안으로 잠깐 빨려 들어갔다가 나오는 발을 보다가 서로를 보고 웃고 그렇게 계속 걸었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졌고 밤이 됐다.


다시 돌아간 자리엔 모닥불이 피워져있었고 친구들이 삼삼오오 그 주변에 둘러 앉아 놀고 있었다. 나는 누가봐도 이제 막 관계의 시작에 들어선 사람처럼 볼이 상기되어있었다. 뜨거운 모닥불 앞이라 볼은 더 화끈거렸다. 돌아와서도 그 애와 나는 가끔씩 다른 사람들 어깨 너머로 눈을 마주치고 싱긋 웃었다. 바닷가에서 한참을 놀다, 해산하는 분위기라 나는 그 애를 찾았다. 그리고 그 애는 다른 여자애와 있었다. 갑자기 눈 앞이 4D에서 2D 사진이 빠르게 넘겨지는 듯한 화면으로 바뀌었다. 꿈이니까 이런 전환도 낯설지 않다. 빠르게 넘어가는 사진들은 모두 그 애가 그 날 다른 여자애들과 찍은 사진들, 같이 웃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애가 나에게 와 우린 그냥 잠깐 이야기했던 것 뿐이야, 비슷한 말을 하고 사라졌다. 그 순간 너무 허무했다. 눈물은 안났다. 시간의 힘인지 이젠 그 애가 꿈에서 그렇게 날 괴롭게 해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다만 허무함의 이유는 또렷이 기억난다. 너는 또 나를 먼저 버리는구나, 꿈에서 내가 그 생각을 한 것만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꿈에서 깨 처음으로 한 생각은, 넌 꿈에서조차 나를 먼저 버리는구나. 꿈은 조금 다를 수도 있었는데. 꿈은 현실이 아니니까, 자기 멋대로 이야기를 비틀고 꼬는데 어쩜 그 애가 나를 먼저 떠나는 엔딩은 그대로 둔 건지. 너와 나의 헤어짐은 그 한번의 헤어짐으로 너무 명확하게 끝이 나서, 그게 꿈에서조차 바꿀 수 없는 단단한 사실인 걸까. 꿈에서 깨어나 눈을 떠 빈 천장을 보고 잠시 그 허탈함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곤 훌훌 털고 일어나 양치를 했다. 이젠 딱 그 정도다. 아주 몇초만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툭 털고 아무렇지 않아지는 그 정도.





헤어졌을 땐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결코 믿을 수 없었다. 마음에 이렇게 큰 멍이 생겼는데 그게 시간이 지난다고 아물까. 상처는 진하게 남아 날 아프게 할텐데. 하지만 내가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계속 흘렀고 그 애는 더디지만 천천히 잊혀졌다.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애에 대해서 기억나지 않는 게 늘어났다. 어떻게 잊냐며 혼자 청승맞게 울었던 내 모습이 민망스럽게도 어떤 날엔 문득 그 애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음을 깨닫았다. 어땠더라. 목소리가 그렇게 낮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 애 손을 잡았을 때 그 손의 크기도, 온도도 전혀 생각이 안난다. 그냥 키가 컸으니 아마 손도 컸었던 것 같고, 내가 워낙 손이 차니까 그 애 손은 따뜻했겠거니, 짐작만 한다. 시간이 다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해결은 못해줄지언정 그 고통이 옅어지긴 한다. 이렇게 몇년이 지나 꿈에 나온 것이 의아할 정도로, 그 애 생각이 더 이상 나지 않는다. 굳이 그 애의 이름을 듣거나 연상될 만한 곳을 가지 않는 이상 생각나지 않는다. 시간이 그렇다. 시간이 지나야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진했던 것도 옅어진다. 기억창고에 있는 오래된 것들엔 먼지가 뽀얗게 덮여 희끗희끗해지고, 창고에 더이상 자리가 없으면 몇몇 기억을 밖으로 내보내기도 한다. 때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생각이 꽃향을 머금고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휙 불어와 쾌쾌해진 이 창고를 환기시키도 한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는 말도,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된다는 말도 다 이런 시간의 속성을 담은 말일 것이다.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시간도 언젠가 지날 거라는 말을 하는 것밖엔 없어서 무력해질 때가 있다. 함께 술잔을 비워주고 잠시동안 곁을 지키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 침대에 누워 온전히 혼자가 될 떄, 이불 속으로 아무리 파고들어도 속이 시리기만 한 때는 반드시 돌아오고, 그 시간들을 견뎌야하는 건 오로지 친구의 몫인 걸 알기 때문에 애써 건넨 위로의 말 끝엔 모래주머니를 단듯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술과 친구는 진통제일뿐이다. 잠깐 주의를 분산시켜 아픈 부위에 대한 생각을 덜 하게 할 뿐이다.

당장 오늘 밤이 괴로운데 그냥 어느 순간 시간이 지나있을 거고, 그땐 지금보다 괜찮을 거라는 말은 가끔 잔인하고 무책임한 말 같아 도로 삼킨다. 이 말이 오히려 앞으로 겪을 얼마간의 고통을 미리 예고하는 것처럼 들릴까봐 말을 아낀다. 하지만 정말로 시간이 어느 정도 해결해주니까, 다만 그 시간이 친구에게 빨리 지나길 바랄 뿐이다. 정신차려보니 이렇게 지났네, 할 정도로 말이다.






사람은 보통 낮보단 새벽에 센치해진다. 새벽의 공기엔 무슨 성분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적막한 새벽엔 없던 생각도 날아와 부유하고 의식이 심연으로 가라앉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새벽보다 아침이 더 힘들었다. 잠이 안오는 새벽엔 계속 뒤척이다보면 언젠간 까무룩 잠이 들고야 마는데, 아침엔 하루의 시간이 거대한 숙제처럼 놓여있는 것 같았다. 그 하루를 밖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보내야한다는 사실이 나를 짓눌렀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눈을 질끈 감고 머리에 힘을 주며 혼자 주문을 외웠다. '티내면 안돼. 어두운 표정으로 걸어다니지 말고. 사람들한테 말할 때 웃으면서 말해야돼.'

그런 아침들이 몇일 지나고, 어느 날 일어났을 땐 낯선 허기가 느껴졌다. 배고파서 아침을 챙겨먹었다. 그 다음 날엔 일어나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증상이 덜 했다. 그 다음, 그 다음날도 점점 나아졌다. 일어났을 때 아침의 찌뿌등함만 느껴져 온몸을 사방으로 쭉쭉 피면서 이젠 정말 괜찮아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의 아침이 하루 하루 조금씩 달랐듯이 분명 미세하게나마 힘든 건 나아질 테니 그 고통이 끝나지 않을거라고 낙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은 어떻게든 흐르고 상처는 아문다. 가만히 있어도 아팠다가 만져야 따끔하고 그러다 희미한 자국으로 남는다. 괜찮아질 것이다.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절망적일 때 이 사실이 속는 셈치더라도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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