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근 May 22. 2022

수건 어깨뽕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면 생각나는

"아니요 아부지 이 전원먼저 키신 다음에 이 단추를 티비쪽으로 하시고 이렇게 4번이요" 정원은 아버지에게 비디오테이프 재생 방법을 알려주다가 돌연 짜증을 낸다. 설명해줘도 자꾸 잊어버리시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데, 자신이 시한부라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설명해 주고 싶어도 더 이상 설명해 줄 수 없는 답답한 마음에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그일이 있은 며칠 후 정원은 홀로 남겨질 아버지를 위해 설명서를 작성한다. 이 장면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중에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슬픈 장면이다. 나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1년에 한 번 정도 보는 편인데 볼 때 마다 이 장면에서 과거의 나를 회상한다.


20여년 전 대학생 때 일이다. 나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공사장이 있는 곳이라면 지방 어디든 가리지 않고 찾아가 막노동을 하며 학비와 용돈을 벌었다. 98년 여름방학 때 지방으로 가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는 나름 운좋은일이 생겼다. 우리 마을 위로 외곽 순환 고속도로가 깔린다는 소식과 함께 공사장들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난 집근처에 위치한 공사장으로 찾아가서 아무나 붙잡고 대뜸 물어봤다. “이 앞마을에서 왔는데 인부 안 구합니까?” 내가 무턱대고 찾아간 곳은 산과 산을 잇는 교량 철근반이었다.


막노동은 대학 1학년 때부터 꾸준히 해왔던 터라 잔뼈가 굵은 편이었다. 그래서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몸은 알고 있다. 안 쓰던 근육을 길들이는 것은 딱 일주일이면 됐다. 학기 중에는 공부에 집중하느라 노가다 근육이 굳어 있었는데 다시 시작하려면 일주일 동안은 죽어라 근육을 깨워야 했다. 그 일주일이면 근육이 길들여지고, 상처가 아물고, 온 몸에 근육통이 가시고, 노가다라는 부끄러움에서도 무뎌지는 시간이었다. 말이 쉽지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노가다를 뛰려면 그 일주일이 상당히 고단한 편이었다.


철근 일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전문 기술자가 아닌 이상 하루 종일 어깨에 철근을 매고 나르는 일만 해야 했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무거운 철근 뭉치가 한쪽 어깨에 실린다. 묵직한 철근들은 이동 중 점점 더 무거워지며 어깨를 짓누르다 못해 살을 짓이기기 시작하고. 이틀째 되던 날 철근을 지탱하던 어깨부위는 시커멓게 멍이 든다. 3일째 되던날엔 피부가 터지면서 흘러내린 피들이 작업복을 검붉게 물들였다. 그렇다 해도 철근은 계속 날라야 했다. 멍이 들던 어깨가 아프건, 피가 나건 간에 그 부위에 그대로 철근을 매고 시지푸스처럼 끊임없이. 그리고 버티면 됐다. 일주일이라는 시간만 지나면 나는 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집에와서 씻자마자 곯아떨어졌고 눈을 떳더니 아침이었다. 공사장에 가려고 나섰는데 엄마가 나를 불러 세웠다. “이거라도 입고가면 그나마 괜찮을거야” 그러면서 건넨 것은 양쪽 어깨에 수건을 덧댄 럭비 선수가 연상되는 어깨뽕 옷이었다. 사흘째 되는 날까지 작업복을 잘 숨겨 뒀었는데 곯아떨어진 상태에서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와 그 옷을 본 거 같았다. 순간 그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런 상황에서도 공사판 사람들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고픈 생각만 앞섰다. 그 옷을 입고 가면 약해 보일거 같았고 그런 모습이 창피했기 때문에 싫다고 했지만 몇 번이고 그 옷을 챙겨가라는 엄마에게 짜증을 버럭 내고 말았다.


두고두고 그런 생각을 했다. 여느 방학 때처럼 지방 공사장을 선택했더라면 엄마에게 그 모습을 들키지 않았을 터인데. 엄마는 다 찢어지고 피로 얼룩진 옷을 보며 마음이 어떠셨을까? 곯아떨어진 내 옆에서 어깨의 상처를 보시지는 않았을까? 그런 아들이 안쓰러웠지만 공사장에 나가지 말라고 말도 못 건네시던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눈물로 옷을 덧대며 밤을 지새우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두부밥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