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영하' 강연
이번에도 학교에서 들은 강연 소식을 전하려 합니다. 소설가 김영하 님의 '인공지능 시대의 창의성'에 대한 강연이었습니다. 김영하 소설가는 '오직 두 사람', '살인자의 기억법' 등 유명한 작품을 쓴 작가입니다. 또한 알쓸인잡, 알쓸신잡 등 방송에 출연하여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분입니다. 저도 작가님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유튜브로 많이 접하고, 소설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4월 2일에 듣고 온 강연인데요, 바쁘게 학기를 다니느라 저장해 둔 글을 이제야 업로드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강연의 주제는 '인공지능 시대의 창의성'입니다. 인공지능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여겨왔던 '창의성' 또한 대체될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서 '창의성'이란 무엇일까요?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시시각각 발전하는 사회에서, 어쩌면 인간의 역할이 완전히 대체될 수 있는 미래에,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창의성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창의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시다.
보통 우리는 '창의성'이라고 하면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과연 창의성이란 좋기만 한 것일까요?
창의성의 사전적 의미는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특성'입니다. 즉 틀이나 관습을 깨고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틀이나 관습은 우리에게 필요하니까 있는 것 아닐까요?
오늘 주제가 창의성에 대한 것이지만, 사실 '창의성이 없다는 것'은 진화와 성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계적 습관이란 일상생활에서 에너지 소모를 줄여주고, 인간은 원초부터 남들을 따라 하는 것이 생존에 안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항상 하는 것들은 습관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큰 힘을 들이지 않습니다. 틀 안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는 데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죠.
사실, 때로는 창의성은 위험하다.
'창의성'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데요, 사실 승자 편향의 오류라고 해서 실패한 케이스는 잘 접하기 힘듭니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려면 남들과 같이 살아가는 방식을 깨고 누구도 하지 않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사실 이러한 행동은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생이라면 당장 교실문을 박차고 나가야 하고, 직장이라면 여태껏 일해왔던 방식을 무시한 채 아무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해야 합니다. 남들이 파란불에 횡단보도를 건널 때 빨간불에 건너려는 괴짜 행동은 아무래도 위험할뿐더러,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십상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보통 알게 모르게 '창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더 성실하고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지각하지 않고 학교 수업과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는 학생, 업무 규율을 잘 지키면서도 상사의 지시를 잘 따르며 일하는 직장인. 잘하면 눈에 보이지 않으나 못 하면 큰 책임이 따르는 촬영·음향 감독, 마취 전문의, 피아노 조율사와 같은 인비저블(invisible) 전문가들. 사실 우리 사회는 창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더 중요합니다.
인공지능 시대,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ChatGPT와 같은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어떤 직업이 위험해질까요? 책임과 공감이 필요 없는 직업이 위협받을 것입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직업이 대체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이 어느 정도로 발전할지는 모르겠지만 의료 인공지능이 발전하여 인간에게 정확한 진단과 남은 수명까지 예측한다고 상상해 봅시다. "당신은 암 4기이고 남은 수명은 정확히 3개월입니다. 당신의 생존 확률은..."과 같은 말을 듣고 싶어서 병원에 갈까요? 우리는 "...로 예측되나 우리 한번 치료해 봅시다. 가족들에게는 이렇게 알리는 것이 좋겠고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라 해주는 공감 능력이 있는 의사를 더 원합니다. (저는 사실 지금까지 의사들이 이런 역할을 잘해왔가는 살짝 의문입니다...)
창의적인 인재란 무엇일까?
앞서 말했듯 무조건 창의적인 사람은 사실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창의적 인재보다 공감할 줄 알고, 책임질 수 있으며, 윤리 의식을 가진 인재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고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생활에 훨씬 가까운 '창의적 생각'에 대해 알아보고 인공지능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창의성을 발휘해야 할지 고민해 봅시다.
창의성은 스위치처럼 on/off가 되거나 훈련이 되는 영역일까요? 김영하 작가는 한예종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게임처럼 했던 창의성 게임을 소개합니다. 바로 관계없는 단어 말하기인데요, 주어진 제시어에 아무 관계없는 단어를 돌아가면서 계속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창의적으로 그 단어 사이 연관성을 찾아 다른 사람을 탈락시킬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커피! 를 외치면 허무주의, 나이키, 우주 개발... 등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문학에서도 관계가 멀지만 글의 주제와 연결시켜 표현한 작품이 좋게 평가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활동으로 창의성의 스위치를 끈 채 살아가는 사람도 그 스위치를 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의 리스트를 만들어보는 것입니다. 불가능을 상상함으로써 그 현실의 벽을 깨어보는 것인데요. 가끔은 엉뚱한 소리를 해야 한계를 넘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할 수 없는 운동, 내가 절대 가지 않을 여행지 리스트를 써보면서 불가능을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김영하 작가는 내가 절대 쓸 수 없는 소설의 주제를 상상해 보다가 그 유명한 '살인자의 기억법'을 썼다고 합니다.
'창의적인' 예술의 의미
인간은 뻔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의성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효율적인 기관인 뇌는 낭비를 싫어하기 때문에 창의성을 싫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예술'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보통 사람들에게 부족한 창의성을 보완해 주고 귀찮아하는 '창의적 사고'를 안전하게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예술은 창의성의 안전한 '아웃소싱'입니다.
스토리텔링의 중요성
김영하 작가는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스토리텔링은 우리가 살아온 세계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험해 보고 다른 입장에서 생각해 보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전 세계 어디서나 인기 있는 어린이 문학이 '고아 이야기'를 다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린아이들이 생각하는 가장 두려운 상황인 고아가 되는 불안, 걱정 등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공포를 이겨낸다면 어른이 될 수 있고 두려움은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이야기는 '나'를 보완하는 기회입니다.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고, 문제 해결 방식을 배울 수 있습니다. 타인의 행동이나 동기에 대해 다양한 시나리오로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타인의 행동 이면에 있는 동기를 꺠달으면서, 남을 이해하고 잘 소통하며 공감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야기의 최종 목적은 '나'의 이해입니다. 과거의 '나'는 타인입니다. 내 안의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내 안의 타인을 이해하고 그것을 잘 표현해 내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창의성이란?
즉 오늘의 주제인 인공지능 시대의 창의성이란 생각도 못해본 상황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기술이 기술의 발전을 낳으며 점점 더 빠르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사회가 발전하고 있는데요.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이 창의성입니다.
모두가 창의적일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삶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 창의성이고 이것을 가장 쉽고 즐겁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이야기'입니다. 김영하 작가는 20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여유를 가지고 시간을 남겨두라고 합니다. 여유를 갖고 책과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절대 낭비가 아니며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람을 포용하고, 설명 불가능한 내 안의 타인을 이해하면서 빠르게 변화하여 예측할 수 없는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것이 이 시대의 진정한 '창의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