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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lerie Lee May 09. 2023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결혼 그리고 이상형

소개팅이 들어왔다. 무려 판사님이란다. 그래? 이상한 판사 000 님 정도 되면 재밌겠다 싶어서 흔쾌히 콜 했다.

나의 타고난 친화력 덕분에, 그리고 다행히 상대도 E였던 덕분에 대화는 어색하지 않게 흘러갔고, 나름 재미있는 판사님 썰 도 들으면서 좋은 한때를 보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애프터는 없을 것 같고, 없었으면 한다. 하지만 이 소개팅을 통해 의무적으로(?) 주고받은 질문에 대한 고찰을 하고자 오랜만에 브런치를 켰다.


일단 내 이상형은 언제나 내가 꽂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항상 내가 꽂히는 사람은 사람들이 “??!”라는 반응으로 말리던 사람들이었고, 그들과의 연애에 닳고 닳은 마음과 영혼을 위로해 주는, 상대편이 나에게 꽂힌 경우의 연애에서 안식을 찾곤 했던 것 같다. 한마디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 그러나 나를 좋아해 준 사람들은 항상 좋은 사람들이었고 모두가 “그 남자 잡아라” ( 한 명 빼고 ) 했던 “좋은 남자”였고, 내가 먼저 꽂힌 사람들은 모두 “제발! 쫌!”이라는 야단을 마주해야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이제 나의 이상형은 좀 달라질 때가 됐다고 느꼈던 걸까 상대방의 그 질문에 나는 “음.. 항상 이리저리 흔들리는 저를 붙잡아 줄 단단하고 어른스러운 사람이요”라고 대답했다. 예리하신 판사님은 “여태까지 그런 사람 안 만나 봤으면 그런 사람이 눈앞에 있어도 못 알아보실 텐데요? “라고 말했다. 자존심 때문이라도 ”아니요, 그런 사람 만나 본 적 있어요 “라고 말하긴 했다. 왜냐면 실제로  약 4-5년 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사님은 내가 만난 그 사람과의 썰을 잠시 듣더니 ”과연 그 사람이 단단하고 어른스러운 사람이었을까요? “라고 했고, 나는 판사님의 현명한 관록 어린 판단에 결국 굴복했다. 그렇다. 나는 지금 현재 내 이상형에 부합하는 남자를 만나본적이 없다. 고로 어쩌면 그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도 못 알아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좋아하게 되는 사람들은 항상 안정적이기보다는 어딘가 불안한 사람들이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래퍼가 되지 못해 아쉬워하며 우울해하던 친구, 이미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더 많은 것을 성취하기 바라는, 꿈 많고 열정이 많아서 그것들 때문에 계속 불안하고 예민한... 한마디로 나와 같은 사람들을 나는 사랑해 왔고 끌려왔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예전의 내가 무의식적으로 끌렸던 이들이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유유상종의 마법을 이용하는 수밖에. 한마디로 나가 안정적이고 단단한 사람을 원하면 내 스스로가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 힘만으로 그렇게 단단한 돌 같은 사람이 되지 못하기에, 나를 그렇게 좀 만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인데... 이를 어쩐담. 내가 안정적인 사람이 정말 되고 나서는 아마 또 이상형은 바뀔 수가 있다. 그때는 다시 열정적인 사람을 원하게 될지도? 이처럼 이상형이란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항상 평생 사랑하겠다는 약속은 어떻게 하게 되는 걸까? 어쩌면 그것은 각오다. 결심이다. 한마디로 이상형이 바뀌고, 끌림이 바뀌고, 선호하는 사람이 바뀌더라도, 그 사람이 지금의 이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변하더라도 그 사람 곁을 지키겠다는 숭고한 약속이고 결심이다. 그것이 결혼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나는 결혼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진 사람 같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이 누군지 정하지 못한 것 같다. 나는 항상 바뀌고 있다. 마치 포켓몬의 메타몽처럼 항상 모습이 변화하고 있다. 그런 나의 변화의 “뷰티 인사이드”처럼, 나의 여러 모습들을 모두 사랑해 줄 사람이 나타날 수 있을까? 그런 기적이, 그런 축복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다면 좋겠다. 나도 그 사람의 여러 모습들을 사랑해 주고, 항상 종잡을 수 없는 날씨와 같은 그 사람의 모습을 사랑해 줄 테니, 너도 나의 종잡을 수 없는 변화무쌍한 나의 모습들을 사랑해 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타났으면 한다.


그래서 이 에세이는 기도다. 신께, 인터넷, 알고리즘 그 위에 있는 신에게 바치는 나의 숭고한 기도.

”신 님, 저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니, 제게 걸맞은 짝을 내려주세요. “

“아니면 저를 안정적이고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던가!”(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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