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Valerie Lee
Aug 30. 2023
100일은 이미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도전 중이다.
"욕망을 주셨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죠!" 하고 살리에르는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신은 모두를 공평히 사랑한다고 했다. 나는 연기의 신이 내리길 바라는 수많은 다른 신의 자녀들보다 더 특출 난 노력을 했던가? 아마 아닐 것이다.
곧 있으면 여성 시민 독백대회가 열린다. 그 독백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싶다. 한 동안 연기랑 영화에 시니컬 해진 적이 있다. 사실 요즘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우리는 왜 픽션과 드라마를 사랑해야 하는 걸까? 일단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돼야 픽션을 즐길 여유도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찰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에 의하면 어떤 이는 그 수용소에서 조차 빵을 먹지 않고 내부 풍자 연극을 보러 왔었다고 하니, 예술은 어떨 때는 빵만큼의 가치를 하는 것일 수도.
나는 연기를 왜 하는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조성연은 못돼도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과 같은 것 아닐까? 얼마 전 "타르(TAR)"라는 영화를 봤는데 내가 생전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지도 못한 사유를 피아노 선율이나 음악을 들면서 하는 인물을 만났다. 나 또한 연기를 고민하며, 세상사를 고민하고, 사람이란 뭔지, 인간성, 성격, 상황, 환경이란 뭔지 고민하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빠져서는 안 될 늪이 있다. 나는 연기를 한동안 괴로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늪이다. 함정이다. 나는 연기를 하는 것이 아직은 즐겁다. 그리고 즐거운 행위로 남겨주고 싶다, 나 자신에게. 만약 고통스러운 성장의 순간이 온다면 그 마저 희열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지금 한남동에 한 경치 좋은 바에 와있다. 집으로 돌아가면 9시 반 - 10시 정도. 사람들이 수면을 취해야 하는 시간이기에 소리 지르는 대목이 있는 연기를 하기에는 무리다. 지금 연습하는 독백을 아주 작게, 감정을 억누르면서 최대한 소리 지르지 않으려 하면서 연습할 작정이다. 그러면 내가 정말 소리를 질러야 하기에 지르는 것인지, 그 인물이 대체 대사라는 옷을 입은 채 진정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깨닫는 데에 많은 영감을 줄 것 같다.
혹시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독자가 있다면 꼭 댓글 남겨주셨으면 좋겠다. 이 글을 왜 읽는지, 이런 기록을 읽는 것은 무슨 느낌이 드는지 궁금하다.